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청춘이다
다함과 변화의 때를 묻고
오랫동안 답을 못하다가
숨찬
기슭
더 푸를 수 없이 푸른 후에야 붉고
더 붉을 수 없이 붉은 후에야 지는
너를 보고 알았다
다함이란, 변화란
더 쌓을 수 없이 쌓고
더 쏟을 수 없이 쏟아야
비로소 닿는 채움과 비움이란 것을
나는 그저
흐르고 싶은 대로 흘러
하지 못하고, 하지도 않을
feat. 삶
# 삶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만 소용하지 않는다
사람이 자연의 일부인 이상, 사람은 받아들인 에너지를 모두 배출하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에너지의 총량은 언제나 동일하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 집적될 수 없고, 언젠가는 반드시 나의 집적으로 인하여 부족이 생긴 곳으로 에너지를 보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연법칙에 매인 사람의 태어남과 죽음의 경로이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그러하지 않다. 사람은 삶이 유지되는 동안, 그래서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배출하는 동안, 자그마하게나마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붙잡아 두었던 에너지를 여타의 다른 생물처럼 오로지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만 소용하지 않았다.
# 남겨둠이 희망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삶의 영위란 ‘사람의 생성과 소멸이 열역학 법칙에 구속되지 않음을 선언하는 작업’인 것으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인류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잡아 둔 에너지를 사유의 형태로, 글의 형태로, 예술의 형태로 남기어 두어, 지속적인 사상과 문화를 형성함으로써 죽음에 대하여 처절하게 항거하고, 또한 죽음을 준비하며 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과정을 누대에 거쳐 이루어왔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언젠가는 우리의 사유가 빚어낸 모든 것들이 한 줌의 재로 흩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내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았고, 그러한 삶의 연속을 자신이 영위한 삶의 일부를 다른 형태로 남겨두는 것에서 이룩하고자 했다.
그러한 남겨둠이 희망이다.
편리하고 안락한 문명이 이대로 계속되어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파멸될 수 있는 것에 대한 거부는 필요하고, 또한 그것이 인류가 삶의 연속을 위하여 작업한 남겨둠의 기본 원리에 충실한 것이기도 하다.
문학이든, 예술이든, 과학이든, 문화든 명칭 여하를 불문한 우리의 역사는 사람의 삶이 죽음으로써 끝이 아니라는 희망, 그 희망에 대한 긍정적인 방법과 지향점의 기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