<센티멘탈 밸류> 똑닮은 아빠가 좋으면서 싫은 이유

by 장혜령

영화 <센티멘탈 밸류>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만든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신작이다. 제78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으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9개 부문에 오른 유력 후보다. 특히 미국이 아닌 외국 영화로 네 배우가 주연, 조연상 후보에 오른 이례적인 사례로 화제다. 그만큼 배우들의 앙상블이 이견 없다는 데 동의한 결과다. 전작에 이어 배우 레나테 레인스베와 두 번째 호흡을 맞춘 그의 여섯 번째 장편이며 가족, 예술, 기억에 관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다. 가깝지만 가장 먼 ‘가족’에 대해 시크하면서도 묵직한 여운은 물론, 날카로운 유머와 센스 있는 각본까지 더할 나위 없다.


종합선물세트라 말한 이유는 여러 관점으로 해석되고 확장된다는 데 있다. 가족과 사회 안에서 부여된 다양한 역할을 끊임없이 요구받는 현대인의 고뇌가 반영된 까닭이다. 현대사회는 개인의 내외적 완벽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 경향이 크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고속성장을 경험한 탓에 그 잣대가 엄격하다. 자신의 능력 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족과 사회가 원한다.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가족은 고통의 1차 단계로써 여러 갈등이 불화로 이어진다. 노르웨이 오슬로를 배경으로 하나 한국 서울로 옮겨온다고 해도 무방한 통하는 정서가 영화 전반에 깔려있다.


결핍과 상처로 불완전한 인간을 주목한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그 출발을 가족으로 잡았다. 가족으로 받은 트라우마와 우울한 기질을 고치려고 하기 보다, 나만의 고유한 가치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방식을 취한다. 시간에 쫓겨 최고, 성공, 완벽을 위해 달려가는 데 급급했다면. 잠시 쉬어서 주위를 둘러보고, 아픈 곳을 돌아보며, 누구보다도 나를 돌봐 주라며 위로를 건넨다.


연극배우이자 첫째 딸 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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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아버지, 큰딸, 작은딸 각자의 센티멘탈 밸류를 이해하는 과정을 유려한 시선으로 담았다. 어쩌면 영화란 퍽퍽한 삶을 비추는 거울이자, 달콤 씁쓸한 치유제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이혼한 아내의 장례식으로 오랜만에 아버지 구스타브(스텔란 스카스가드)는 두 딸 노라(레나테 레인스베)와 아그네스(잉가 입스도테 릴리오스)와 재회한다. 자매는 아버지의 오랜 부재로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 평온한 일상에 느닷없이 나타난 아버지로 인해 단단했던 자매의 관계에도 틈이 생겨난다.


첫째 노라는 어릴 적 가족을 떠난 아버지에게 원망과 애증의 복잡한 마음을 품고 있다. 사랑하지만 비슷한 기질의 아버지와 시시콜콜 부딪혀 한계에 도달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아 불편하고 가까이하기 겁난다. 아버지로부터 예술적 기질을 물려받은 프로 배우지만 무대 공포증이 때문에 무대에 오르는 데 어려움이 크다. 공연 전 도망하는 것은 예삿일. 급기야 공연 당일 몸이 아프다며 취소할 정도로 억누르는 무언가로 괴롭다.

하지만 연기를 시작하면 좌중을 압도해 버린다. 상처의 기억을 연기에 녹여 내는데 능숙하지만 본인 감정을 드러내는 데는 어려워한다. 늘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가도 부정적인 면을 닮아 여전히 두렵다. 그래서일까. 진중한 관계 보다 쉽게 휘발되어 버리는 인스턴트 관계를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무대 스태프와 불륜을 이어가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너를 위해 쓴 각본이다’라며 주연을 맡아 줄 것을 권유한다. 두 사람은 영화(매체)와 연극(무대)라는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이다. 작품을 대하는 견해가 상충하고 싸우고 만다. 연극은 배우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어 싫다는 아버지는 연극 무대를 폄하하는 말로 심기를 건드리기 일쑤다. 그런 일이 반복될까 봐 노라는 시나리오를 읽어보지도 않고 아버지와 함께 일할 수 없다며 단박에 거절해 버린다.

감독이자 아버지 구스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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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작품 활동을 하지 못 한 구스타브는 우연히 영화제에서 만난 미국 배우 레이첼(엘 패닝)과 교감을 나누게 된다. 레이첼은 구스타프 회고전에서 20년 전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저녁 만찬에 초대했다. 두 사람은 나이와 국경을 초월한 예술적 감수성과 친밀함을 느껴 함께 영화를 만들어 보기로 약속한다. 구스타프에게 레이첼은 마지막 영화가 될지 모를 프로젝트의 구원자가 될 것 같았다.


다행히 구스타브의 새 프로젝트는 조금씩 윤곽을 잡아가는 듯 보였다. 주인공 캐스팅은 성사되었으나 여전히 순조롭지 않았다. 오랜 제작자와 사정이 맞지 않아 결국 넷플릭스행을 택하면서 일은 또 틀어진다. 모국어를 쓰고 싶지만 영어로 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낯선 제작 방식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감독에게 전권은 없는 시스템뿐만 아니라, 극장이 아니면 어디에서 본다는 건지 이해하기도 힘든 지경이고, 배급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구스타브는 이렇게라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는 모두 할리우드 스타 레이첼의 성과이기 때문에 주인공으로서 대접도 섭섭지 않게 해줘야 했다. 드디어 레이첼과 전체적인 대본 리딩을 진행하는 날, 어딘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발목을 잡고, 구스타브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역사학자이자 둘째 딸 아그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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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인 동생 아그네스는 남편과 9살 아들과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다. 오랜 투병 생활을 했던 어머니를 돌봐왔을 정도로 변함없는 존재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언니와 아버지의 팽팽한 신경전의 중재자 역할에 익숙했다. 아버지가 집을 비운 후 어머니 혼자 이 집에서 상담을 이어가며 생계를 책임졌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언니 노라의 보살핌을 받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방황하는 언니를 살뜰히 챙기며 곁에서 따스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아버지의 영화에 출연했던 경험도 있다. 그때 받았던 관심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지 오래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신작에 아들 에리크를 출연 시키겠다고 하자, 본인의 유년 시절이 떠올라 반대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신작의 자료 조사 겸 할머니 카린을 알아보다 죽음의 진실을 마주하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집에 돌아와 미뤄둔 시나리오를 단숨에 읽는다. 이 글은 언니를 위한 속죄글이었고 언니가 읽을 수 있도록 노라의 집을 찾는다.


균열을 안고 살아가는 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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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멘탈 밸류’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가치와 무게를 말한다. 범용적인 뜻은 할머니가 남긴 물건처럼 본인에게는 중요하나 다른 사람에게는 그다지 큰 가치를 지니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무거운 마음의 짐, 끝내 버리지 못하는 물건, 까다롭고 예민한 기질 등 부정적인 면도 포함이다.


영화 속 센티멘탈 밸류는 100년 넘은 보르그 가족의 집이다. 집을 하나의 캐릭터로 의인화하며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3대에 걸친 역사를 보고 들은 집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주요 테마이며 조금씩 틀어진 가족의 관계를 은유한다. 세월의 흐름으로 깨지고 긁히며 조금씩 주저앉아 균열이 생겼지만 변함없이 맞아 주는 상징적인 공간도 집이다. 집이 있어 가족은 흩어졌다가도 다시 모이고, 구성원이 줄어들었다가 늘어나더라도 부담 없이 자리할 수 있게 된다.


집은 가족 기억의 클라우드 저장 기능도 포함한다. 구스타브는 어머니 카린에게 영감받아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혔으나, 사실 두 딸을 향한 사랑과 미안함을 세상에 내놓은 결과치다. 나만 알고 싶은 사실,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는 진실까지 모두 알고 있는 집은 또 하나의 화자다.


숨기려고 해도 드러나는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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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멘탈 벨류>가 칸 영화제를 비롯한 유수 영화제의 타이틀을 갱신하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고, 도와줄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건드렸다는 데 있다. 가족은 때때로 타인보다 못한 존재이기도 하다. 사랑으로 이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뾰족한 말이 오가고, 상처를 주고받는다.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말은 언제나 엇나온다. 후회하고 또 후회해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한국 영화처럼 가슴 절절한 신파와 눈물 터지는 감동만이 평범한 모습인 건 아니다. 말이 없어도 통하는 정서를 복잡한 인물과 구성으로 감정의 층위를 쌓아가며 종국에는 이해를 권한다. 더불어, 사회와 국가 폭력이 개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포괄적으로 다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구스타브의 영화 제작 현장이다. 실화에 기초한 가족 서사를 세트장이란 인위적인 공간에서 재현하는 거울 치료의 일종으로 해석된다. 100년이란 시간을 관통하며 세대교체의 양가적 감정을 이해하려 색다른 시도다. 구스타브는 어머니 카린이 어린 자식을 두고 왜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는지 이해하게 되었고, 노라는 아버지가 끝내 어린 자매를 두고 집을 나간 이유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근본적인 트라우마는 치유되지 않았을지 몰라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것이다.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집은 리모델링 되었고, 구스타브와 노라는 영화를 만들 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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