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와 보상의 원리를 이해하기
매 2-3월 즈음은 대부분의 회사에서 연봉 평가의 시즌이다. 월급 받는 직장인 입장에서 이만큼 중요한 시즌이 있을까. 평가된 연봉에 따라 희비가 교차한다. 누군가는 기대보다 높은 연봉 인상률에 기뻐할 것이고, 반대의 경우는 큰 실망감을 가진다.
연봉 평가 결과에 대한 실망은 대개 '열심히 일했는데 보상이 없다'라는 전형적인 불만으로 이어진다. 즉 회사는 내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하지만 대개 '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인상률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꿔 말하면 내 연봉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는 사람 역시 많다.
따라서 우리가 연봉을 효율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회사가 연봉을 어떻게 책정하는지(이를 평가와 보상 정책이라 한다)알아야 할 것이다.
참고
이번 글의 평가/보상 원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한국의 IT회사를 기준으로 하며, 호봉제 등의 보상 테이블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회사와는 그 원리가 다르다. 또한, 인원 수가 너무 적어 아직 체계화된 HR 프로세스가 없는 회사 역시 이 글의 내용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회사는 잡레벨(Job level) 제도를 가지고 있다. 잡레벨은 이 사람이 현재 어느 정도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를 대변한다. 이에 따라 똑같은 PM이라도 잡레벨이 5인 사람은 잡레벨 4인 사람에 비해 더 높은 역할과 책임이 요구된다.
잡레벨 제도를 공개적으로 운영하는 회사도 있고, 그렇지 않은 회사도 있다. 그러나 잡레벨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회사라 하더라도 HR내부적으로는 직원 개개인의 잡레벨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잡레벨은 직원 개개인에 대한 보상 산정의 가장 기본이 된다. 이에 따라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변 동일한 직무에서 잡레벨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높은 보상을 가진다.
연봉을 산정하는 데 있어서 잡레벨과 함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마켓 레퍼런스다.
평가/보상을 담당하는 HR 조직은 일반적으로 전체 직무의 연봉에 대한 마켓 레퍼런스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이런 것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파는 회사가 있다!) PM, DA, 백엔드 엔지니어, 마케터 등 각각의 직무들에 있어서, 해당 직무의 각 연차/등급별 연봉이 다른 회사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를 보상 레인지, 혹은 페이 밴드(pay band)라고 부른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식이다.
- PM 잡레벨 4: 2500만 원 ~ 7000만 원
- PM 잡레벨 5: 4000만 원 ~ 1억 원
- 마케터 잡레벨 4: 2500만 원 ~ 5000만 원
더 세부적으로 이들은 각각의 25%값, 중위값, 75%값, 90%값 등등까지도 알 수 있고, 잡레벨 4-1, 4-2, 4-3 -> 5-1, 5-2 이런 식으로도 세부 분류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 회사의 연봉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평가/보상 담당자는 기본적으로 이 마켓 레퍼런스 데이터를 참조한다. 예컨데 내가 PM 잡레벨 5인데 연봉이 3500만 원이라면 최소 4000만 원 이상으로 보존하는 방향으로 연봉이 조정되는 식이다. 반대로 내가 PM 잡레벨 4인데 연봉이 7000만 원이라면 이미 상한치에 도달했으므로 최소한의 물가 인상을 제외한 연봉 인상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의 요소는 회사의 기준치다. 회사가 보상 정책을 공격적으로 가져간다면 마켓 레퍼런스의 높은 쪽(예를 들어 PM 잡레벨 4 보상 레읹지의 상위 25%)을 기준으로 둘 것이고, 보수적으로 가져간다면 평균 혹은 낮은 쪽으로 설정한다. 이는 회사 전체적으로 적용할 수도 있고, 개발 직군과 같이 희소성이 높은 직무에 경우에 한하여 기준치를 높게 설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해력이 빠른 독자라면 벌써 쉽게 결론을 냈을 것이다.
내 연봉을 높이기 위해서는 나의 잡레벨이 높아져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나의 잡레벨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그 잡레벨의 보상 레인지 안에서 소폭 인상되는 것 이상의 결과물을 기대하기 어렵다. 보상 기준치 자체를 높게 가져가려면 내 잡레벨 자체를 높이는 방법이 거의 유일하다.(물론 이직 등의 경우는 제외)
그렇다면 당연히 잡레벨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따라올 것이다.
잡레벨 상승의 기본 원리는 역할의 확장이다.
일반적으로 잡레벨이 높아질 수록 더 높은 권한과 책임이 요구된다. 잡레벨이 낮을 때는 주어진 업무를 실수 없이 수행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만, 잡레벨이 높아질 수록 더 복잡하고 수준 높은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식이다. 따라서 잡레벨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내가 더 복잡하고 수준 높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입증 및 인정받아야 한다.
이는 많은 회사에서 '역할의 확장'이라고 표현된다. 하던 것만 열심히 잘 하던 사람은 HR입장에서 냉정하게 보았을 때 역할의 확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본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수준의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인데, 단순히 연차만 높아졌다고 하여 이 사람의 잡레벨을 높일 이유가 없다. "지난 1년 열심히 했는데 연봉이 오르지 않아서 불만이다"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경우다.
반면 끊임 없이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하고, 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 이른바 성장하는 인재들이다. 이들은 입사 초반에 주어진 업무만 수행하다가, 점점 더 복잡도를 높여 본인이 직접 아이템을 발굴하거나 다른 팀의 협조를 얻어 더 넓은 범위로 역할을 확장하는 사람들이다. 평가/보상 시즌에 HR은 이들의 이런 점에 주목하고 이들에게 그 다음 단계의 잡레벨을 제시한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HR 담당자와 이야기를 많이 나눠본 적이 있는가? 아마 거의 대부분 없을 것이다.
여기서 연봉 인상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또 하나 등장한다. 즉, 내 잡레벨이 다음 단계에 도달하고 있는지는 나의 리더가 대변한다는 것이다.
구성원 개개인의 연봉 조정은 평가/보상 담당자가 나의 리더와 수행한다.(이를 HR 전문 용어로 calibration이라고 한다)
즉
1. 나의 잡레벨이 다음 단계에 도달하기에 충분한지에 대해 리더가 HR에 의견을 제시하고
2. HR이 리더의 의견이 적절한지를 검토하여 확정
하는 것이 기본적인 프로세스다.
따라서 내가 역할을 충분히 확장하고 있는지 나의 리더에게 증명하고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평소 끊임없이 나의 리더와 원온원을 통해 주기적으로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리더가 나에 대해 기대하는 성장 포인트를 충족시켜나가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연봉 협상 시즌이 될 때마다 그 해 연봉에 대한 불만 글은 정말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평가 보상 정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고 있는 사람을 보기는 매우 드물다. 당연하지만 HR 담당자도 일개 직원이다. 이들 역시 본인들 마음대로 연봉을 조정할 권한 따위는 없으며, 대개 위 본문과 같은 프로세스대로 평가 보상 정책이 이루어진다.
이 글을 통해 내가 내 연봉을 높이기 위해서 실제 무엇을 해야하는지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참고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