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령 Nov 29. 2021

<베네데타>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은?

베네데타가 겪었다는 종교적 환시, 신의 가호(성흔)를 받았다는 경험은 과연 진짜일까 수단일까. 오직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육체적 결합(심장 교환, 성인의 삶이자 남편과의 에로틱한 정서)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주장했던 17세기 여성 신비주의자.     


그녀는 기적 같은 출생, 유아동 시기의 초자연적 현상, 나이팅게일(새, 육체적 사랑, 삶의 감각적 측면 강조)의 출현, 성모상 낙하 등을 경험했다. 저자 '주디스 C. 브라운'은 거짓말일지라도 자신이 만들어 낸 허상의 피해자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베네데타는 자신이 예수의 신부임을 믿었던 것 같다.     


실존 인물 베네데타 어떤 사람일까?    

 

현재 절판되서 도서관에서 대여했다.

《수녀원 스캔들》은 신비주의로 가장 했지만 결국 부정한 여인이 된 수녀원장의 일화와 당시 사회상을 담았다. 17세기 이탈리아 페샤의 고립된 테아티노(테아틴) 수녀원에 은둔하고 있는 수녀들의 삶과, 사람들의 종교적 열정과 사회적 의미를 들려주고 있다. 단순히 금기된 여성의 동성애로만 잣대를 들이대면 곤란한 책이다. (영화는 물론 그렇지 아니하지만)     


그러면서도 베네데타의 영적인 경험을 이용해 별 볼 일 없던 수녀원이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배경도 짚어주고 있다. 테아티노 수녀원은 베네데타가 수녀원장이 되면서 수도회 인가 및 완전한 은둔 수녀원이 된다. 베네데타가 권력을 얻기 위한 계산된 책략일 수 있지만 수녀원은 수녀원장(영적지도자)이자 신비주의자(사회적, 물적 지도자) 모두를 얻음으로써 침묵과 공모로 일관했을지 모른다.     


베네데타(축복받은이란 뜻)는 태어남과 동시에 수녀원을 갈 운명이었다. 피렌체 북서부의 외딴 산골 마을 벨라노의 중산층이던(주민 800명 중 세 번째로 부유했음) 부모는 베네데타를 평지의 페샤의 수녀원에서 9살에 보낸다. 벨라노(산악)와 페샤(평지)의 11km의 거리는 문화적 지형과 개인적 세계의 차이를 나타낸다. 어쩌면 산악 지방과 도시 평지 지대의 긴밀한 교류라고도 볼 수 있다.     


당시, 딸을 가진 집안은 결혼 지참금으로 15000 스쿠디를 내야 했다. 수녀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400 스쿠디의 지참금이 필요했다. 반면 잘 알려지지 않은 테아티노 수녀원은 저렴한 160 스쿠디였다. 수녀원에는 성장한 자녀를 둔 부모들이 비싼 결혼 지참금 대신 저렴한 수녀원을 택하거나, 과부들이 입회하곤 했다. 대부분 친족이거나 가족이 입회하고, 외부인일 경우 돈이 중요했다. 테아티노 수녀원은 당시 메인이 아니었기에 지참금과 견직물, 농장 등 노동으로 먹고살아야만 했다.     


베네데타 까를리니는 자력으로 두 차례 조사를 받고 30세에 수녀원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였고 당시에는 예외적이었던 인사로 성인으로 추앙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신과 소통하고 신의 가호를 받았다는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지며 오랜 수감 끝에 쓸쓸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수녀원장의 지위를 박탈당하고도 여러 미사에 참석하면서 살았지만 식사는 늘 바닥에서 했었다. 감옥에서 35년을 보낸 후 고열과 복통으로 71세 나이로 죽었다.


원작은 어떤 내용일까?     
영화 <베네데타> 스틸컷

책은 논픽션이지만 관련 문서와 종교 심문 기록(1619-1623) 등을 분석해 마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캐릭터화했기에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선명함까지 배가 된다. 당시 종교계의 남성 우월적인 분위기가 팽배했고, 여성의 지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여성은 악마에게 쉽게 영혼을 털리는 이성적이지 못한 존재라고 치부되었다. 성적 유혹과 쾌락에 더 쉽게 빠져든다고 생각했다. 잘 속고 단순한 믿음을 따르는 여성이라며 베네데타가 본 환영도 악마의 꾀일지 모른다며 잘 이겨내라고 신부가 권한다.     


베네데타가 보고 겪은 성스러운 증거도 그중 하나라고 보았다. 여성과 여성의 성적 행위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하지만 신비주의 성녀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이들은 성흔은 기도나 사막, 은둔할 때, 손과 발, 옆구리 머리에 그리스도의 광선이 새겨진다고 봤다.     


베네데타가 끊임없이 증거 제시와 조사를 받은 이유도 자는 도중에 성흔이 발생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스플렌디텔로라는 지팡이를 들고 매질하는 훈육 천사가 시켰다고 주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이 납득할 수 있는 성흔이란, 드라마 [지옥]처럼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검증 가능한 테두리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봤다.     


역자(남성)는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인 vison을 '환영'으로 옮기며 종교적 경험을 뜻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해설한다. 역자에 따르면 베네데타 같은 여성 동성애를 처음 접한 필경사가 남성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교회 당국 관계자도 남성이기 때문에 복잡한 심경이 표출된다는 거다.     


흥미로운 점은 교회 심문 기록이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의 실제 관행과 서양인의 태로를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지만. 여성 소도미아(동성애)를 듣도 보도 못한 남성들은 받아 쓰기를 머뭇거렸다. 바르톨로메아가 증언한 생생한 묘사와 행위에 충격 받아, 그대로 적기 힘든 상황이 자주 찾아왔고 빈공간으로 지우거나 비워진 부분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기록은 베네데타의 말, 목격한 수녀들의 증언, 기록자 자신의 이야기가 뒤섞여 묘한 상황이 연출된다. 또한 환영을 경험하고 무아지경에 빠진 베네데타의 혼란스러운 여러 목소리까지 가미돼 무섭기도 하다. 따라서 어떤 글은 누가 말하는 건지 화자가 헷갈릴 수 있음을 미리 고지했다. 원문에 되도록 충실하게 번역했지만 오류가 있을 수 있기에 주의를 바란다는 것이다. 어느 부분은 누락되었다고도 서술되어 있다.     


성녀인가 사기꾼인가?     
영화 <베네데타> 스틸컷

베네네타를 단순히 나쁜 사람이라 말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당시는 지금과는 다른 가치와 신념이 통용되던 시대였기에 사기꾼이라 호도하기엔 복잡한 인물이었다. 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가 지금과 달랐던 시대, 베네테타의 신비로운 경험은 어쩌면 삶의 진실이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베네데타가 어린 수녀들에게 했던 성폭력은 스스로를 남근화 시켰을지 모를 판타지나 역할극의 형태를 띨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여성이자 권력자, 레즈비언이었던 베네테타의 삶이 기존 세력에 도전장을 내미는 행위일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이 갑작스러운 파열음에 당황한 남성들은 체제가 전복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해졌고, 더 가혹한 압력을 행사 했을지 모른다. 때문에 자료들은 전근대 유럽 사회를 이해하는 기록이자, 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했던 여성의 성(性)을 자세히 기록한 귀한 문서임에 틀림없다.     


폐쇄적인 공간과 더 넓은 세계와의 조우다. 그리고 베네데타라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인물을 탐구하는 작업이면서, 터부를 알 수 있는 경험이나. 그때나 지금이나 있었을 성 소수자를 외부에서 내부로 끌어오는 작업이다. 소위 정상이라고 치부하던 제도의 각성이면서도 권력을 깨트리는 틈이다. 성 관념, 성 상품화를 비판하는 또 다른 형태의 젠더의 목소리다.     


영화 <베네데타>와 원작의 차이점은?     
영화 <베네데타> 스틸컷

영화 <베네데타>는 도발적이고 매혹적이다. 실존 인물 베네데타(비르지니 에피라)를 모티브로 하며 소녀 바르톨로메아(다프네 파타키아)를 사랑해 추락한 과정을 관능적으로 다룬다. 어떻게 성인으로 추앙 받았고 젊은 30세에 수녀원장이 되었으며 신과 연인과의 사랑 속에서 혼란을 겪었는지 포착했다.     


그녀의 말이 거짓인지 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었던 일을 행한 죄와 파장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당시를 휩쓸고 간 페스트에 대한 묘사와 공포, 봉쇄 방법까지도 넣어 현재 우리가 직면한 질병 상황의 기시감도 느껴진다.     


책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 전 원장수녀 펠리시트(샬롯 램플링)와 딸 크리스티아(루이스 샤빌렛)을 등장시켜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대립으로 삼았다. 원작과 달라진 영화적 각색은 룸메이트이자 연인인 바르톨로메아의 증언과 민중의 봉기다. 실제는 베네데타가 강요와 학대를 일삼았다고 증언했지만,영화에서는 연하의 바르톨로메아가 베네데타를 유혹한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폴 버호벤'감독은 <원초적 본능>, <쇼걸>, <엘르>등 전 세계적인 이슈와 논란에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다. 거장의 50주년 기념작으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단 1회 야외상영으로 그 큰 영화의 전당의 야외가 신음 소리로 가득했다는 화제의 작품이다. 어머니가 준 마리아상의 엄청난 활용법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다분히 페미니즘적인 영화이며 진취적인 여성 서사의 영화다.     


베네데타가 꿈속에서 자주 만나는 여러 예수는 지금까지 경험하고 보아온 그녀만의 상상의 산물이다. 양 떼를 이끄는 예수, 뱀을 칼로 자르는 예수, 애꾸눈에 흉측한 얼굴의 예수, 마초적인 남성의 예수, 옷을 벗으라고 명형하는 예수 등 스스로 만들어 낸 정신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바르톨로메아의 유혹에 이겨내려고 아등바등 하지만 결국 뱀의 꼬임에 넘어가 명분을 만들려는 수작이 아니었을까. 고난을 통해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에 환영, 성흔을 만든 건 아니었을까.     


영화는 베네데타가 성녀인지 사기꾼인지,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고 끝난다. 이를 결정하는 것은 철저한 관객의 몫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폴 버호벤 감독의 <토탈리콜>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일화가 꿈인지 현실인지, <원초적 본능>의 살인자가 샤론 스톤인지 아닌지 명백하지 않아 매력 있다.     

그는 항상 종교와 예수에게 관이 있었다며 본인 의심을 영화에 투영했다고 말했다. 과연 이들의 신앙이 신성모독인지 정치적인 술수인지, 개인적인 입신양명의 수단인지, 견고했던 사회의 균열인지, 다중인격장애 증세인지. 다양하게 논의해 볼 수 있다. 여러모로 놀랍고 놀란이 될만한 영화라고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디어 에반 핸슨>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