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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May 24. 2017

아내로 변신할 시간

책 <아내 가뭄>을 읽고(애너벌 크랩 지음, 2014)

밥솥에서 칙칙 소리가 난다. 수요일 아침 7시 30분, 나는 아직 이불 속이고 아내는 출근하지 않고 거실에 있다. 첫째 아이의 공개수업 덕이다. 올해는 휴직 중인 내가 참석할 수 있는데도, 지난 두 해 동안 아무도 방문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 아내가 휴가를 냈다.  

참 좋다. 아내가 있으니 늦잠을 자고, 아이의 투정도 일상의 멜로디로 다가온다. 아내가 욱 하는 순간도 있지만 나는 태연한 모습을 짓는다. ‘뭘 그걸 가지고 그래?’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아이들의 등원이 끝나고 돌아와 앉은 아내의 어깨를 보니, 모처럼 출근하지 않는 날 또 일을 하느라 쉴 새 없는 모습에 ‘내가 아내가 되어줄 걸.’ 하는 후회가 다가왔다.  


 

늦은 자각이지만 이런 생각의 출발에는 얼마 전 읽은 에너벨 크랩의 책 <아내 가뭄>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이 책은 호주에서 유명한 정치평론가이자 쿠킹쇼 ABC TV <키친 캐비닛>의 진행자인 애너벨 크랩이 썼다. 개인과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얽히고설킨 가사노동의 문제를 적나라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냈다.  


 

나의 이해를 간략히 말하자면,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아내‘가 필요해진 요즘, 그 변화의 시작에 남과 여, 우리가 함께 해야 한다.’ 정도가 아닐까.  


 

+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왜 여자보다 남자가 월등히 많을까?


 

바로바로~~

남자에겐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내의 가뭄 현상으로 시작해 남성이 일터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와 가사 노동에 대한 성 역할의 사회적 편견을 시원하게 보여준다. 가끔 아내가 되어가는 남성의 모습도 소개하면서.

-


 

기억에 남는 부분을 꺼내본다면,

우선 남자의 생계부양 역할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아주 오래된 지배적 본능으로, 한 나라에 나타나는 여러 패턴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족이 부모 중 한쪽만을 유급 노동에 내보낼 수 있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된 모델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풍요를 누리기 시작한 산업혁명 이후 대중화되고 익숙해진 모델이다.“(391쪽)


 

“여성에게 지난 반세기는 어머어마한 변화의 시기였다. 학력 상승, 핵가족화, 제조업의 쇠퇴, 서비스 경제의 부상, 이러한 발전이 이루어지는 동안 여성들은 일을 떠맡고 완수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품고 있던 여러 가지 기대들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여성의 유급 노동은 확대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기대 또한 확대되었다. 미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2006년 연구에서는 전일제 근무를 하는 요즘 엄마들이 1976년 전업주부 엄마들보다 매주 자녀와 일대일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한다. 그런데도 요즘 엄마들은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끼며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401-402쪽)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쩝쩝쩝.


 

그러면 집안일을 하는 남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떨까?


 

“<아버지의 시간>은 가족과 자녀를 최우선으로 삼으려는 능동적 결정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대니얼 페트르는 책에 대해 남자들과 여자들이 판이하게 다른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책이 출간되자 여성들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대부분이 과로에 지친 배우자와 소통하지 못해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와 그 밖의 다른 곳에서 만난 엄마들은 그에 열광했다. (중략) 그러나 다른 아버지들에게 페트르는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이었다.”(358쪽)


 

여기서 다시 쩝쩝쩝.


 


 

애너벨 크랩은 책을 읽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나를 예상했을까? 그는 서문에서 말했다.


 

“가끔 나는 <아내 가뭄>에서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는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한다면 변해야 할 대상은 정부가 아니다. 변해야 할 대상은 여성이고 남성인 우리들이다. 우리가 종종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어떤 때는 무심코, 어떤 때는 눈코 뜰 새 없이 너무 바빠서), 즉 누가 무슨 일을 하고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편견에 가까운 생각들을 점검해야 한다. 작은 발걸음, 그러나 의미심장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21쪽)

-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아내 가뭄>을 아내가 드물다고, 아내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내 가뭄의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아내들의 몸과 마음이 가물어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외식이다!!!

(보통의 남편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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