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댓글 2 공유 브런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영화로 본 아빠 육아
By 윤기혁 . May 10. 2017

어떤 아빠로 기억되고 싶은가?

영화 <캡처링 대디>를 보고(나카노 료타 감독, 2013)

+

형수님. 와 주세요. 싫으시면 하즈키와 코하루만이라도 ······.


 

6개월 전 말기암이 발견된 아빠의 소식을 전하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아빠와 자식의 만남을 청하는 삼촌의 전화다. 죽음의 문턱에 선 아빠이지만, 얼굴을 마주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순간이지만, 14년 전 다른 여자가 생겨서 집을 나간 사람으로 기억하는 두 딸에겐 마뜩잖은 상황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엄마 사와(와타나베 마키코)는 첫째 하즈키(야나기 에리사)와 둘째 코하루(마츠바라 나노카)에게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오라는 미션을 준다. 그렇게 두 자매는 함께 길을 나선다.  

기차를 타고 또 갈아탄다. 기차역을 빠져나와 버스를 타려 주위를 둘러보는데 인적이 없다. 버스는커녕 택시도 찾을 수 없다. 이때 울리는 전화소리, 엄마다. 아빠가 돌아가셨단다.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아빠를 어떻게 찍을까? 아빠는 우리를 보면 뭐라고 할까?’ 하며 기다리던 만남이 또 한 번의 이별로 바뀌었다. 하즈키와 코하루가 멘붕과 적막 사이를 헤매고 있을 때 한 어린이가 역사를 기웃거린다. 그녀들을 마중 나온 치히로다. 그는 아빠의 아들이자 두 자매의 남동생이다. 처음 만난 사이에다가 엄마도 다르고 공통분모인 아빠마저 세상을 떠났기에 어색하기만 할 것 같은 세 사람은 경계나 분노의 마음 없이 조심스레 상대에게 예의를 지키며 문을 연다.  


 

네모난 관 속에 반듯이 누운 아빠는 어엿한 숙녀로 성장한 두 딸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예상하지 못한 아빠의 모습에 하즈키와 코하루는 한동안 말없이 지켜보다 밖으로 나간다. 스무 살 하즈키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따라 나온 치히로가 하즈키의 손에 들린 세븐스타 담배를 보고는 “그거 아빠랑 같은 담배예요.” 하고 말한다. 의외의 동질감에 두 자매는 아빠가 궁금해지고, 치히로는 약간 완고한 사람, 말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가끔 웃는 얼굴을 하고 참치를 너무 좋아해서 항상 참치를 먹었던 사람이라 일러준다. 아빠의 병환 소식을 처음 듣던 날, 엄마는 초밥을 사 왔다. 그 날 코하루는 참치만 먹다가 결국 언니 하즈키에게 제지를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하루는 마지막 남은 참치를 필사적으로 자신의 입에 넣었다. 잊었던 아빠를 두 딸은 그렇게 닮아 있었다.  


 

떨어져 산 날이 더 많아 기억마저 희미한 아이들의 일상에서 잊혀진 아빠의 모습이 불쑥 튀어나와 습관이 되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내게도 그런 신기함이 있다. 어쩜 기이한 일에 가깝겠다. 바로 너무도 싫어서 절대로 닮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아빠의 모습을 성인이 된 내가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고, 으레 휘청이는 다리로 귀가하셨다. 아버지는 커다란 목소리와 거친 턱수염 그리고 술 냄새를 벗 삼아 잠든 척 두 눈을 꼭 감은 나를 향해 다가오셨고, 당신의 거침없는 스킨십에 어린 나는 종종 너무도 티 나게 온 몸을 경직시키며 얼음이 되고도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다짐했다.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혹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못해 마시게 되더라도 취하진 않겠다고!! 혹 혹 어쩔 수 없이 취하더라도 집에 와선 조용히 들어가 잠들겠다고!!! 그런데 나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회식 외에도 가끔 집에서 혼술 하는 경지인지, 지경인지에 이르렀다.  

아빠를 닮은 하즈키와 코하루, 두 자매와 아버지를 닮은 나를 살피며 부모와 자식이란 인연이 주는 묘한 공통분모에 당황하고 있을 때, 코하루가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어?

 아빠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 하고.


 

이에 다시 고쳐 묻는다.  

‘아빠 10년 차에 들어선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두 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하고.  


 

우선, 나는 가족과 오순도순 마주 앉아 재미난 이야기와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살고 싶다. 상대의 말과 행동이 나의 생각과 달라도 언제나 여유롭고 당당하게 대하며, 오늘 이 순간의 소중함을 즐기고 마음껏 웃다가 잠들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허겁지겁 아이들의 등원과 등교를 재촉하고, 정신없이 쏟아내는 녀석들의 에너지에 당혹해하며, 줄어드는 통장잔고를 보고 경제적 결핍에서 벗어날 방법을 궁리한다. 또 수 십 년간 겪어온 나의 시행착오를 아이들은 말 한마디에 개선할 것이라 기대하며 강권하고 그래서 결국 실망하기를 반복하는 좀 모자란 사람이다.  

비록 아빠로서 인자한 기다림은 온데간데없고 조바심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아이들의 눈물을 쏙 빼기도 하지만, 두 딸은 언제나 나의 ‘일상’이고 ‘온기’이며 ‘삶의 이유’이다. 퇴근한 내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이불속에 숨어 숨바꼭질을 시작하고, 한참을 놀고서도 잠잘 시간이 되면 양 팔 가득 책을 들고 와 모두 읽어달라며 잠자리를 거부하고, 어느새 내려오는 눈꺼풀에 스르르 잠들어 쌔근쌔근 거리는 녀석들의 숨결을 들으면 오늘 여기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과 아빠와 딸이라는 달콤 살벌한 인연에 감사한다.  


 

-

그럼 두 딸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어떤 아빠로 기억하게 될까?


 

아빠를 화장터로 들여보내고 저만치 물러 선 첫째 하즈키는 “감사도 안 하지만 미워하지도 않아.”라고, 둘째 코하루는 “나도 참치 계속 좋아할 거야.”라고 한다. 떠나지낸 시간이 더 오랜, 그래서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을 아빠인데도 그에 대한 평이 예상보다 나쁘지 않다. 같은 공간에서 눈을 감고 뜨는 우리 아이들은 아마도 아빠의 사랑을 느끼고 있겠지, 하는 순간 차가운 바람이 머릿속을 스친다. ······ 잠자리에서 마사지해준다고는 팔다리를 몇 차례 문지르다 드르렁 코를 고는 사람, 어설픈 행동에 자세한 설명을 준다는 핑계로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은 사람, 명절 지나면 장난감을 사준다고 했다가 한 달 후에도 다음 명절이 다가오지 않았으니 더 기다리라는 뻔뻔한 사람, 정해진 게임 시간이 10분 남았는데 불쑥 자기도 하고 싶다며 피 같은 게임 시간을 빼앗는 사람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떡볶이 가게에서 주문하고 계산하는데 주저하거나 여럿이 모인 곳이면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수줍어 뒤로 숨는 자신을 보며 낯설고 변화에 두려워하는 기질만 주고 이를 극복하는 용기를 주지 않은 아빠를 원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설령 이 모든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 기초한 나의 모습일지라도 아이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모습은 아니다.  

어떤 아빠로 기억되는 좋을까? 음 ······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듬직한 아빠는 어떨까? 배려와 존중이 부족하여 가끔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자식에 대한 무한 사랑을 품고 사는 따뜻한 아빠 말이다. 이렇게 말하니 생각보다 상투적이기도 하고 모호하기도 하다. 사랑하고 있으니 비록 그 과정에서 아이의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아빠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야, 하며 합리화하는 것 같아 머쓱하다.  


 

희미하고 불편한 생각에 갇힌 내게 치히로와 하즈키의 대화가 들려온다.  

하즈키와 코하루는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배웅 나온 치히로는 이젠 여기에 올 일이 없을 거란 누나들의 말에 또 한 번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을 느낀다. 울먹이는 치히로에게 큰 누나인 하즈키는 “만약에 너무너무 힘든 일이 생기면 연락해. 그땐 누나들이 치히로의 탈출구가 되어줄게.” 하며 마법의 티켓 같은 연락처가 적힌 작은 명함을 건넨다. 그래 이거다. 아이들의 “탈출구”가 되어준다는 것, 얼마나 멋진 아빠인가?

자녀가 살아가며 만나는 수많은 관문, 그 앞에 서서 마치 열쇠를 쥔 모습으로 열고 들어갈 곳을 정해주는 문지기가 아니라, 자녀가 스스로 선택한 문 앞에서 방황하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 잠시라도 언제라도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탈출구가 되는 것이다.  


 

TV에서 5남매를 둔 싱글대디의 사연을 본 적이 있다. 아픈 다리를 끌고 오토바이로 배달 서비스를 하는 그는 초등학생 첫째부터 엄마의 손길이 절실한 막내까지 챙겨야 했다. 몸이 힘들어도 사별한 아내가 그리워도 아빠인 그는 아이들 앞에선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다. 문득문득 불쑥불쑥 아이들에게 다가오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형제간의 다툼으로, 이유 없는 울음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아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유일한 탈출구가 되려고 한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8년 전 암으로 수술을 하셨다.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하신 지금은 먼저 전화를 주시는 경우가 잦다. 아들과 며느리, 손녀들의 일상을 물으시기도 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과 운동법을 권해주시기도 한다. 가끔 아주 가끔은 철없는 아들이 쏟아내는 직장생활과 육아의 고단함을 받아주시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이미 나의 탈출구다.  


 

나는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지난 주말 아이에게 훈육을 한다며 화를 냈다. 시간이 지나서도 마음에 걸리는 것을 보니, 그냥 지나가도 될 것이었거나 부드럽게 타이르기만 해도 될 것이나보다. 내 분에 못 이겨 소리를 높였던 것이 민망해져 편지를 썼다.


 

‘쑥쑥아~ 아빠야.


 

오늘 아침에도 화를 내어 ······ 미안해.

같이 수영도 하고, 연극도 보고, 책도 읽고,

떡볶이도 먹고, 쭉쭉이(마사지)도 하고

자주 더 자주 웃자.


 

고맙고 사랑해.‘


 

이 편지는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나의 일기장에 꽂혀있다. 하교한 첫째에게 주기 전에 다시 읽다가 마음을 바꿨다. 미안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글로 전하기보다 매일 아침 내가 읽고 초심을 기억하며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좋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내게 이 편지는 평온을 찾는 마법의 티켓이 되고 있다.  

keyword
magazine 영화로 본 아빠 육아
소소한 일상과 아빠육아 이야기
책 : 「육아의 온도」(somo)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