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유독 SF 불모지로 불렸었다. 하지만 이를 작년 <승리호>가 과감히 깨주었고, 바통을 이어 받아 넷플릭스는 한국 최초 우주 배경 SF 시리즈물에 투자했다. 비로소 거대 자본과 배우 캐스팅, 인기 작가 영입으로 8부작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최정예 구성원이 만든 어벤져스가 탄생한 셈.
각본에는 <마더>, <미쓰 홍당무>의 각본을 쓰고 <안시성>, <키친>을 각색한 박은교 작가가 협업했다. 제작자로는 정우성이 나섰고, 그의 인맥과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만나 대단한 캐스팅이 만들어졌다.
본 글은 지난 12월 13일 언론시사용 스크리너로 공개된 3화까지를 보고 작성한 글이다. 따라서 드라마의 분위기와 앞으로의 전개 방향, 주목해서 볼 점 등을 정리해 봤다.
정우성이 너무 반해 제작에 참여한 이야기
드라마는 최항용 감독의 37분짜리 동명 졸업작품을 확장한 시리즈물이다. 2014년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출품돼 평단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호평받았다. 단편에는 지극히 제한적인 기지 내부의 영상이 담겨 있는데 분량을 늘리면서 지구와 달에서 겪는 에피소드와 의미를 키워 나갔다. 시리즈마다 다음 편을 궁금하게 하는 단서를 던지며 끝난다. 양파 껍질처럼 하나씩 벗겨지는 미스터리한 실체와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최항용 감독은 위기에 처했을 때 욕망이 발현돼 모두가 파멸하는 이야기 보다 서로 힘을 합쳐 휴머니즘을 피우는 연대에 주목했다며 극한 상황에서 진화해 살아남은 최후의 인류를 그려보고 싶다고 밝혔다. 결국 지구를 뛰어넘어 우주적으로 생각해 보는 생명의 가치, 인간다움을 논하는 작품이다.
자원이 고갈된 근미래, 지구의 위성이자 가장 가까운 달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일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정우성이 제작자로 이름을 올려 주목받고 있다. [고요의 바다]의 제작사는 정우성이 대표로 있는 아티스트 스튜디오다. 정우성은 촬영장에 매일 찾아와 배우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최고의 제작자였다고 한다. 배우와 스탭진의 칭찬이 자자했고 팀웍도 좋았기에 최고의 시리즈가 탄생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진단해 본다.
'고요의 바다'는 어떤 내용?
2075년 지구는 물 부족으로 많은 자원이 부족하고 인구도 줄어든다. 근미래 어쩌면 일어날지 모를 황폐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감추려는 음모와 파헤치려는 자 사이의 갈등, 폐쇄된 우주선 안에서 벌어지는 심리적인 스릴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달에 위치한 한국 발해기지에서 5년 전 의문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들의 임무는 정확하게 무엇이라고 알려주지 않은 그 무엇을 버려진 연구기지에서 24시간 이내에 찾아와야 한다는 데 있다. 정예팀이 꾸려진다. 동물행동학자이자 우주생물학자 송지안(배두나), 탐사 대장 한윤재(공유), 수석 엔지니어 류태석(이준), 팀 닥터 홍가영(김선영), 보안 팀장 공수혁(이무생), 우주선 조종사 김썬(이성욱) 등으로 꾸려진 팀이 달로 향한다.
처음부터 불안했던 조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유일한 달 착륙 경험자는 착륙선 불시착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대원들은 돌아갈 착륙선마저 없어져 우주 미아가 될 위기에 처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소마저 희박해지고, 서둘러 발해 기지에 안착해야만 했다.
하지만 기지 안에서 만난 이상한 시체는 대원들을 당황케 만든다. 방사능 유출로 전원 사망했다는 정부 발표와 달리 익사한 시체와 유사하다. 이후 지구에서 받은 임무를 완성하려는 파와 사망원인을 밝히려는 파의 팽팽한 대립각이 생긴다. 그 사이에서 기이한 스릴과 공포가 발생한다.
송지안은 사실 '답'을 찾아 우주선에 올랐다. 비밀스러운 죽음을 밝히기 위해 자원했지만 이를 숨기고 탑승했다. 한윤재가 샘플을 찾아 복귀하려는 임무를 띤 반면, 송지안은 '루나'라는 말의 정체를 찾아내려 고군분투한다. 그러다가 최초 희생자가 발생하자 모두가 은폐된 비밀에 접근하기 위해 뜻을 모은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가깝고도 먼 존재 먼 우주, 달
대원들은 각자의 생각과 사정을 숨긴 채 우주선에 올랐지만 돌아갈 우주선마저 좌초된 상황에서 아연실색한다. 지구와 교신도 끊어진 상태, 달에 남겨진 대원들은 불안은 커지기만 한다.
달, 우리와 가장 가까운 지구의 유일한 자연 위성이다. 달에게 소원을 빌던 낭만이 드라마에서는 공포로 바뀐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달은 어쩌면 1% 밖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달은 매일 밤하늘에 다양한 모습으로 떠 있지만 1969년 처음 인류가 달에 간 이후 아직까지 모든 것이 밝혀지지 않았다. 달의 지형은 바다(mare)라고 불리는 저지대와 고지대로 구분되는 평지대다. 달에는 물이 없지만 요하네스 케플러가 망원경으로 관찰했을 때 보인 검은 구덩이를 바다라고 생각해지었던 이름이 굳어졌다.
충격적인 이미지의 향연
[고요의 바다]의 가장 큰 포인트는 바로 미지의 존재에서 오는 공포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무지의 공포다. 어둡고 조용하며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공포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거기에 알 수 없는 바이러스마저 퍼져 극도의 긴장을 유발한다.
드라마는 2075년 물이 귀해진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장면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휑하게 바닥을 드러낸 한강의 모습이다. 또한 물이 극도로 귀해진 상황이다. 물 배급권 때문에 자원한 대원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는 귀한 물을 권한다. 커피, 알코올, 음료 등은 꿈도 못 꾼다는 소리다. 따라서 인간의 기호식품 체계마저도 바뀔 것으로 예상한다.
어떤 경로로 감염된 건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대원은 죽었다. 하지만 부검 결과 사인의 익사였다. 마치 펌프 기계처럼 입에서 물을 뿜어내던 대원이 말라죽은 게 아니라 물에 빠져 죽었다니 당황스럽기만 하다. 물이 없는 달에서 익사라니 무슨 말인다. 과연 기지에는 무엇이 있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몸에서 물이 빠지는 탈수 증상처럼 보이나 말라죽은 게 아니라 물에 빠져 죽은 형태다. 사람의 몸은 70% 수분으로 되어 있고 이중 1.5%만 잃어도 탈수 증상이 나타난다. 피 또한 물로 만들어지며 물이 몸에 돌지 않으면 곧 사망한다. 드라마에서 '물'이 중요하게 쓰이는 이유다.
상상해 본 적 없는 달의 비주얼이다. 나로 11호 우주선에서 떨어져 나간 착륙선과 의문의 자원을 채굴하기 위해 고요의 바다 절벽 끝에 있는 발해 기지의 모습은 웅장함을 넘어 섬뜩하다. 발해 기지는 어떠한 충격에서도 견뎌낼 것 같은 요새의 모습인데 1950-80년대 유행한 브루탈리즘 건축양식을 표방했다. 낮은 천장과 미로처럼 복잡하고 폐쇄적인 복도를 지나 도착한 중앙통제실의 탁 트인 원형 창의 전경은 이색적이다.
저중력 상태의 달을 마치 무용하듯 우아하고 느릿하게 걷는 모습과 월면토의 흩날림까지 자세히 표현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공허하고 황폐한, 생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느낌이 드리워진 달을 구축했다. [고요의 바다]는 오는 24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로 공개되었다. 부디, 즐거운 달탈출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