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월 Oct 13. 2024

2화>친구라는 이름으로...

신난다 신나! 오늘은 주인이 외출에 나섰다. 이게 몇 개월 만인가. 한 3개월은 됐을까? 사람을 만나는 것 말이다. 매일 방구석에서 휴대폰만 보는 게 속이 터질 만큼 답답하고 안쓰러웠기에 바깥공기를 마신다는 이야기만으로도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주인이 웬일로 밖으로 나가게 됐는가 하면, 친구의 연락 때문이었다.      


         친구 : 뭐 하고 있어?     

         주인 : 그냥 누워있지      

         친구 : 맨날 누워있냐~ 주말에 뭐 해?     

         주인 : 나? 그냥 집에서 누워 있을 건데?     

         친구 : 그럼 나와. 커피 마시자     

         주인 : 아냐. 귀찮아. 사람 많은 곳에 나가서 놀 기운 없어     

         친구 : 나와 나와~~      

         주인 : 나 진짜 사람 많은 곳 가면 어지러워서, 우리 다음에 보자

                  다른 친구랑 놀아~      

         친구 : 난 네가 보고 싶다고! 그냥 나와~ 어? 어?      

         주인 : 미안 하지만 거절할게      

         친구 : 야! 맨날 집에서 할 일 없이 있잖아. 나와서 바람도 좀 쐬고!! 

                  나오라니까? 나와 나와 나와      

         주인 : 하아....      

         친구 : 나올 거지?     

         주인 : 알겠어 알겠어. 그럼 잠깐만 보자. 나 오래는 힘들어      

 

그렇다. 끈질긴 친구의 요구 때문에 주인이 나갈 결심을 하게 된 거다. 주인의 단점 중 하나는 상대가 끈질기게 부탁하면 거절을 못하는 거다. 아마 갈등을 싫어하는 성향이 반영된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에는 짜증은 꽤 나버린 듯하다.  짐은 몇 개월 만에 사람을 만나 바깥공기를 쐬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평소에도 저 친구의 끈질긴 요구 때문에 거절을 잘 못하는 주인이 억지로 무언가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친구의 요구가 예뻐 보였다.      

  

몇 개월 만에 나온 세상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휴대폰을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어떤 이는 전화통화를, 어떤 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목적지를 향해 이동했다. 주인은 무표정으로 멍하니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세상만사 모든 게 다 귀찮은 표정이다.      


         ‘휴... 정말 피곤하다... 

          지하철에도 사람이 너무 많아. 어지러워 ‘

      

무기력감에 빠져있는 주인은 사람들이 듬성듬성 있는 오후 시간이라고 해도 지하철을 타는 게 아직은 버거운가 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 주인은 유독 사람들이 있는 곳을 힘들어한다. 사람이 많아지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면 주인의 심장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호흡이 가빠지고 불안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계속 만나자고 해도 거절을 했어야 하는데... 또, 거절을 못했어. 

         한두 번 싫다고 거절하면 좀 들어줘야 하는 거 아냐?

         왜 거절해도 계속 이야기하는 걸까?‘     

 

계속 친구와 관련된 생각을 하니 주인의 상태가 안 좋아졌다. 가쁜 숨을 내 쉬기 시작한다. 거친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을 보니 마냥 외출을 좋아한 게 살짝 미안해졌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그 친구를 만나면 더 피곤해지는 일이 많기는 했다. 그 친구를 만나면 감정 동요가 심해진다. 그 친구는 자기가 원하는 건 꼭 해야 하는 스타일이니까. 그래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인드로 사는 주인에게 하자는 게 많다. 주인이 거절을 쉽게 못하는 걸 아는 거겠지? 주인은 싫다고 여러 번 이야기해도 상대가 계속 요청을 하면 결국에는 마지못해 들어주고 만다. 예전 일들을 생각하니 외출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인은 이상하게 거절을 잘 못한다. 그래서 옆에서 볼 때 가끔은 이런 성격이 답답하다. 왜냐면, 주인이 행복하지 않은 결말이 많기 때문이다. 있는 대로 애를 다 쓰고, 정작 주인은 지쳐서 집에 오면 뻗어 버리는 일이 많다. 어떨 때는 주인이 화를 냈으면 좋겠다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숨쉬기 버거워하는 주인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잘 다독이는 것이 우선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청소 밖에 없지만, 불안한 감정이 쓰나미처럼 흘러 들어오면 버틸 재간이 없다. 오늘은 조용히 바깥 공기만 즐겼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청소를 할 뿐이다.      


 



눈이 부시도록 햇살이 내리쬐는 한 카페. 약속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한 주인은 음료를 시키고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햇살이 따땃하니 기분이 좀 좋은 것 같다. 햇살이 주는 싱그러움을 느끼고 있다 보니 어느새 친구가 도착해 인사를 건넨다. 그리 나오는 걸 귀찮아하더니 막상 친구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나 보다. 오늘은 별 탈 없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이것은 짐의 희망사항이 되고 말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인의 기분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비상경보를 내려야 할 것 같다. 마음 저장소에 화와 짜증을 상징하는 빨간색 감정조각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감정조각들을 재빨리 치워보지만 감정 조각이 흘러들어오는 속도를 맞출 수가 없다. 주인의 호흡도 더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하아... 참자... 참어...’      


 주인의 혼잣말이 안쓰럽게 들린다. 짐은 주인의 생각처럼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붉은 감정 조각을 더 빠르게 치우려 바삐 움직인다. 주인도 주먹을 불끈 쥔 채 호흡을 천천히 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려 노력하고 있다. 조금씩 평정심을 되찾아 가는 것도 같다. 

주인이 이렇게 감정 컨트롤을 못하는 건 친구의 하소연이 점점 길어지면 서다. 그러고 보니 저 친구는 주인과 통화할 때마다, 밖에서 만날 때마다 매번 힘들어 죽겠다며 주인을 붙잡고 늘어지는 친구였다. 오늘 밖으로 나오게 해 줘 고맙다고 생각하다니. 짐은 잠시잠깐 동안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원망했다.      

 

      주인: 그래, 힘들었겠다. 

             네가 고생이 많았네      

        친구: 진짜 내가 한 고생만큼 그 인간도 고생했으면 좋겠어

              난 왜 이리 운이 나쁜 거야? 걸려도 이런 인간이 직속 선배인 건 뭐냐고.      

              얼마 전에는 자기가 일을 실수해 놓고 뒷정리는 나한테 떠넘기는 거 있지? 

              내가 수습하느라 집에도 못 가고 며칠을 회사에서 지냈는지... 

              아니! 

              그것도 처음에 내가 분명히 잘못됐다고 이야기해 줬다고. 

              그런데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기더니... 

              나중에 문제 생기니까 나보고 해결하라 하네? 기가 차서      

 

친구의 하소연 섞인 말들을 들으며 주인은 지친다는 생각을 했다. 왜 자신을 만날 때마다 다른 이의 욕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오늘 하는 선배 이야기만 해도 벌써 열 번 이상은 들은 것 같다. 결과적으로 하는 이야기도 똑같다. 선배가 펼쳐놓은 업무 뒷정리를 자신이 했다는 말. 성인인데 그런 일은 조용히 선배와 이야기해서 정리할 수 없는 걸까. 만약 그럴 수 없다 해도 만날 때마다 선배 욕을 하는데, 듣는 입장에서는 너무나 지친다. 자신을 감정쓰레기통으로 쓰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다.      

 

        주인: 그 선배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못 알아들을 거 같아 

               이제 그 얘기 그만하고, 

               우리 오랜만에 봤는데 다른 얘기 하자      

         친구: 아니, 그렇게 티를 냈는데 못 알아들으면 바보 아냐?? 

                 뭐 다 떠먹여 줘야 하는 어린이야?      


친구는 흥분한 마음을 감추지 않고 또다시 선배를 탓했다. 하아...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이야기를 그만하자고 살며시 티를 냈는데 못 알아듣는 건 그 선배나 친구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방금 말한 다른 이야기 하자는 들리지 않은 걸까? 그냥 들었는데 무시하는 걸까. 못 들었을 리는 없다. 결국 친구도 자기감정을 쏟아낼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뿐이다.       

  


주인은 자신의 목소리가 허공에 부딪힌 거 같아 마음이 공허해졌다. 그리고 결국 이런 결과를 얻게 될 걸 알면서 친구를 만난 자신이 한심했다. 즐거운 얘기만 하다 헤어지길 바라는 건 이루기 어려운 꿈이었나 보다. 왜 다들 본인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지, 자신은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덩달아 짐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빨간색 감정 조각들이 빠르게 흘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이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감정조각의 양이 아니라고!      


주인이 활화산처럼 터지기 전에 막아야 했다. 지금은 감정을 청소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친구! 이제 입 좀 다물지 그래?

     지금까지 들어줬으면 됐지 않아? 뭘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 계속 떠드는 거야

     주인이 웃으면서 이야기할 때 멈추라고...!!      


하지만 자신이 청소해서 없애는 감정조각보다 밀려들어오는 감정조각의 속도가 배는 빨랐다. 거기다 전부 화 감정조각이다. 주인이 곧 폭발할 것 같다. 감정조각이 파도처럼 거세게 들이닥친다.      


        주인: 아! 쫌! 그만 얘기해 

              그 선배 얘기 진짜 못 들어주겠네

              적당히 하라고. 왜 사람이 말을 하면 몰라?

              그 선배나 너나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건 똑같아. 너도 지금 그러고 있잖아 

              나한테 그 선배 일 못한다,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욕하지 말고

              직접 가서 단판을 짓던가! 

              내가 무슨 니 감정 쓰레기통도 아니고 적당히 해야지      

    친구: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하소연 좀 한 거 가지고~      

            


주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소연 좀 한 거란다. 순간 더 화가 난 듯한 주인은 참아왔던 이야기들을 다 풀어내듯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주인: 그 하소연 이제 다른 사람한테 해 

               같은 말을 몇 번씩 듣는 것도 힘드니까. 

              이제 네가 이야기 시작하면 또 어떤 하소연할지 무서울 지경이야 

              그걸 다 듣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아? 

              적당히 해야지. 적당히!      

        친구: 내가 뭘 얼마나 얘기했다고 그래~

                그리고 얼마나 답답했으면 너한테 이야기하겠어?    

         주인: 그니까 이제 그거, 다른 사람한테 하라고

                 난 못 들어주겠으니까 

                너 전화할 때마다, 만날 때마다 다른 사람 욕하는 거 알아?

                그때마다 듣는 내 기분이 같이 다운되는 느낌이야 

                그리고, 그렇게 불만이면 직접 얘기해. 참을 거면 계속 참던가. 

               직접 이야기도 못하면서 뭘 자꾸 나를 붙잡고 감정쓰레기통 만드는 거야 

               앞으로 그런 얘기할 거면 연락하지 마      

         친구: 하!!...      

 

주인의 폭발에 친구도 기분이 상한 듯 말을 멈춘다.      


         그러게 그만 얘기하라 할 때 멈춰야지! 

         왜 매번 들어주기만 하던 주인이 날카롭게 얘기하니까 그건 기분이 상해?

         그동안 안 좋은 감정만 퍼붓고서는?!      

 

짐은 이 순간에도 본인이 주인한테 한 행동에 미안한 감정이 없어 보이는 친구가 얄미웠다. 앞으로 안 그러겠다고 말 한마디 하는 게 어려운가 싶었다. 다 토해낸 덕분에 주인의 화난 감정은 사그라졌지만, 친구에게 화를 낸 걸로 또 미안한 마음을 가질 게 뻔하다. 주인이 마음 불편할 걸 생각하니 친구가 더 괘씸해지는 짐이었다.      

     주인: 오늘은 이만 헤어지고, 다음에 시간 맞춰 보자      

     친구: 그래. 또 연락할게.      


친구와 헤어지고 지하철을 탄 주인은 그저 사람들을 지켜보며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 참지 못하고 화내고 말았어. 

         한 번 더 차근차근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나는 왜 이러지? 

         감정 컨트롤도 못하고 바보 같아!! 

         짜증 난다 정말....‘      


마음이 진정되니 자신이 한 행동이 실망스러운가 보다. 주인은 항상 이렇다. 꾹꾹 눌러 참다가 한 번 폭발해서 화를 내고 나면 또 자책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해야 할 말을 했어야 하는 것뿐인데, 또 자신을 탓하는 걸 보니 안타깝다.      

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다. 지금 남아 있는 화와 미안함을 없애주는 게 좋겠지? 짐은 마음저장소 안에 스며들고 있는 감정 조각들을 닦아 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줄어들어 지금 가지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전 01화 1화> 그저 살아가는 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