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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ul 07. 2021

<인 더 하이츠>아는 넘버 없어도 이토록 흥겨운!

뜨거운 태양과 후끈한 열기가 전해지는 계절 '여름'이 이보다 더 제격인 영화가 있을까? 라틴 팝, R&B, 랩, 힙합, 레게, 살사, 발레, 현대 무용 등 역대급 앙상블로 뮤지컬 넘버를 잘 몰라도 발 쿵쿵 어깨가 들썩들썩한 영화가 선보였다. 다민족 국가 미국에 사는 라틴 아메리카계 및 흑인 이민자들의 애환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스페인어를 공통으로 쓰는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리고, 쿠바, 멕시코 등 남미 지역 이민자의 꿈과 사랑을 유쾌하게 풀어 냈다. 142분이란 러닝타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흥겨움에 푹 빠지게 된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지만, 즐길 수 있는 건 즐기며 살자는 라틴계 특유의 긍정성에 흠뻑 취한다.   

  

꿈과 사랑의 도시 워싱턴 하이츠    

영화 <인 더 하이츠> 스틸컷

영화는 청량한 해변에 앉아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우스나비(안소니 라모스)로 포문을 연다. 그는 이민 2세대로 아버지의 고향인 도미니카 해변에서 상점을 다시 열고 싶은 꿈 많은 청년이다. 지금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편의점에 콕 박혀 어디도 가지 못하는 신세. 그저 좋아하는 바네사(멜리사 바레사)가 가끔 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바네사는 동네 미용실에서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지긋지긋한 동네를 떠나 꿈을 이루는 곳으로 옮기려 했지만 가난한 현실에 말목 잡혀 좌절하던 중 우스나비의 순정에 덜컥 빠져버린다.     


마을의 최대 자랑 니나(레슬리 그레이스)는 스탠퍼드 대학을 진학했지만 고향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알을 깨고 나간 세상은 니나에게 상처만을 안겨줬고, 실패라는 씁쓸함이 밀려오는 중이다. 하지만 집에 와서도 편하지 않다. 마을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난한 집안 형편에 비싼 등록금까지 내며 학교를 다닐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인 베니(코리 호킨스)는 그런 니나를 보듬어 주면서도 니나 아버지가 학비를 위해 택시회사를 팔려는 정황을 알게 되고 갈등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스나비의 편의점에서 복권 당첨자가 나오고 마을 사람들은 9만 6천 달러의 주인공이 자신이라 상상하며 저마다의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과연 1등 당첨자의 행운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극장 관람을 적극 권장하는 영화    

영화 <인 더 하이츠> 스틸컷

<인 더 하이츠>는 2008년 초연 후 토니상 11관왕, 그래미상, 에미상, 퓰리처상을 석권한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로 옮겨왔다. 린 마누엘 미란다의 브로드웨이 데뷔작으로 영화에서도 음악이 편곡을 거쳐 쓰였다. 린 마누엘 미란다는 21세기 음악 천재로 불리며 미국에서 가장 핫한 예술가이다. 19세인 대학교 2학년 때 이미 초고를 완성해 3일간 80분짜리 1막 공연으로 교내 무대에 첫선을 보인 작품이 <인 더 하이츠>다. 국내에는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의 가로등 점등원 잭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번 영화에서는 씬 스틸러인 피라구아 빙수 아저씨로 분했다.     


뮤지컬의 영화화는 <스텝업> 시리즈와 <나우 유 씨미 2>,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등 장르 불문 연출에 일가견 있는 존 추 감독이 지휘했다. 그는 아시아계 감독 중 하나로 누구보다도 미국 내 이민자의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새로운 장르에도 거부감이 없었다. 두 사람의 합심으로 탄생한 영화는 팬데믹 이후 침체되고 우울했던 소극적 활동을 보상받기 충분하다.     


그동안 참아왔던 '흥'과 '축제 본능'을 깨운다. 그렇게 넋이 나가 한참을 보다 보면 마을의 살아 있는 역사였던 할머니 클라우디아의 죽음으로 귀결된다. 할머니는 늘 '수에니토'를 말하셨다. 스페인어로 '작은 꿈'을 말하는 '수에니토'는 영화를 관통하는 근간이다. 가족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라티노'의 정체성을 되새기며 정신적 지주로 활약한 할머니는 이제 없지만, 독자적인 문화 잃지 않고 이어갈 것임을 넌지시 공표하기도 한다.     

영화 <인 더 하이츠> 스틸컷

뮤지컬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미국 이민의 삶을 투영하며 문화가 달라도 공감할 수 있었다. 이들은 도시 정전 사태로 점차 기온이 오르며 40도가 육박하는 날씨에 지쳐가면서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을 춤과 노래 즉, 축제에서 찾았다.     


노래와 춤에는 고단한 이민 생활과 개인적인 고민을 녹여냈다. 라틴 특유의 리듬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음악과 공감되는 가사, 긍정성은 나라와 민족, 연령을 떠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매력이 다분하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떠나는 사람들, 그럼에도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인내와 믿음에 대한 격려와 찬사도 잊지 않았다. 유색인종을 향한 멸시와 차별에도 꿋꿋이 견뎌내고, 불법 이민 문제까지도 아우른다. 모든 꿈에는 크기도 순위도 없다고 말하는 우스나비의 선한 영향력이 팬데믹 상황에 큰 힘이 된다.     


스타 배우는 없지만 귀에 꽂히는 음악 때문에 사운드가 잘 갖춰져 있는 극장 관람을 추천한다. 뮤지컬에는 없는 영화라서 가능한 무중력 댄스 장면이 시선을 강탈한다. 오프닝에 추가된 무삭제 8분 가량 영상에 혼이 쏙 나갈 무렵 각 잡힌 군무와 아름다운 고음, 완벽한 화음, 딱 떨어지는 라임을 담은 거친 랩이 오감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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