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생리해서 좋은 날>
<생리해서 좋은 날>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영화다. 독립영화 중에서도 꽤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고, 제목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한 번 듣고 잊혀지지 않았다. 이 작품이 개봉했던 2005년 당시에 광주국제영화제 한국 단편선 부문 대상을 차지했으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 경선 부문 최우수상과 관객상을 거머쥐었다.
영화 <생리해서 좋은 날>은 남편과 엄마, 그리고 딸 이 세 명의 인물이 생리를 통하여 가지는 감정 선에 대해 다룬 이야기다. 처음 이 작품을 보기 전에는 그저 여자들의 일상과 생리를 하면서 생기는 불편함 등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시각으로 풀어나가는 모습이 참 흥미롭게 다가왔다.
매달 생리를 할 때마다 찌푸린 표정으로 달력에 표시를 하는 딸이 있다. 딸은 생리를 할 때마다 불편하고 대체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푸념한다. 그리고 자신의 집안은 폐경이 빨리 오니까 좋다고 자랑까지 늘어놓는다. 친구와 생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눈에 보였던 녀석 '콧대'를 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딸은 우연히 어떤 여자가 콧대에게 고백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 모습을 모른체 해준다고 나름 쿨 하게 돌아선다.
그러던 어느 날 생리혈이 치마에 묻은 걸 발견한 콧대가 딸을 도와주면서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느끼지 못한 낯선 감정에 혼란을 겪는 딸. 당혹스럽기도 하고 감정 기복도 심하다. 마치 초경이 온 여자 아이의 모습과 흡사하다. 딸이 콧대에게 가지게 되는 여러 감정이 생리 기간 중 오는 감정기복과 교차되면서 이는 딸이 처음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젊음의 싱그러운 느낌으로 나타나게 된다.
딸이 콧대에게 갑자기 키스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때 둘 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장면이 상당히 재미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과 감정들로 인하여 도망쳐버리는 콧대의 모습도 초경을 접한 여자 아이의 감정선과 맞물리는 게 상당히 흥미로웠다.
폐경을 두려워하는 엄마가 있다. 4년째 딸과 생리주기가 비슷했는데, 원래 하던 때에 생리를 하지 않아 폐경기가 온 건 아닌지 불안해한다. 산부인과 문턱까지 갔지만 폐경 진단을 받을까봐 두려워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1년 전 남편이 바람을 피웠던 그 여자는 계속 생리를 했는지 물어보며 우울감에 사로잡힌다.
엄마가 딸의 생리혈이 묻은 팬티를 벅벅 빨아주는 장면이 있는데, 빨래를 하는 엄마의 표정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생리를 귀찮아하는 딸의 팬티, 그 팬티를 빨아주며 서글퍼지는 엄마.
엄마는 우울한 감정을 달래고자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그 때 엄마가 한 말이 있다. '놓치고 싶지 않은 게 있다.'고 말이다. 그것은 분명 마음이 떠난 것 같은 남편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여자로서 놓치기 싫은 생리이기도 하다.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아내와 사랑스러운 딸을 가진 남편이 있다. 남편은 1년 전 바람을 피운 적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박은혜. 아내와 딸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현재는 그 여자와 정리를 다 한 상태지만, 옛 그녀를 향한 감정과 여운은 남편을 계속 감싸고 있다.
가정을 져버릴 수 없기에 결국 외도 상대를 정리하고 돌아오긴 했지만, 그녀와 함께했던 순간들이나 감정들이 좀체 잊혀지지 않는다. 술 마신 다음날 아내가 끓여주는 콩나물국을 먹을 때마다, 손을 씻다가 옛 여인이 생각날 때마다 남편의 가슴은 무언가로 푹푹 쑤시듯이 아리고 쓰리다. 말로 형용하기 힘든 그 감정으로 인하여 남편은 생리통 같은 고통을 잊을만하면 느끼는 것이다.
술에 잔뜩 취한 남편이 옛 바람 상대에게 전화해서 술주정을 부리바다 보고 싶다고 몇 번이나 말하는 장면은 참 오묘한 느낌을 가져가주었다.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 엄마의 모습도. 남편도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에 화가 나다가도 가라앉아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 여자가 얼마나 멋지기에 남편이 저렇게 잊지 못하고 끙끙 앓아대는지 참 원망스럽고 야속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리해서 좋은 날>을 보며 참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바로 생리혈을 꽃에 빗대어서 표현한 것이다. 영화 초입부에 제목이 뜨면서 빨간 피가 꽃처럼 번지는데, 마치 한지에 빨간 피가 번지는 것 같기도 하고, 여리한 빨간 꽃이 수줍에 피어나는 느낌도 들었다. 여성의 생리를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여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 게 바로 생리다. 첫 생리를 맞은 여성들은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마음부터 앞선다고 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를 하며 귀찮다거나 혹은 짜증난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여자로서 당연히 생리를 하지만, 이렇게 귀찮고 자꾸 거부하게 되는 게 생리다. 하지만 영화 <생리해서 좋은 날>에서는 각 인물들이 생리를 통해 다시 피어날 수 있다고 전해주거나,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을 전달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죄책감과 여운을 통해 속 앓이 하는 얄미운 벌의 수단이 되어주기도 하고 말이다.
평소 생리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그저 여자들이 일생에 지녀야 하는 것쯤으로 치부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 <생리해서 좋은 날>을 보며 생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색다른 시각으로 어떤 의미가 부여되는 게 신기하면서 나 또한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게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