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령 Feb 14. 2022

넷플릭스 <모럴센스> "저의 주인님이 되어주세요!"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제작에 참여한 영화 <모럴센스>는 겨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몇 해 전 재미있게 봤던 웹툰을 영상으로 옮긴다는 소식에 들뜨면서도 걱정되었다. 소수 취향인 소재를 어떻게 영상화했을까 무척 궁금했다. 특히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한국에서 직접 제작에 나섰다고 하니 수위를 기대하는 바가 커졌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수위 조절은 다소 건전하고 명랑한 로맨틱 코미디로 나왔다. 오글오글했지만 웹툰을 봐 면역이 된 건지 참을만한 수준이었다. 혹,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정도를 생각한다면 심심한 영화가 될 것 같지만 말이다. <6년 째 연애중>, <좋아해줘>를 연출한 박현진 감독이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소재를 맛깔나게 조리한 것 같다. 대중에게 밝고 유쾌한 톤으로 소개하는 성향자 입문용 스타일이다. 자극적인 이미지를 직접 보여주기 보다 두 사람의 표정을 통해 심리적 긴장감을 이끌어 냈다.     


두 주인공 모두 단독 주연이자 아이돌 출신, 영화 데뷔작이라는 점도 눈여겨봤다. 바르고 똑 부러지는 이미지가 있어 답답한 모범생 소리를 들어오던 서현은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 변신에 성공했다. 넷플릭스 [D.P]에서 폭력적인 부산 출신 탈영병을 연기한 이준영은 대형견 같은 이미지를 내 달라는 감독 요구에 약 10kg를 증량해 호연을 펼쳤다. 두 사람의 케미도 좋아 낯선 소재와 취향을 다루지만 로맨틱한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저의 주인님이 되어주시겠어요?"     
넷플릭스 영화 <모럴센스> 스틸컷

영화는 성적 취향 중 하나인 SM을 소재로 연애 관계를 독특한 시선으로 훑었다. 우연히 같은 직장에 다니는 비슷한 이름의 두 사람 정지후(이준영)의 비밀을 알게 된 정지우(서현)가 가까워지면서 벌어지는 달콤살벌한 상황을 다루고 있다.     


<모럴센스>의 매력은 업무 시간과 업무 외 시간의 전혀 다른 온도차다. 둘의 이름은 한 끗 차이지만 성격은 정반대였고, 그로 인해 자석처럼 끌리는 케미가 동반된다. 직장에서 상사인 사람을 밖에서는 마구 밟아주는 상하관계의 전복이 은근한 쾌감을 유발한다.     


상하 전복의 카타르시스를 직장이란 사회적 관계에서 이룬다. 본의 아니게 말 못 할 비밀을 들키지만 시크한 성격의 정지우는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대한다. 사내에 소문이 쫙 퍼질 거란 예상과 달리 강단 있고 어른스러운 모습의 정지우는 남의 이야기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며 비밀을 지켰다. 이런 모습에 묘한 감정을 느낀 정지후는 대뜸 주인님이 되어 주면 안 되겠냐고 매달린다.     


여기서 주인님이란 돔(지배자)와 섭(피지배자) 사이의 지배자를 말한다. 섭취향이자 M(마조키스트)인 정지후가 바닐라(비성향자)인 정지우와 BDSM(성적 기호 중 가학적 행위를 즐기는 사람) 해주었으면 은근 바라는 상황이다. 그들 사이에서 주인이 되어달라는 간곡한 호소는 M의 입장에서 일생일대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 존경이 느껴지는 태양을 만난 기회인 것이다.     


실제 직장에서 정지후는 준수한 외모에 능력과 인기를 인정받은 대리지만, 겉과 달리 연약한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아 완벽하고 친절한 척할 뿐 사실은 소심한 사람이다. 반면, 정지우는 할 말은 하는 성격이라 늘 상사의 미움을 독차지하는 눈엣가시 사원이다. 적당히 돌려서 말하는 법은 모르는 직진대로, 그래서 종종 차갑거나 무섭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누군가로부터 지배당할 때 성적 쾌락이 극대화되는 정지후의 부탁에 두 사람은 3개월이라는 계약 기간 디엣(DS. 지배하고 복종하는 두 사람의 관계)에 합의한다. 연애는 아닌 철저히 주종 관계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계획대로만 되는 일이 있을까. 처음부터 호감이 있었던 정지우의 마음은 너무 커졌고, 이후 관계는 어색해져만 간다.     


사랑의 모양과 색깔은 제각각     
넷플릭스 영화 <모럴센스> 스틸컷

영화는 우리가 '일반'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을 벗어난 캐릭터가 등장하고 독특한 관계를 맺는데 할애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기 어려워하는 두 사람이 각자 취향을 존중하며 성장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 커플, 사랑법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수많은 것을 정상과 비정상 두 가지로만 나누는 것을 극도로 지양한다.     


정지후는 자신의 특별한 성향을 용기 내 고백했다가 변태라는 소리를 듣고 몹시 당황한다. 전 여자친구에게 "그동안 나를 속인 거냐"라는 능욕을 당해 적잖이 상처를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모습을 이해받고 싶었지만 좌절된 이후 또 다른 사랑을 하기 두려워만 졌다. 내가 잘못한 게 잘못된 게 아닐 수도 있는데 이상과 현실은 좁혀지기 어려웠다. 더 이상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기는 어렵고, 이해해 주는 상대방을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연애를 하다 보면 평등한 관계 같아도 늘 한 쪽이 권력을 잡고 기울게 되어있다. 너무 사랑해서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다 맞춰주다 보면 사랑받기 보다 오히려 상처받기도, 급기야 깨지기도 한다. 권력의 칼자루를 한 사람이 장기 집권하기 보다 둘이 번갈아 가면서 잡아주는 게 좋다. 연애란 처음부터 끝까지 육체전이 아닌 심리전이란 소리다.     


물론 이론처럼 쉽고 답이 떨어진다면 모두가 커플이지 않을까. 연애란 하면 할수록 어렵고, 학습한다고 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기회가 될 때 최대한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지후처럼 걱정이 앞서지만 '이 사람이다' 싶을 때는 앞뒤 따지지 않고 붙잡아야만 한다. 버스를 놓치고 다음 버스를 기다려봐야 놓친 버스와 똑같은 게 오라는 법이 없고, 후회해 봤자 다시 오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킹메이커> 정치 영화답지 않은 세련된 미장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