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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영 Mar 28. 2022

이 제목을 클릭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계시나요?

디자인과 심리학 : 18. 기표와 기의

기표 : 보이거나 들리는 것 바로 그 자체
기의 : 기표를 접했을 때 떠오르는 의미 또는 개념


우리는 친구한테 '강아지'를 설명하기 위해, '강아지'를 직접 눈앞에 데리고 올 필요가 없다. 그저 '강아지'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하기만 하면, 친구는 '강아지'의 이미지를 즉시 떠올릴 수 있다.


여기서 '강아지'라는 소리 자체는 기표이고, '강아지'라는 소리를 듣고 떠올린 이미지나 개념은 기의이다. 근데 누구는 '푸들'을, 누구는 '비숑'을 떠올릴 수도 있다. 기표가 같아도 기의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언어학, 기호학적으로는 같아 보이는 기표도 미묘하게 다르다고 한다. 예) '강아지'라는 소리를 발음할 때, 톤과 음색의 차이)


같은 기표가 매번 다른 기의로 받아들여진다면, 세상은 너무나도 복잡해질 것이다. 이러한 복잡함은 '언어'를 통해 대부분 해결되었다. 일종의 규칙을 만들어 낸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강아지'를 설명하기 위해 강아지를 직접 데려올 필요가 없어졌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언어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을 보자.


이 사진을 보고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이 사진을 보는 우리는, 이것이 '평평한 곳에 세워놓을 수 있고, 상단부의 뚜껑을 잡고 돌릴 수 있는 원기둥 모양의 통'이라는 걸 곧바로 인지할 수 있다.


언어 규칙과 더불어, 이러한 통 디자인 또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기표와 기의의 관계이다. 우린 덕분에 비슷한 모양의 통을 보면, 뚜껑 부분을 잡고 돌려서 열려는 시도를 별생각 없이 진행할 수 있다.


자, 우린 이제 저 통을 집어 들어 뚜껑을 열 것이다. 어? 근데 뚜껑이 헛돌기만 할 뿐 열리지가 않는다. 뭐지?


알고 보니 이 통은 처방약 통이었다. 처방약 통의 뚜껑은 어느 한 지점에서 꾹 누른 채 돌리거나, 특정 부분을 양 손가락으로 집고 돌려야 열린다. 어린이가 함부로 열 수 없게 하기 위함인 건 알겠는데, 그 의도는 실제로 어떻게 작용되고 있을까?


어린이 또한  통을 보았을 (기표), 뚜껑을 잡고 돌리면 열린다는 (기의) 인지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위험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어린이한테도, 기대되는 기의에 따라 뚜껑이 손쉽게 열려버린다면?  뒤에 일어날 일은 장담할 수가 없게 된다. 나는 이것이 기표와 기의의 개념을 명확하게 인지한 좋은 디자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다른 예시를 보자.


아이폰의 옆면 (출처 : iPhoneTricks.org)


아이폰의 왼쪽 상단에 있는 스위치 버튼은, 그 자체로는 '일정한 압력을 가하면 아래 또는 위로 움직이는 물리적 장치'이다.


아이폰 사용자는 그 장치가 '무음 모드를 켜고 끄는 버튼'으로 동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과연 아이폰을 처음 사용하거나, 스마트폰 자체를 처음 접한 어린아이에게도 똑같이 받아들여질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애플은 해당 스위치 버튼을 동작할 때, [무음 모드 킴], [무음 모드 끔]이라는 UI를 띄워서 그것이 '스마트폰의 무음 상태를 관리하는 버튼'이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인지시킨다. (물론 '무음 모드'라는 단어를 모르는 어린아이라면 그 조차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언어가 이렇게나 중요하다니)

스위치를 동작했을 때 나타나는 UI


그렇다면 온라인에서는 어떨까?


아래 이미지를 보자.

우리는 이를 '클릭하면 무언가 반응하는 버튼'으로 쉽게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를 떠올려보자. 그땐 이렇게 가운데 다음이라는 글씨가 써진 직사각형만 봐선, 그런 기능을 하는 버튼이라는 걸 인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초기의 애플은, 이미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비교적 명확하게 정의된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을 그대로 접목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던 기기의 버튼 모양과 질감을 최대한 그대로 구현하려고 했고, 서재 애플리케이션 또한 실제 서재를 연상케 하는 인터페이스를 적용했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디자인할 때, 기표와 기의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통상적인 스위치 버튼을, '무언가를 활성화 또는 비활성화할 수 있는 기능'이 아닌 '전원을 켜고 끄는 기능'으로 디자인해버린다면, 고객은 갑자기 꺼져버린 기기를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다.


또는 이렇게 파란 글씨로 밑줄이 쳐져있는 텍스트를 클릭했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 당황스럽지 않을까?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강박적으로 지키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디자인엔 정답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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