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보고(민규동 감독, 2012)
첫째 아이가 태어나 다섯 살이 되던 해. 나는 잘 다니고 있던 회사에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지금이야 용기 있고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지만, 당시에는 남자가 육아휴직을 한다는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나 자신도 믿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결혼과 육아의 치열한 현실에서 작은 탈출구를 찾아가던 내게 한 줄기의 빛과 한 모금의 샘물이 나타났으니, 이는 다름 아닌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이란 영화다.
낯선 땅, 일본의 어느 식당에 한 여인이 홀로 앉아 있다. 정갈하게 놓인 음식을 젓가락으로 집는 순간, 그릇과 식탁, 심지어 건물이 통째로 흔들린다. 당황하고 놀란 그녀는 밖으로 뛰쳐나가고, 침착한 현지인과 달리 눈에 띄게 어쩔 줄 몰라한 덕에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국에서 만난 두 남녀는 함께 여행을 가고 사진을 찍고 밥을 먹고 일상을 공유하며 같은 추억을 만들어 간다. 결국 그 남자 두현(역 이선균)과 그 여자 정인(역 임수정)은 한국으로 돌아와 결국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된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대의 변화에 남편의 얼굴도 아내의 얼굴도 그리고 그들의 생활도 모두 일그러진다.
특히, 남편 두현은 아내 정인을 사랑스럽고 요리도 잘 하는 매력적인 여자가 아니라 불만과 불평을 쏟아내는 거친 아내로 생각한다. 신문구독을 두고 아침 일찍 배달원과 목청껏 다투는 아내가, 거실에서 거침없이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 남편 앞에 서서 일상의 부조리를 쉴 새 없이 말하는 아내가, 두현은 민망하고 거북하다.
이런 감정에 휩싸인 두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전설의 카사노바인 성기(역 류승룡)를 찾아가 자신의 아내인 정인을 유혹해 달라고 간청한다. “오죽하면 이러겠어요. 처음 그녀는 조용했고, 수줍어했고, 미소를 지었으며......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전 피해자라고요.”라고 울분을 토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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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나는 맑은 눈처럼 반짝이는 12월의 신부와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인에게 지도를 보이며 길을 묻고,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며 도시 곳곳을 기웃거렸다. 길을 잃으면 잠시 멈추어 쉬기도 하고, 헤매다 우연히 관광지를 찾고는 손뼉 치며 기뻐하기도 했다. 옆자리의 음식을 보고 주문한 일본 라멘에 간장이 듬뿍 담겨 나와도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웃을 수 있었다. 토토로와 유리인형이 가득한 상점에서는 하나씩 꼼꼼히 살펴보며 서로의 취향을 확인하고 기억하려 했다. 저녁이 되어서는 뜨끈한 노천탕에서 몸을 녹이며 ‘변치 않고 함께 할 우리의 5년, 10년 그리고 영원’을 이야기했다.
두 달 후. 산전검사를 하러 부인과를 찾았는데, 성미 급한 아이가 벌써 아내의 뱃속에 자리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사라진 신혼기간이 아쉬웠지만, 아내는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며 손수 바느질을 해 배냇저고리와 인형을 만들었다. 출산 준비물과 육아에 대한 정보도 챙겨보았다. 하지만 먹고 자고 싸는 모든 것을 울음소리 하나로 표현하는 아기와 같은 공간에서 온종일 보내는 것의 현실은 이론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나는 임신, 출산 여부와 상관없이 한결 된 모습으로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빠른 시일 내 집 장만을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열심히 야근을 했다. 피곤했지만 가장이라는 책임감과 희생정신으로 똘똘 뭉친 나는, 주말만은 가족과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주어진 청소 외에 아이의 목욕과 식사를 도왔다. 하지만 아내는 퉁명스럽다가 점점 더 예민해졌으며 급기야 무서워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자신을 피해자라 말하는 두현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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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인은 왜 변하게 되었을까?
영화에서는 어떤 계기로 정인이 여자에서 아내로 변했는지가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처음엔 남녀가 결혼을 하고 시간이 흐르면 환경이 변하고, 그에 따른 기대역할도 변하면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내 아내의 변화도 그런 시간의 흐름에 따른 현상으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 나로 인한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처럼 원인 없는 결과가 있으랴.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내의 일상은 변했다. 지각을 면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8시 전에 회사로 향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 그러려면 7시 50분까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한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6시 전에 일어나 세안을 한 후 화장을 하고 날씨를 살피고 외출복을 선택한 후, 아직 눈도 뜨지 않은 아이의 등원을 재촉해야 한다. 어둡고 추운 겨울이나 새벽부터 빗줄기가 쏟아지는 여름날이면 이는 풀기 어려운 기하학 문제가 된다. 겨우 출근해 업무와 아이 걱정을 오가다 보면 서류는 쌓였는데 벌써 퇴근 시간이다. 상사와 동료의 눈치를 보며 살며시 그리고 재빨리 빠져나와 가까스로 저녁 7시에 어린이집에 도착한다. 이때부턴 홀로 남아있던 아이의 눈치를 봐야 한다. 급히 돌아와 씻기고 식사를 준비해 밥을 먹이고 나면 아이와 함께 책 한 권 읽을 시간, 오늘의 작은 일상을 이야기할 여유조차 없다. 이런 육아의 현실에 살면서 어찌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아내의 생활을 가감 없이 볼 수 있게 된 것은 육아휴직을 하고서부터다. 아이를 봐달라는 아내의 말에 만화영화를 보여주며 한 걸음 물러나 휴대폰을 만지며 가끔씩 아이를 지켜보던 내가,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이다. 무엇이든 흘리는 아이 덕에 닦고, 또 닦아야 했던 나는 ‘잠자는 아이가 가장 예쁘다.’는 엄마들의 진심도 체득하게 되었다. 그제야 ‘아내는 왜 변했을까?’하는 나의 물음 뒤에 숨어 있던, ‘남편, 너는 왜 변하지 않는 거니?’하는 아내의 한숨이 들리기 시작했다.
강릉으로 이주한 아내 정인은 사람들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다시 변한다. 라디오 방송에 참여해선 삼겹살집 간판의 웃는 돼지를 동족을 팔아먹는 나쁜 녀석이라며 거침없이 말하고, 두현 덕에 우연한 만남이 잦아지는 카사노바 성기와는 이야기를 나누며 미소 짓기도 한다. 점점 자신감을 찾아가는 정인의 모습에 두현은 점점 위축되고 조급해진다. 혹여 아내가 자신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말이다. 그런 두현에게 성기가 제대로 한 방 먹인다.
“난 누구 마누라로 취급받던 사람을 원래대로 한 여자로 되돌렸던 것뿐이야.” 하고.
두현의 당황하는 모습이 참 이율배반적이라고 여기다가, 나도 그런 남편에 속하는 족속이라 마냥 비난만 하기엔 많이 찔린다. 아내가 다시 여자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가 정말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남편이라면, 그동안 아내에 대해 저지른 자신의 잘못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도 이 영화는 홀아비가 될 위기에 빠진 보통의 남편들에게 아내와 가늘어진 인연의 끈을 다시 함께 묶어갈 방법을 정인의 목소리를 통해 알려준다.
“살다 보면 말이 없어져요. 한 사람과 오래될수록 더 그렇죠. 서로를 더 안다고 생각하니까, 굳이 할 말이 없어지는 거예요. 근데 거기서부터 오해가 생겨요. 사람 속은 모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말하세요...... 침묵에 길들여지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결혼 1년이 지난 부부에게 가끔 찾아오던 침묵은,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면서 종종 오게 되고, 두현과 정인처럼 결혼 7년 차가 되면 거의 동거하는 수준에 이른다. 게다가 출산과 육아가 시작되면 모든 관심사가 아이들에게 맞추어지게 되는데, 웃을 일도 울 일도 모두 아이들이 중심이다.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아이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 문제가 생겼을 때만 이루어진다. 그런 아내는 아이들 친구의 엄마는 만나지만 정작 자신의 친구를 만날 여유를 갖지 못한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결혼생활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래도 투박하고 거칠었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토로했던 정인의 속마음에 두현이 귀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혼을 앞둔 두현이 정인에게 새로이 깨닫게 된 진심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특히나 그랬다.
“너무 그립더라. 네 목소리. 옛날에 네가 투덜대던 거 정말 창피했는데, 그거...... 네가 외로워서 그랬던 거 몰랐던 거야. 내가 외로워 보니까 알겠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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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현은 집을 소중하다고 여겼다. 지진과 같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가족의 안전을 도모하는 집을 지으려 했다. 하지만 그 집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에 대해선 무관심했다. 강릉으로 이주한 첫날 저녁. 두현은 은근히 정인에게 서울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사람이 없으면 자신이 지은 그 집이 상하게 된다고. 그때 정인은 분명히 말했다. “집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가정이 소중한 거지. 사람이 살고 음식 냄새나고, 음악이 흐르고, 결국 행복이 가득한 곳. 근데 자기 속엔 집 밖에 없어. 그 집에 아무것도 없다고.” 이 말을 들은 두현은 아내가 또 투덜거리는구나 하며 스쳐 지났다.
나는 지금도 경제적인 여유로움을 마련하는 것이 남편이자 아빠의 대표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경제력이 부족하다면 아내와 아이들을 더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가 기본적인 생활인지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개인마다, 가족마다 그 범위가 다르다. 그럼에도 여기에 대해서 나는 아내의 생각을 확인한 적이 없다. 어느 정도의 경제적 풍요를 생각하는지, 가정을 가꾸는 방법으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동안 아내는 수 차례 위험신호를 보냈을 테지만, 아둔한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결국 육아휴직이란 선택지를 고르게 되었다. 오롯이 육아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은 분명 아이와 아내 그리고 나에게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었다. 그리고 1년 동안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지속 가능한 우리만의 육아법을 찾으려 했다. 그 시작으로 육아서를 뒤적이는 대신 아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아내와 엄마가 되기 전 존재했던 한 사람이 자신의 빛을 잃지 않도록 자세히 들여다 보기로 한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갈등도 외면하지 않고 담담히 주고받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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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칠순 잔치에 참석해 세 딸을 시집보낸 어르신을 만났다. 나의 두 딸을 보시고는 먼 미래를 대비해 사위를 길들이는(?) 팁이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인사를 하러 온 예비 사위에게 대뜸 “결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라고 물었다고 하셨다. 어르신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질문을 들은 나는 예비 사위가 된 듯 순간 멍해졌다. ‘그러게 도대체 결혼이 뭘까?’ 한마디 한마디 힘을 주어 말하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혼을 하면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평생 사랑받을 권리가 생기고, 남편은 아내를 평생 사랑할 의무가 생기는 것이야.”
미래의 딸과 사위 대신 오늘의 아내와 내가 보인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받으며 귀하게 자란 아내가 결혼의 의무를 망각한 나로 인해 당연한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쑥쓰러워 목소리가 작아지고 몸이 배배 꼬여 움츠러들지만, 풋풋한 두현이 상큼한 정인을 처음 만나 건넨 설렘을 전한다.
“이런 미인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가 밥 사줄게요.”
결혼 10년 차 남편의 뒤늦은 고백을 덧붙인다.
“오늘은 내가 아이들과 있을 테니, 온종일 외출해.
뮤지컬을 봐도 좋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도 좋아.
대신 꼭 다시 돌아오는 거.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