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OTT 수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누가 이 드라마 좀 봐줘요!"

디즈니+강추 드라마

by 장혜령

하루에서 수십 개씩 공개되는 OTT. 오늘도 넘쳐 나는 OTT 바다에서 헤매고 계신 분들에게 고합니다.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신작만 고집하다가는 평생 아무것도 못 봐요. 그래서 준비해 봤습니다. 지난 OTT도 다시 보고, 꺼진 OTT도 다시 틀어 보는 ‘OTT 다시 보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1 (1).jpg

먼저 변명을 좀 해봐야겠다. 소개하려는 이 드라마. 사실 2022년 9월 21일 공개일 이후 2회차 만에 하차했다. 대부분 매력과 흥미요소를 1회에 쏟아붓는데, 2회까지도 겨우 봤다는 게 함정이다. 페이스 분배가 다른 드라마랑 달랐다.

“뭐가 문제일 걸까?”


이후 원고 청탁으로 다시 보기 했다. 사실 3회도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오랜만에 다시 봤기에 전후 사정을 떠올리기 어려웠기 때문. 근데 마법이 4회부터 일어났다. 앞선 연쇄살인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범인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이 드라마 뭘 어떻게 한 거야?”


국선 변호사의 존재 이유

4 (1).jpg

디즈니플러스로 오리지널 12부작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는 동명의 기자 출신 국선 변호사, 정혜진 작가의 에세이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정혜진 변호사는 실형 전력 때문에 단순 절도가 3년 이상이나 무기 징역에 되어버리는 ‘장발장법’ 위헌 결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기자, 변호사, 작가라는 쉽지 않은 쓰리콤보를 달성했으며, 책을 읽어보면 마음을 건드리는 감동과 분노, 억울함 등등이 전해진다. 어쩌면 이렇게도 쉽고 마음 쓰이는 사연을 적었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유전무죄가 떠오른다. 어떤 일에 얽히면 법적인 문제 앞에 대부분 작아진다. 변호사 수임료도 만만치 않아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그림의 떡이다. 형사 재판에서 변호인이 꼭 필요한 사건(피고인이 구속돼 있거나, 미성년자, 70세 이상, 농인, 심신장애 의심이 있는 등의 경우), 혹은 변호인 있어야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사건에서 피고인이 변호인을 스스로 못 구하면 '국선변호인'을 나라에서 붙여준다. 그중 국선만 전담하는 변호사를 '국선전담 변호사'라 한다.


드라마에서는 국선전담 변호사라 콕 찍어 말하지 않았지만 포괄적인 의미로 국선 변호사로 칭했다. 꼭 필요하지만 생각보다 덜 알려진 국선 변호사를 소개하고 감동과 재미, 미스터리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수상한 드라마와 캐릭터의 정체

6 (1).jpg

드라마는 대형 로펌 장산의 독종 변호사 노착희(정려원)와 정하시(市)의 국선 별종 변호사 좌시백(이규형)의 좌충우돌 버디물이다. 이는 주요 사건을 감추기 위한 위장일 뿐 클리셰가 중반부터 깨지면서 흥이 살아 난다. 둘은 국선 변호를 하면서 자꾸만 가족 일로 얽히고설킨다. 한편에서는 연쇄살인이 일어나며 이를 유경진(이상희) 형사가 파헤치고 있으며, 크게 두 줄기가 맞물려 돌아간다.


“인륜을 저버리고 쌓은 부와 명예는 다 업보가 되어 돌아온다”


본격적으로! 국회의원을 꿈꾸는 장기도(정진영)의 주변인이 하나둘씩 죽어 나가는 이유를 맞추어야만 한다. 은근한 아니 대놓고 추리해야 한다. 30년 전 모종의 일에 얽힌 공통점을 갖는 사람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그 과정에서 속임수가 여러 번 반복된다. 또라이로 불리지만 정의로운 국선 변호사 좌시백이 두 번이나 용의자가 되면서 ‘믿음’이 흔들린다. 노착희와 티격태격하는 모습과 사람 좋은 변호사란 이미지를 품고 있던 좌시백은 의문의 과거를 품고 있는 탓에 혼란을 가중한다.


곁가지로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해결하며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된 이웃을 보듬는다. 국선 변호사의 최전선을 함께 하는 전우애가 싹튼다.


03.jpg

이후 밝혀진 좌시백의 충격적인 서사는 놀라움을 더한다. 이때부터 놓친 게 뭔지 고민하기 시작하고, 주변 인물을 의심하고 꿰맞추느라 정신이 없었으며, 연료 삼아 손에 땀을 쥐며 정주행 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작가가 의도한 두뇌 싸움이라 생각하니, 저절로 구미가 당겼다.


한편으로는, 돈과 성공에 눈 먼 변호사 노착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법의 힘을 확인하는 성장과정이 훈훈하게 전개된다. 유년 시절 아버지를 향한 반감과 할머니를 향한 애착으로 원수 집안에서 뭣 모르고 키워진 개인사를 트리거 삼아 공든 탑을 무너트린다. 빙산의 일각만 보게 되는 편협한 시선을 깊고 넓혀, 숨겨진 이면을 들여다본다. 그야말로 입장 차이, 인물의 양면성을 따져 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원작을 바탕으로 확장한 매끄러운 서사

07.jpg

오랜 사건에 얽힌 복잡한 관계와 에세이 속 개별 사연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머리를 다쳐 아이가 된 성인 남성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 사건. 시계 볼 줄도 모르면서 형편 어려운 부모가 넣어준 영치금으로 비싼 시계를 산 코끝 찡해지는 사연이 전해진다. 어렵고 딱딱한 법을 따스한 시선으로 어루만진다.


그 밖에도 여성에게 음란 사진을 보낸 할아버지, 아이를 버린 미혼모 대신 입양을 위해 출생신고를 해야 했던 에피소드, 농인 모자의 생계형 절도가 특가 절도 사건이 될 위기, 몸에 칩이 삽입된 의료사고를 정신이상자로 몰아갈 뻔한 사건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가 보는 맛을 더한다.


“용서할 자격도 없는 것들이 피해자를 대신해 나를 용서하고, 자신들의 관대함에 뿌듯해해. 내가 꿇은 무릎이, 내가 흘린 눈물이, 자신들을 위한 것인 양 우쭐해하고, 이러니까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판사에게 반성문을 제출하고 방청객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후반부로 갈수록 30년 전 노동자들의 아픔과 질곡의 역사가 낱낱이 밝혀진다. 위의 대사는 애국자의 후손으로 신분세탁한 장기도가 기자회견 후 한 말이다. 누구를 위한 사과인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국가폭력 피해자를 향한 진정성 있는 사죄가 필요함을 덧붙인다. 국가가 개인에게 벌인 죄와 청산되지 못한 과거, 공권력 피해자의 명예 회복, 재심과 태완이법 등. 앞으로 더 많은 진실이 수면위로 떠오르길 촉구한다.


결국, 이 드라마를 강추하는 이유는

2 (1).jpg

바로! 디즈니가 제대로 홍보를 안 해줬다는 데 있다.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콘텐츠 중 아쉽게 조명을 받지 못했던 웰메이드 드라마다. 당시 쏟아지는 법정물 속에서 아쉽게 주목받지 못했다.


연기 잘하는 배우 정려원, 이규형, 정진영이 주축이 되어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무거워지지만 지루하지 않다. 흡인력과 설득력을 쌓아가며 캐릭터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만들어졌다. 작은 단서가 동력으로 끝까지 이끌며, 결말의 묵직한 울림과 통쾌함까지 선사한다.


이 글을 읽고 많은 분이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를 봐주길 호소한다. 꺼진 OTT도 다시 켜보길 오늘도 무한한 OTT의 바다에서 길을 찾고 있을 분들에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박하경 여행기] 토요일 당일치기로 떠나는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