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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월 Oct 15. 2024

5화> 손목이 간지러워

마음청소부

어느 날 오후였다. 

주인이 손목을 그었다. 상처가 났다. 죽을 생각은 없었지만 죽고 싶었다. 그런데 아직 깊게 상처를 낼 용기가 없었다. 그 결과가 손목의 상흔이다.  예전에는 죽는 사람은 많이 괴롭고 힘들고 삶에 희망이 없어서인 줄 알았다. 꼭 그렇지만은 않은걸 이제야 알았다. 다른 이들보다 삶이 힘드냐 묻는다면 그만큼 힘들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지금 죽고 싶을 만큼 힘드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대답할 것이다. 다만, 사는 게 너무 귀찮다고 지겹다고 이야기해 줄 거다. 귀찮고 귀찮아서 그만하고 싶다고....      

그리고 손목을 긋는 순간 느껴지는 해방감은 주인에게 미소를 띠게 만들었다. 이대로 잠들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채로...  




주인이 손목을 그은 날, 짐은 마음저장소에 끝없이 들어오는 자괴감, 자포자기, 실망감, 두려움, 무기력함 등의 감정들에 질식해 죽는 줄 알았다. 청소를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죽음을 부르는 감정들로 쌓여갔다. 짐은 아직 때가 아니라며, 조금만 더 버텨보라는 외침과 함께 청소를 해나갔다. 다행히 주인은 죽지 않았다. 그게 자신의 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짐은 그저 주인이 아직 용기가 부족했던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이때에는 용기 없는 게 백만 배 낫다 여겼다.      




         ‘아...... 의사 선생님한테 혼나겠다’      


진료를 위해 대기를 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낮아진 이후로 젊은 남녀도 병원에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인도 그중 한 명이다. 이 병원을 다닌 지는 몇 년이 됐다. 이제는 햇수조차 의미 없을 만큼 오랜 시간 치료를 받고 있다. 안쓰럽게도 아직 이런 상태지만 말이다.      


          “주인님,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진료실로 들어선 주인은 주치의와 인사를 나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잘 지냈어요. 

         그런데 손목을 계속 긋고 싶어요. 혈관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어서, 간지러워요 “      


의사 선생님에게 말하는 순간에도 주인은 손목을 긁고 있었다. 손목이 점점 빨개지는 것도 모르는 체 말이다.      

         “손목 그만 긁고.... 

         무슨 일이 있었어요? “      

 

        “아뇨. 그냥.... 모르겠어요 

         마음이 답답해요.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어 “     

 

        “언제부터 그랬어요?”     

 

        “지난주....? 

         아~~ 너무 간지러워요 “     

 

        “특별한 일이 없는데  자해 생각이 나던가요...? “     

 

        “무슨 일이 있던 거는 아닌데, 

         마음이 혼란스러워요...  내가 너무 싫어...  왜 내가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      


주인은 어지러운 자신의 감정을 의사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주인은 때때로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감정에 휩싸이곤 했는데, 요즘 들어 자해를 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곤 했다. 약을 한 번 조절한 뒤에 잠시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이번주에 또다시 손목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다며 자해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해를 하지 않기 위해 칼로 손목 긋는 걸 참는 날에는 손톱으로 손목을 긁는 일이 많아졌다.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자해를 끊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처럼 자해를 계속하시면  입원치료를 권유할 수밖에 없어요 “      

 

        “입원은 싫어요!!!!”      


         “네... 항상 입원은 거부하시는 것 알아요”      

 

        “우리 가족 아무도 모르는데...  입원하면 다 알게 되잖아요 “      

 

        “그러면 약을 좀 더 증량시킬 테니 약을 잘 챙겨 드세요. 

         자해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 거예요. 진짜 손목 그으면 안 돼요!!  참을 수 있죠?? “      

 

        “움... 참아 볼게요

         그런데 긁는 건 괜찮지 않아요? 그것도 안돼요?”     

 

        “안 돼요.  손목을 계속 긁다 보면 자해에 대한 충동이 높아져요. 그러니 긁지 않도록 참아보세요.    

         다음 주에 한 번 더 뵙죠. 한 주 동안 힘내시고요 “      

 

        “네.... 감사합니다...”      


주인은 진료실을 나왔다. 의사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듯하다. 그래도 간지러운 걸 어떻게 참아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주인!! 의사 선생님도 걱정하잖아! 

         기운을 좀 내보라고!! 

       

짐은 응원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답답했다. 주인이 괴로움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감정들을 없앤다고 노력하는데, 잘 청소가 되지 않을 때는 죄책감도 느껴졌다. 언제고 주인이 다시 괜찮아지는 날이 생길지 걱정도 앞선다. 그래도 자신이 포기하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아마 오늘도 짐은 힘을 낼 것이다.      


약을  증량해 먹은 뒤로 손목 자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게 약의 힘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손톱으로 손목을 긁고 있었다. 자해할 때 해방감을 또다시 느끼고 싶었다. 참아보겠다 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마음속의 주인이 싸우고 있었다.  어느 날은 손목을 긁지 않고, 또 어떤 날은 손목이 빨개지도록 긁는 날을 보냈다. 하도 긁어서 손목이 검붉어져 착색이 되어 있었다      


         주인... 이제 그만 긁어....

         뭘 그렇게 견딜 수 없는 거야      


짐은 주인이 안쓰럽고, 이 상황이 답답했다. 자신이 언제나 감정조각들과 싸워 이길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물론, 아직은 주인의 부정적인 감정이 너무나 컸다. 그래도 여전히 가장 옆에서 응원하는 것은 자신이다. 주인의 슬픔도, 아픔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니까. 이겨내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손목을 칼로 긋지 않는 것이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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