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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Apr 19. 2017

흘리지 마라 vs 흘리면 닦자

<겨울왕국>을 보고(크리스 벅, 제니퍼 리 감독, 2014)

두 달 전이다. 둘째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초대장을 보내왔다. <자녀와 함께 하는 송편 만들기> 행사를 알려온 것이다. 매일 등 하원을 하며 어린이집 앞을 서성거렸지만, 아이가 생활하는 공간에는 가본 적이 없어 궁금한 마음을 해소할 겸 덜컥 참석한다고 했다. (잠시, 아주 잠시 나만 홀로 남자면 좀 쑥스럽겠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일주일 후 두 명의 할머니를 포함해 열 명 가량의 부모가 참석했다. 반가운 얼굴을 본 아이들 중 몇몇은 평소보다 더 큰 액션으로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여 엄마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고, 또 몇몇은 엄마 품에 안기어 눈앞에 펼쳐지는 일들을 조용히 관찰하기도 했다. 한 여자 아이는 선생님의 품에 안겨 있었는데 새초롬히 입술이 삐죽 내민 것이 꼭 나의 첫째 아이와 닮았다. 올해 아홉 살인 첫째 아이는 돌 때부터 3년 간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우리 부부는 한 번도 이런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잠시 어색한 소개의 시간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송편을 만들 준비가 이루어졌다. 식탁에 하나둘씩 음식재료가 옮겨지면서 다들 자기 자리를 찾아 앉는데, 그때 한 아이가 식탁에 발을 올린다. 갑작스런 아이의 행동에 놀란 엄마가 말한다.  


 

“친구들을 봐! 누가 여기에 발을 올리니?!”  


 

시무룩해진 아이가 고개를 떨구는 찰나, 나와 눈이 마주쳤다. 괜스레 미안해진 나는 녀석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왜 발을 올렸을까? 

’식탁에 지나가는 징그러운 벌레를 잡으려고‘ 

아니면 ’발바닥이 가려웠거나 먼지가 묻어 이를 털어내려고‘ 


 

엄마의 말을 들은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행동이 예의범절이 아니니 그러진 말아야지‘ 하고 

아니면 ’남들은 하지 않은 일은 하면 안 되는구나‘ 하고 


 

육아에 있어 건강한 생각과 바른생활습관을 갖게 가르치는 훈육은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 것만큼 어쩜 그보다 더 중요하다. 그런데 아이가 기어 다니다 걷고 또 뛰게 되면, 소리에서 단어로 말하다가 급기야 자신의 생각을 문장으로 말하는 순간이 되면 훈육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육아 전문가들의 책을 보더라도 나와 내 아이의 상황에 딱 맞는 것은 아니고, 때론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달라 종종 혼란스럽다. 그러고 보니 훈육의 어려움은 나라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2014년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좋아했던 영화가 있다. 다름 아닌 <겨울왕국>이다. 당시엔 가방, 모자, 옷을 온통 엘사와 안나로 장식했던 첫째 아이와 보았는데, 요즘은 세 살 둘째와 또다시 보고 있다.  


 

아렌델 왕국에는 엘사와 안나, 사이좋은 두 공주가 살고 있다. 모든 것을 얼려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언니 엘사와 즐거운 상상과 밝은 미소를 가진 동생 안나. 어느 날 둘은 잠에서 깨자마자 눈과 얼음을 만들며 놀기 시작한다. 그러다 엘사의 마법으로 인해 안나가 싶은 상처를 입게 되고, 급히 달려온 아빠(왕)는 쓰러진 안나를 보며 어린 엘사에게  


 

“무슨 짓을 한 거니, 통제 불능이잖아?”하며  


 

소리를 높인다. 다행히 트롤을 찾아 안나의 상처를 치료하지만, 그로부터 ’엘사의 마법은 아름다우나 위험하기도 하니, 이를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에 아빠는 자신이 아이들을 지킬 것이며, 엘사는 확실히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런 후 아빠는 무슨 일을 했을까? 


 

성으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시종의 수를 줄이고, 사람과의 접촉을 금지한다.  


 

이렇게 엘사의 힘을 누구도 알지 못하게 숨긴다. 같이 눈사람 만들자는 동생의 간절한 요청에도, 차갑게 닫힌 문에 기대어 온 몸을 웅크려야 했던 엘사는 “숨겨라, 의식하지 마라, 보여주지 마라”는 아빠의 말을 되새기며 자란다. 왕과 왕비인 아빠와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시고도 철저히 떨어져 살았던 자매는 언니 엘사의 대관식이 열리는 날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런데 느닷없이 안나는 결혼을 선언하고 엘사는 불허한다. 그러자 안나는 그동안의 외로움과 서운함을 언니에게 토로하는데, 이를 듣고 당황한 엘사는 결국 통제력을 잃고 아렌델을 온통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길을 가는 엘사가 마음껏 노래를 부르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Let it go>다. 


 

Don’t let them in, Don’t let them see.  

Be the good girl you always have to be.  

Conceal, don’t feel, don’t let them know.  

Well, now they know.  

Let it go, Let it go.  


 


 

엘사가 홀로 눈길을 거닐며 <Let it go>를 부르는 장면은 언제나 육아에 지친 내 속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그러다 문득 안나가 처음 다쳤을 때 어린 엘사가 마법을 통제하도록 가르치는 방법에서 왕인 아빠가 다른 모습을 보였다면 어떠했을까? 아빠가 엘사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함께 작은 마법을 사용하며 실패하는 법을 하나씩 알아갔다면, 마법의 힘이 심장에 닿아 사람을 해치는 치명적 위험을 제외하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면 혹시 힘을 조절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며 뭉실뭉실 상상해본다. 아마 그랬다면 재미난 영화가 탄생하지 않았겠지! 


 

성장할수록 마법의 힘은 강해지는데,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엘사에게, 부모가 한 것은 ‘숨겨라. 의식하지 마라’는 말이 전부였다. 함께 부딪히고 위험에 노출되며 점점 자신감을 찾아가는 방법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선언적인 훈육. 이것이 엘사를 더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자신을 가두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에 깊숙이 빠져들었던 엘사가 드디어 성을 떠나 홀로 눈길을 걸으며, ‘I’m free’를 외치는 장면에선 자연스레 나의 두 딸을 떠올리게 된다. 이들이 엘사와 안나 같은 미모의 소유자여서가 아니라, 나라님보다 배운 것도 적고 예절도 모르며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능력도 낮은 보통 아빠에게 어제, 오늘, 내일 매일 반복되는 잔소리로 훈육되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아침을 먹고 옷을 주섬주섬 챙기며 등원 준비를 하던 둘째 아이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빨리 가야 하는데, 또 어디 갔지?’ 하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탁! 팍!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발코니로 달려가니 노란색 곰인형 배 위에 화분 하나가 흙을 토해냈다. 귀중한 아침 시간에 발생한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빠는 절망했고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쭉쭉이! 혼나야겠어!” 

“응?(멀뚱멀뚱)” 


 

(아빠는 아이를 혼낼 것이라 마음을 굳게 먹고, 우아한 방법이라 착각하며 최후통첩을 보낸다) 

“만약 생쥐가(쭉쭉이의 가상친구) 화분을 쭉쭉이 인형 위에 엎었어. 쭉쭉이는 생쥐가 잘 못을 한 거니까 혼내겠지?” 

“아니! 아니!” 


 

(엉? 이건 또 무슨 반응이지. 예상을 벗어났다.) 

“왜? 잘 못을 했으면 혼내야지. 아니면 뭘 할 건데.” 

“청소해야지. 청소. ” 


 

그렇다. 아이가 화분을 엎으면 먼저 다그치며 혼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청소를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왜 그랬는지를 들어보고 함께 대응책을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평소 화분의 위치로 인해 아이가 다칠 위험은 없는지 점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아빠는 식탁에서 물을 엎지르는 아이를 쏘아보았고, 등교 시간을 지키기 위해 매일 아침 아이를 따라다니며 닦달했다. 놀이터나 집, 식당 등에서 조금 위험해 보이는 행동을 하면 목청껏 소리쳐 녀석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Conceal, don’t feel, don’t let them know.‘와 무엇이 다를까? 

돌아보니 물을 엎지르는 아이에겐 직접 닦도록 하거나 한 번 더 엎지르면 식사 중엔 더 이상을 물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늑장을 부리거나 숙제를 미루는 아이에겐 일찍 깨워 여유 시간을 줄 수도 있었고, 지각하거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방법을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또 아이의 행동이 부모의 기준에서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로 인해 병원에 가면 한동안 놀 수도 없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는 설명을 해주었다면 어떠했을까.  


 

자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나와 같은 필부도 엘사 아빠인 나라님도 서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품을 떠나 세상을 살아갈 것이고, 그러면서 여러 인연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때론 웃고 때론 울 것이다. 그때마다 부모가 대신 울어줄 수도 없고, ’눈물은 삼켜라.‘ 하며 울지 말라고 다그칠 수도 없다. 그저 타인과 어울려 기쁨을 나누고 축제를 즐기는 여유도 있고, 흐르는 눈물은 스스로 닦아내며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는 용기도 있기를 바란다. 


 

종종 아빠의 훈육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물음과 해답을 던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이제 아빠는 입을 닫고 귀를 쫑긋 열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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