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km
부모님과 내가 사는 곳 사이의 거리다.
고속버스도 있고 KTX도 있어,
네 시간 남짓이면 언제든 닿을 수 있지만
1년에 서너 번 만난다.
대학을 가면서 떨어져 살기 시작했다.
1학년 때는 주말에도 가고, 방학엔 고향에서 지냈다.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면서
점점 집으로 가는 횟수는 줄어들었고
어느새 월세살이 작은 원룸을 더 편하게 여기고 있었다.
지금은 직장을 다닌다고
아이들의 학교와 학원 일정을 맞춘다고
부모님을 찾는 횟수는 명절과 생신 때가 전부다.
3년 전 부모님의 집에는 식구가 늘었다.
바로 '몽'이라는 강아지인데,
그 덕에 손주인 나의 두 딸이 종종 할머니집을 찾는다.
지난 연말
아내와 첫째 아이의 일정이 여의치 않아
둘째와 나만이라도 뵐까, 하는 마음에 연락을 드렸다.
반가워하실 거라는 예상과 달리
어머니의 반응은...
다음 달이 설이니 그때 오렴,이었다.
한 번 이동할 때면 교통비가 적지 않다고 하셨지만
이내 알게 되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두 분 모두 거동이 불편해지셨다는 것을
아버지는 허리 수술 후 회복 중이셨지만
여전히 지팡이가 필요했고,
어머니는 다리 통증에 손 저림이 심해졌다.
아들과 손녀가 온다기에
당신이 손수 밥이라도 챙겨주려는데
몸이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친구가 그랬다.
'명절에만 부모님을 찾아뵈었는데, 1년에 2번씩
앞으로 20년을 더 사신다고 하면
만날 기회는 딱 40번 남았더라고.'
맞다. 굳이 방문 횟수를 두 배로 늘리고
한 번에 2~3일씩 머무른다고 해도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이 6개월이 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지 않은가?
오늘은 아침과 저녁,
두 번에 걸쳐 전화로 부모님의 안부를 확인했다.
아침에 눈을 떠,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식탁에 앉아 밥과 찌개를 꼭꼭 씹어 드셨는지
홀로 걷고 말하고 용변을 보는 것에 불편함이 없었는지
특별한 것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나
지극히 사소한 이 순간들을
한없이 그리워할 때가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