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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본 아빠 육아
By 윤기혁 . Apr 25. 2017

드디어 내 삶의 롤 모델을 찾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고(진모영 감독, 2014)

어제도 아내와 다투었다. 우리 부부에게 종종 일어나는 갈등은 아이를 양육하는 방법의 차이이기도 하고, 가사를 누가 얼마큼 하느냐에 대한 오해 때문이기도 하다. 이럴 때면 인생의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전문가로부터 해법을 얻고자 책과 강연을 살펴보기도 하지만, 나에게 꼭 맞는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롤 모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를 쫓아 걸어간다면 육아의 무게와 갈등의 상처를 훨씬 더 줄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지난 10년간의 방황과 기다림을 종식시키는 사부를 만났다. 노부부의 일상을 다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에서다.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열 할머니가 출연하는 이 영화는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펼쳐 보인다. 무려 76번이나 함께 보낸 계절에서 쌓인 삶의 내공 또한 자연스레 드러난다. 바람이 지나고 강아지가 소리치고 처마를 따라 떨어지는 시원한 빗소리가 있는 시골 풍경이 시작되자 잠시 단조롭진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나의 선입견은 10분도 채 버티지 못했고, 노부부가 일구는 생활과 시공간에 퐁당 빠져들었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며, 병원에 가고, 앞 뜰을 청소하는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아내를 미소 짓게 하는 조병만 할아버지에게서 내가 찾던 매력적인 남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첫째, 낙엽 던지기 

노부부가 딸 집을 방문하느라 며칠 집을 비운 사이 앞마당엔 낙엽이 한가득 쌓였다. 온전히 둘이서 치워야 한다. 싸리비로 낙엽을 쓸면서 “아이고, 힘들어.” 하는 아내를 본 할아버지는 “내가 다 할게.” 하며 남자다운 모습을 보인다. 근육이 낙엽처럼 떨어져 버렸는데도 말이다. 차근차근 낙엽을 모은 후 잡자기 허리를 숙인다. 두 팔을 벌려 한아름 낙엽을 집어서는 아내에게 던진다. 놀란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던지고, 할아버지는 다시 할머니에게 던진다. 주고받던 낙엽이 미소로 바뀌는 순간이다. 98세 어르신의 급작스런 애정표현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방긋방긋 웃는 할머니를 보니 취향저격임에 틀림없다. 섹시한 남자의 조건은 세대에 관계없이 절대 조건은 역시 유머 있는 남자인 모양이다.  


 

둘째, 소식(小食)하기 

여인이란 말이 어색한 14살 소녀와 인연을 이루기 위해 한 청년은 처가라 불리는 집에 가서 일하고 또 일하고 또 또 일한다. 어린 아내가 성장해 독립할 때까지 처가에서 정말 힘들게 일했다고 기억하는 할아버지에게 할머니는 그래도 우리 집에 와서 밥을 굶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어려서부터 그의 끼니를 챙겼다. 무려 83,220번이나 동안이나. 그가 하루 세 끼 빠짐없이 식사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할머니가 한 번도 곰탕을 끓이고 긴 외출을 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할아버지가 반찬 투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식습관을 그저 맛있으면 많이 먹고, 맛없으면 소식한다고 했다.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은 무엇이든 언제나 맛있다는 진리를 몸소 실천하셨다. 물론, 아내의 음식이 남편이 입에 맞지 않을 때가 있었을 테지만, 이는 종종 건강을 위해 소식을 해야 할 시기가 찾아왔음을 뜻하는 것뿐이다.  


 

셋째, 노란 상의, 파란 하의로 패션을 완성하기 

남녀가 만나 연인이 되고, 그 시작을 알리는 장치 중 하나가 커플 옷 입기다. 하지만 100일, 200일에서 1년, 2년으로 셈법의 단위가 변하기 시작하면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패션으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나면 가족사진을 찍고 함께 입을 셔츠를 사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일상이 아니라 기념일을 위한 것이 대다수다. 그런데 노부부는 매일매일 커플룩이다. 노란 저고리에 분홍치마, 하얀 저고리에 파란 치마, 때론 올 분홍을 입은 할머니와 깔맞춤을 하는 할아버지의 패션은 단순히 과감하다는 표현을 넘어 천연색을 피부로 가져온 듯 자연스럽다. 더욱이 결혼식 때 입고는 1년에 한 번이나 입을까 하는 한복을 입고서도 풍경 속 인물이 되는 모습을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신발, 장갑, 귀걸이처럼 함께 있음으로써 진정 하나의 존재가 되는 것다. 강렬한 색상과 깨끗한 옷감으로 부부의 존재를 표현하는 담대함이 100일 된 커플보다 강렬하다.  


 

넷째, ‘호’하고 말하기 

평상시 남편이 아내에게 자주 하는 말을 무엇일까? - 밥은? (먹었나요? 남았으면 줄 수 있나요?), 아이들은? (자나요? 숙제는 다 했겠죠?), 야근이야! (그러니 오늘도 가사와 육아는 당신이 맡아줘요!) 아내가 남편에게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잘 모르지만 아마도 남편이 아내에게 자주 하는 말은 아닐 테고...... 

앞마당 평상에 노부부가 나란히 앉았다. 할머니가 옷을 걷어 무릎을 보인다. “할아버지는 몰랐죠? 나 여기가 아파요.” 하는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은 무릎으로 향한다. 곧이어 허리를 숙여 “호~” 하고 치료한다. 여의치 않자 함께 병원으로 향한다. 할아버지는 버스를 타기도 전에 숨이 차올라 주저앉아 쉬어야 한다. 집에 가서 쉬라는 아내의 권유도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곁을 지킨다. 병원에 도착해 할머니가 치료를 받는 동안 의사 선생님에게 살살해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다며 할아버지를 타박하지만, 그는 가만히 아픈 아내의 손을 잡는다. 앙상하지만 듬직학 남편이다. 


 

다섯째, 화장실 옆에서 노래 부르기 

사찰에 딸린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 한다. 근심을 푸는, 번뇌가 사라지는 곳이라는 뜻이란다. 그런데 추운 겨울밤 집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가야 한다면 오히려 근심스러운 곳이라 하겠다. 어둠이 짙은 시각에 작은 짐승 소리, 지나는 바람 소리에도 온몸이 움츠러드는데, 생리적 현상 또한 거부할 수 없으니 이런 난감함이 또 있을까. 이때 지혜로운 할머니는 할아버지 찬스를 사용한다. “내가 무서워서 그래요. 노래를 불러줘요.” 하는 아내의 애교를 들은 98세 남편은 지난 세월을 꾹꾹 눌러 노래에 담는다. “총각 도련님 가자고 할 적에 왜 못 따라갔나.” 하고. 아내가 화장실을 나온 뒤에도 남편은 한참 서서 아내의 지난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여섯째, 밥상 차리기 

할아버지는 홀로 상을 차리지 못한다고 했다. 할머니가 자신이 모두 챙겨줘야 한다고 푸념하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쌀을 씻고 밥을 하고 찬을 덜어 접시에 담는다. 화려한 요리가 상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벤트임엔 틀림없다. 언젠가 밥을 함께 먹는 것은 영혼을 나누는 것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롯이 그 사람을 생각하며 음식을 준비하고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 뿌듯하다. 게다가 그것이 상대의 편견에 도전해 이루어낸 것이라면 감동은 더 할 것이다. 가끔 아내와의 역할 바꾸기를 통해 반전을 선물할 수 있다면 아내는 놀라서도 웃을 것이다.   


 

일곱째, Touch. Love is Touch 

사랑의 완성은 뭐니 뭐니 해도 터치 touch가 아닐까.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은 그의 노래 <Love>에서 사랑을 이야기했다. 사랑은(Love is) ‘real'이라고 했다가 'feeling' 이라고도 했으며, 마침내 사랑은(Love is) ’Touch'라고 했다.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산책할 때도, 먼저 떠난 자식들의 내복을 사러 시장에 갈 때도,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맞춘다. 꽃을 꺾어 아내의 볼에 문지르고 귀에 꽂기도 하고, 잠든 아내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레 어루만진다.  

가끔 손을 잡고 길을 가는 백발 커플을 보면 저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9살, 3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외출하는 것이 일상이 된 요즘, 가끔 아내의 손을 잡고 걸으려면 어색해 손가락이 오징어가 된다. 아내와 다투고 삐치고 오해해도, 언제나 스스럼없이 손 잡을 수 있다면 금세 사랑으로 돌아올 텐데...... 


 

일상에서 아내와 함께 슬픔과 기쁨의 체온을 나눈 남편의 사랑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76년간 진화하는 맞춤형 애교와 거부할 수 없는 건강한 삼시 세끼, 앙상해진 몸을 깨끗이 씻겨주는 따뜻한 손길, 강을 건너려는 남편이 무거울까 걱정되어 헌 옷과 새 옷을 나눠서 태워주는 배려, “나하고 같이 갑시다. 할아버지하고 손을 잡고 같이 다리 너머 재를 넘어가면 얼마나 좋겠어. 이웃사람들도 다 손을 흔들어 줄 거고 나도 잘 있으라고 손을 흔들어주고. 이렇게 갔으면 얼마나 좋겠어.” 하는 간절한 기도, “너무 불쌍하다. 세상 불쌍해 죽겠네. 할아버지 생각을 누가 하나. 나 밖에는 할 사람이 없는데.” 하며 결국 먼저 강을 건넌 남편을 생각하는 오직 한 사람, 마지막 한 사람이 되어주는 아내가 있었다. 노부부의 행동과 일상을 보면 남편과 아내의 사랑에서 선후관계나 인과관계를 단정하는 것이 의미 없기도 하지만, 할아버지의 매력적인 행동이 그들의 사랑을 깊어지고 넓어지게 했으리란 생각에는 이론이 없지 않을까 한다.  


 

사실 나는 육아와 가사에 관한,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롤 모델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조병만 할아버지를 본 순간 내게 진짜 필요한 것은 아내를 향한 남편의 역할을 멋지게 해내는 롤 모델이었음을 알았다. 아이가 하나, 둘 생기면서 부부 공통 관심사의 8할, 아니 9할이 자녀에 관한 것이다. 웃는 이유도 다투는 이유도 대부분 그 때문이다.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또 10년이 지나면 정작 내 곁에 남을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본다. 노부부에게도 명절과 생일에 찾아오는 자식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풍경은 부모의 것과는 달랐다. 아무리 자식을 위해 애를 쓴다고 하지만 모두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아내를 생각한다.  

맞벌이인 우리는 육아와 가사에서 공정하지 못하다. 알게 모르게 아내에게 무게추가 기울어져 있다. 가만 보니 육아와 가사에서 아내가 싫어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화장실 청소와 걸레 빨기, 어린이집 선생님과 소통하는 알림장 기재 등이 그렇다. 우선 아내가 거북해하는 부분을 내 것으로 가져오기로 한다.  

그녀는 드라마를 즐긴다. 아이들이 잠들고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짧은 자유 시간을 즐기는 취미가 드라마 시청이다. 특히 <태양의 후예>, <도깨비> 등을 쓴 김은숙 작가의 작품과 <셜록> 시리즈를 찾아본다. 뉴스에서 드라마로 관심사를 넓혀 부부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지독하게 어색하지만 드라마 속 장면을 흉내 내며 아내의 웃음을 자극해 보려 한다. 

옷에 대한 취향이 너무 달라 커플룩은 어렵다. 신혼엔 같은 옷을 사기도 했고, 다른 옷을 같은 시기에 사서 우리만의 커플룩이라고 칭하기도 했지만, 점점 희미해진다. 대신 주말 나들이 때 신을 운동화를 깔맞춤 하기로 한다. 

가족의 옷, 신발에서부터 식료품 등에까지 무수히 많은 쇼핑을 해야 하는 살림꾼인 아내에겐 결정장애가 있다. 아마도 소득 수준에 맞는 적절한 소비를 생각하기에, 가격 대비 더 좋은 성능을 찾기에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다. 이런 아내를 위해 그녀를 위한 쇼핑은 내가 직접 지르기로 한다. 이번엔 귀걸이다.  


 


 

아~ 또 뭐가 있을까? 


 

나의 롤 모델이 말씀하셨다. 


 

“꽃이고 나무고 사람과 똑같아요. 봄이면 펴가지고 여름 내내 비 맞고 살다가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떨어지지. 사람도 그것과 한 가지예요. 처음에 어렸을 때는 꽃송이가 생겨가지고 핀단 말이에요. 나이가 많아지면 오그라들고 떨어져요. 떨어지면 헛일이야.” 


 

떨어지기 전에 마음껏 사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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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영화로 본 아빠 육아
소소한 일상과 아빠육아 이야기
책 : 「육아의 온도」(s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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