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주 Apr 30. 2024

아프지마오약국에 관한 보고서

  - 어느덧 5개월

 시작은 아마 2022년 3월이었을 것이다. 


 약국이 들어있던 마트 건물이 부동산 디펠로퍼 회사에 팔렸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되었으나 4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의 대차 재계약이 이미 이루어진 후였다.  계약 당시 임대인으로부터 아무 언질을 받은 바가 없었지만 계약서에 명시된 시간 동안의 영업은 보장되는 것이었으므로 달리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후 그해 8월로 매듭지어질 줄 알았던 매각 건은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부동산 PF 시장이 얼어붙는 바람에 디벨로퍼사가 잔금을 지급 못한 채 시간을 끌다가 지불유예 기한까지 넘기고 말아,  매각 자체가 결렬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어수선하고 불안한 상태로 2023년을 맞이했다.

  

 23년의 임대차 재계약은 1년이 아니라 10월 31일까지 딱 7개월이었다. 수용하거나, 아니면 말고. 22년에 이미 방을 뺀 안경점을 제외하고도, 공차와 아가방 두 곳이 재계약을 포기하고 나갔다. 지하 푸드코트는 문을 닫았다. 약국의 운명은 내 손을 떠났음을 직감했다. 

 일단 계약서에 서명은 했다. 진인사 대천명의 순간이었다. 새 둥지를 찾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후로 매일 매일이, 다시 새로웠다. 걸핏하면 트집 잡고 반품해달라던 아주머니도 반갑고, 늘 보던 꼬맹이들도 예사롭지 않았다. 

 한자리에서 13년. 긴 세월이었다. 코로나 시대를 함께 헤쳐온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10년 문을 열 때 함께 시작했던 부장이 제약사로 이직했고, 오래 함께한 여자 직원이 떠났고, 대부분을 종일 혼자서 일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자정까지 열었는데,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시대 변화와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밤 10시에 일찍(!) 문을 닫게 된 것도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다.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 몰랐다. 한 5년쯤 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줄 알았다. 이제는 여기가 '제자리'인 것을이것이 내 업(業)임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아무것도 몰랐고 내가 이 길로 오게 될 줄도 몰랐다. 그렇게 시작은 미미했으나 사람들이 나를 키웠다고 행각했다. 좋은 약사님, 친절하게 설명을 잘해주고 잘 낫는 약을 주는 선생님, 믿을 수 있는 분.... 이런 상찬들이 모여 나를 만들었다. 나는 내 자리를 소중하게 생각했고 나로부터 시작되는 선한 날개짓의 힘을 믿었다.  


 아래 사진은 2016년에 지하로 옮겨 와 재오픈하기 전날 찍은 것이다. 재오픈하는 날 정말 참 많은 분들이 와 주셨다. 고맙고, 힘이 되었다. 

7월 28일 오픈이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2016년.

 

 나는 남쪽으로 옮겨 와 다시 문을 열었다.  

 새 사업자둥록증을 받기 위해서는 약국 이름을 정해야 한다는 세무사의 전화에, 즉석에서 아프지마오약국을 떠올렸다. 아프지마오약국으로 오세요... 브런치북 타이틀을 그대로 옮겨왔다. 

아프지마오약국 오픈 하루 전. 2023년 11월 30일.

 

 3월까지 남은 계약기간 동안 약국을 해보기로 한 약사님께 권리금도 없이 모두 (청소기까지) 다 넘겨주었으나 몇 가지는 가지고 왔다. 오래 된 시계와 금고, 시간이 축적된 컴퓨터 본체와 터치식 모니터. 그리고 초심을 적은 A4 용지 한 장.


내가 나눠준 지식으로 건강을 회복한 그들은

약사로서의 내 존재 의의를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건강하게 영위할 것이니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선순환이 

나로부터 시작됨을 잊지 말자

 

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비처럼 온 세상으로 퍼져나갈 것임을 

나는 믿는다


 아프지마오약국이 12월 1일 문을 열었다. 

 억울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그대 부디 아프지마오. 

 이 이름의 의미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동네 딸이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