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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용 Jul 03. 2021

자, 이제 진짜 산책을 시작하지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요즘엔 산책이 더 소중하다. 마음껏 대화하고 오래 머무를 수 없게 되니 천천히 걷는 게 운동이자 취미가 됐다. 거의 모든 걸 집에서 해결하는 요즘, 거리로 나서면 마스크를 써도 해방감이 느껴질 정도다. 


예전에도 이렇게 산책에 큰 의미를 뒀던가? 어쩌면 산책의 맛은 이런 걸 지도 모른다. 미술관과 카페가 문을 닫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진짜 산책을 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무엇이 진짜 산책이냐 하면 가을방학의 노랫말이 알려주는 산책의 정의에 따른다.


산책이라고 함은 정해진 목적 없이.
얽매인 데 없이 발길 가는 대로 갈 것. 
누굴 만난다든지 어딜 들른다든지 별렀던 일 없이 줄을 끌러 놓고 가야만 하는 것.

- 가을방학, <속아도 꿈결> 중에서


우린 지금 어쩔 수 없이 혼자 걷고 어디도 들어가지 못하지만 본디 산책이란 그런 거다. 목적지 없이 걷는 것. 대신 익숙한 골목 풍경을 보며 시간의 변화를 느끼고 도시를 이루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본다. 


누굴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대신 스스로와 농밀한 대화를 나누면 된다. 과거의 나를 떠올려봐도 좋고 앞으로의 나를 상상해도 좋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산책이 되는 것이다.


처음엔 온갖 잡생각이 떠오른다. 오늘 점심으로 먹은 음식이나 친구와의 대화에서 마음이 상했던 기억, 지금 하는 혹은 하지 않고 있는 일에 대한 고민까지.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의 중심에는 항상 내가 있다. 


‘나는 뭘 좋아하지? 내가 왜 마음이 상했을까? 앞으로 난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걸까?’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이미 산책 코스의 반환점을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산책 메이트가 있으면 더 좋다. 산책은 속내를 털어놓게 하는 신묘한 힘이 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목적 없이 나란히 걸으면 이상하게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 작년 9월에 결혼했다. 그러니 우리가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은 산책이 유일했다. 최대한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주로 걷는다.


자연스레 사는 곳과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다. 재개발에 들어가는 골목길의 멋진 양옥집에 대해서. 세탁소 맞은편 가죽 공방 사장님의 세련된 베스파 스쿠터에 대해서. 저녁이 되면 골목 삼거리에 걸린 시계를 본 마을 어르신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풍경이 얼마나 정겨운지에 대해서. 


목적 없이 약속 없이 산책하는 동안 우리는 사는 곳에 대해 더 깊이 얘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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