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오백 오십 여섯 번째 주제
1.
건조기.
귀에 딱지가 앉도록
쓰던 사람들이 쓰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해서
구비하게 된 건조기.
정말이다.
내 인생은
건조기가 있기 전후로
나뉘어도 과언이 아니다.
실내건조 하는 번거로움이
싹 사라졌다.
인간의 발명품 중
위대한 것 중에 손에 꼽을 수 있다.
다들 꼭..사길.
2.
쓰리잘비.
이렇게 명명하는게 맞는지 모르지만,
고무모양 날?로 빗자루 역할을 하는 것인데,
머리 말리고 나서
머리카락 및 먼지 쓸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다.
기존에는 밀대를 썼는데
이게 훨씬 잘 쓸리고 좋다.
대단한 게 아닌데도
아주 좋다.
3.
아직이다.
아직 3번째를 찾지 못했다.
맘에 쏙 드는 것이 없는걸.
4.
나는 되게 팔랑귀에
뒤늦은 유행을 쫓는 사람이다.
얼리어답터는 아니고
더욱이 귀찮음도 많아서 그렇다.
좋다고 하는 것들
덜컥덜컥 사곤 했는데
전부 창고행이다.
인생은 딱히 타인의 기준을
들이댈 수 있는 건 아닌가보다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분을 놓을 수가 없다.
뭘 사야
잘 샀다는 소문이 나려나.
-Ram
1. 등산화
작년에 노스페이스 수유점가서 등산복을 보려다가 생각지도 못한 등산화를 득템했다. 두꺼운 양말을 신을 생각으로 등산화 사이즈도 크게 구매했는데 그 이후로 너무 잘 신고 다닌다. 발 한 번 까진 곳 없고, 물집이 잡힌 적도 없다. 보아 다이얼로 편하게 신발을 벗고, 신고 하니 끈을 꽉 조여맬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보아 다이얼은 겨울에 보드 타러 갔을 당시 부츠 신을 때나 탁 눌러서 돌리고 돌려서 사이즈를 조절할 때 사용했는데, 등산화에도 달렸을 줄이야. 등산화가 있으니 어떤 산이든 일단 가기가 수월해졌고, 실제로 접지력도 좋아서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방수 기능도 좋아서 물이 고인 산길에서도 천하무적이 된다. (예전에 러닝화 신고 어떻게 등산을 했을까) 잘 산 등산화가 어디든 날 데려다준다!
2. 노란색 유리도어 철제 수납장
우리 집엔 티비가 없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티비가 나오는 모니터가 방안에 있긴 하다. 하지만 거실엔 커다란 티비를 놓지 않았고 책장을 놓을까, 수납장을 놓을까 고민하다가 먼지가 무서운 나는 도어가 달린 수납장을 샀다. 수납장이든 책장이든 검색하면 흰색과 나무로 된 것이 많이 나왔는데 보다 보니 그냥 내가 그 색들에 질려버렸다. 그래서 뜬금없이 노란색 철제로 만들어진 유리도어 수납장을 주문했다. 철제가 생각보다 무거워서 조립할 때 살짝 애를 먹긴 했지만 결과는 대만족. 일단 수납장 안에 책, 공책, 자주 사용하지 않는 노트북, 아직 뜯지 않은 화장품, 코드들, 스티커들, 파우치들, 보드게임 박스들 등 잡다구니까지 바구니들을 이용해 다 넣으니 속이 후련했다. 수납장 위엔 새빨간색 JBL 블루투스 스피커와 전자시계, 선인장, 커다란 산세베리아 화분에서 어쩌다 보니 자른 잎을 심은 화분, 몇몇 위스키들과 선물 받은 술까지 올려놓으니 그 쓰임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포인트는 색상. 집에 들어오면 바로 노란색 수납장이 보이는데 옆에 있는 커다란 몬스테라와 그 외 식물들과 색조합이 너무 완벽해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딱히 인테리어에 욕심이 없었는데 노란색 수납장을 산 후 보는 족족 만족감이 상승하니 사람들이 왜 집 인테리어에 투자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기운을 몰아 집 다이닝룸을 새로 꾸미고 싶어 시간나는 대로 열심히 이것저것 검색하고 있다.
3. 멕시코66
태국에 있었을 때 주구장창 신고 다녔던 멕시코66. 내 기준 무지퍼셀보다 편하고 예쁜 신발이 또 있을 줄 몰랐다. 신다 보면 더욱 내 발에 맞아 편해지고 신 자체가 가벼운 건 두말하면 입 아프지. 신발이 가벼운 만큼 밑창이 얇긴 해서 겨울엔 살짝 넣어두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 손이 가고 발이 가는 운동화다. 20대 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0cm가 넘는 힐만 신고 다니다 30대가 되어서야 운동화에 아주 조금씩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계속 힐을 쇼핑하긴 하지만 운동화가 그 시간들을 비집고 들어오다보니 힐 신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불쌍한 내 발한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을에 나고야를 갈 예정인데 거긴 오니츠카를 저렴하게 살 수 있다길래 또 다른 멕시코66을 들고 와야겠다.
-Hee
1. 리코 Gr3x 카메라
dslr과 미러리스 카메라를 전전하다 다시 안착한 필름 카메라의 세계는 일순간에 붕괴됐다. 한 롤에 삼천 원 하던 싸구려 필름이 이만 원도 넘어서버리니 내가 가진 썩 괜찮은 필름 카메라도 렌즈도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셔터 한 번 한 번을 신중하게 누르게 되고 그 결과물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감각을 지금도 너무 좋아하지만 와인딩 한 번 할 때마다 드는 금전적 압박이 내게는 꽤 커다랗게 다가왔다. 이러다가는 기록 그 자체를 멈추게 될까 봐 새로운 카메라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구매한 새 카메라는 리코의 Gr3x였다. 일단은 작고 가벼워서 좋다. 카메라로서의 성능은 무지성으로 HDR을 남발하는 스마트폰 카메라보다 훨씬 사진다워서 좋다. sd카드에 있는 사진을 핸드폰으로 꺼내 오는 과정은 새 필름을 몇 개씩 챙겨서 다니고, 32컷을 모두 촬영한 다음에는 매거진을 갈아줘야 하고,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 현상소에 필름을 맡긴 뒤 며칠을 기다려야만 하는 과정보다 훨씬 훨씬 간소하다. 컷 수에 제약이 없는 데다가 화각까지 내 마음에 쏙 든다. 아마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 카메라부터 접해서 사용해 본 사람은 전혀 실감할 수 없는 장점이겠지만.
2. 티타늄 플라스크
백패킹을 갈 때마다 소주든 와인이든 그날 마실 술 한두 병 정도야 거뜬히 배낭에 넣고 다녔지만 이제는 가벼운 티타늄 플라스크에 그날 마실 위스키를 골라서 넣어 다닌다. 무게가 가벼워서 좋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져갈 수 있는 양이 제한적이라 딱 적당하게만 취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플라스크의 뚜껑을 여닫는 느낌. 작은 구멍으로 위스키가 쫄쫄 흘러나오는 소리. 제한을 걸어둔다는 것만으로도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소중해지는 느낌. 고립을 즐기러 굳이 배낭을 메고 산속에 들어가는 일과 결이 맞아서 한 층 더 좋다.
3. 빅 아그네스 가드 스테이션8 쉘터
돌고 도는 유행을 바짝 따라붙어 다니다가 결혼을 한 뒤 메인 스트림에서부터 한참 멀어지고 나서부터 나의 캠핑 스타일을 정립할 수 있었다. 내가 캠핑이라는 취미를 지속하기 위해서 펼치고 접을 때마다 두 시간씩이나 걸리고, 전기를 끌어다 써야 하는 맥시멀한 캠핑은 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오토캠핑을 하면서까지 불편하게 쭈그린 채 지내다가 허리 부서지는 미니멀한 캠핑은 하고 싶지 않다. 가드 스테이션8은 적당히 넓고 적당히 안락하고 설치와 철수에 적당한 시간이 드는 쉘터다. 만듦새는 적당히를 넘어서면서 적당히 인기 없는 바람에 지난 블랙 프라이데이 시즌에 본래 가격의 절반 값에 구할 수 있었다. 아마 스킨이 삭아서 가루가 될 때까지도 처분하지 않고 만족하며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든다.
-Ho
물건을 잘 안사는 편이고 심사숙고해서 사는편이라 고르는데 힘들진 않았다.
1.호카 호파라 샌달
작년에 남편이 남자친구인 시절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줬는데 진짜 편하다. 맨발에 신어도 되고 양말신고 신어도 되고 바다갈때 그냥 신고가서 물에 닿아도 되서 좋다. 이거 사고 남편이 니가 물건사고 그렇게 웃는거 첨본다 했었다.
2. 스텐리 레거시 쿼드백 500미리 텀블러
이건 한 4년전에 사서 아직 잘쓰고 있는데, 찬거든 따뜻한거든 유지가 잘되고 튼튼하다.
요새 나오는거는 빨대형식이 유행인거 같은데 나는 무조건 밀폐되는걸 선호해서 가방에 넣고 다녀도되서 좋다.
3. 살로몬 운동화
또 신발인데.. 살로몬은 진짜 너무 편하고 심지어 이뻐서 한국와서 또 사고 싶어봤더니 28만원이라..
운동화에 28만원은 좀 아닌거 같아서 다음에 운동화를 산다면 호카를 살것같다.
이제는 물건을 살때 최소한 60살이되도 내가 이걸쓸것인가 생각하고 사게된다.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말자 해도, 다이아몬드 반지는 하나 가지고 싶은거보면 미니멀리스트는 멀었지 싶다.
-인이
2024년 9월 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