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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사진사 Jul 12. 2023

사무실 자유

고양이의 마음

숨소리 빠져나간 사무실에 혼자 남는다. 넓은 공간에 여전히 책상과 빈 의자가 줄지어 있다. 전화 받는 소리와 타자 두드리는 소리, 의자를 당겨 앉는 소리와 커피 내리는 소리, 프린터에서 인쇄물이 밀려 나오는 소리가 사라진 뒤다.


사람의 형체가 빠져나간 사무실은 내게 자유의 공간이 된다. 출근한 이후 퇴근 시간까지 똑같은 모니터 앞에 앉아 있지만, 혼자라서 가능한 마음의 편안함이 있다. 적막이 감도는 사무실에 몸무게를 줄인 타자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내가 듣고 싶은 음악, 보고 싶었던 영상을 찾는 소리다. ‘타닥 타닥 타다닥’


낮에 하지 못했던 일을 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곱씹어가며 해결하기도 하는데, 이때도 음악은 함께다. 이어폰을 꼽고 볼륨도 낮춘 채 귓속으로 살며시 눌러담 던 노래가 사무실 천장을 울리며 내 귀로 쏟아져 들어온다. 똑같은 가수의 노래인데, 분명 아까보다 감정이 격하다. 분명 혼자인데 노래가 흘러나오면 가수와 나 둘이 된다.


묵직한 빗소리에 창문을 연다. 창밖으로 ‘솨’하는 소리와 함께 퇴근하는 버스의 무거운 타이어소음이 들린다. 문득 힘든 일상으로 어깨가 눅눅하게 젖은 어떤 집 가장의 눈빛을 본 것 같다. 일상에서 생겨났을 버거운 시간의 찌꺼기가 현관문을 열면 반기며 달려올 아이의 목소리에 씻기길 바란다.


창문 너머로 계절의 한숨 소리가 몰아친다. 바람이기도 하고 비이기도 하며 먹구름의 호통이기도 하다. 한 번씩 창을 통해 사무실로 들어오는 녀석도 있다. 모른 척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데 해가 뜨면 사라지는 해무처럼 잠잠히 공기에 녹아 없어진다.


사무실 전등을 대부분 껐다. 내 자리만 켜는 방법은 없어서 입구에서 내 자리로 이어지는 긴 한 줄의 전구만 켜두었다. 그 옆으로 다른 공간은 어둠의 시간이 시작된다. 내 자리도 벌써 어둠이 익숙했어야 하는 곳인데, 부족한 회사원의 야근이 아까운 에너지를 태운다.


밤이라야 가능한 일이 있다고 믿는다. 어둠일 때 감성적인 창작이 더 잘된다고 믿었다.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기획안이 있는데 감성이 흘러들어와 산으로 가는 기분이다.


음악을 틀어놓으니 기획이 어깨춤을 춘다. ‘쿵’할 때 한 줄을 쓰고 ‘딱’할 때 다시 몇 자 적는다. 이제 좋은 기획이 아니라 지금의 분위기에 맞춰서 쓴다.


담당자가 이런 감성을 좋아하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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