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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아 Aug 10. 2016

사람들이 사는 거리를 걷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 친절하고 다정합니다.

산책 삼아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천천히 걸었다.

파리공원을 가로질러 서점에 들렀다가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끝물이지 싶은 시들한 참외를 봉지로 묶어파는 트럭 옆을 지나고 있었다. 무심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건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으신 아버지를 돕기 위해 따라나온 듯한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 때문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도대체 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도 모르게 허공에다가 대고 '참외 사세요, 맛있는 참외 싸게 드려요.' 하며 들릴듯 말 듯 모기만한 소리로 나름은 최선을 다해 외치고 있었다.


차를 두고 걸어서 나선 길이라 묵직한 참외 한 봉지를 집까지 들고 갈게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냉큼 사 들었다.


 원짜리 한장을 건네주며 '고마워요, 맛있게 먹을게요.' 하고 인사를 건넸더니 또 모기만한 소리로 '저기,..잠깐만요' 하고 나를 불러 세운다. 그리고는 덤으로 참외 두 개를 더 봉지에 담아준다.


'아니예요, 이미 너무 많이 줬어요. 괜찮아요.' 했더니 '더 드리고 싶어서요.' 한다.


'아버님은 이렇게 멋진 아들을 두셔서 얼마나 행복하실까? 부럽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하고 흐뭇한 맘으로 걸어오는데 막 옥수수 판을 접으려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옥수수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옥수수를 사다 줄까 싶어서 두 개짜리 한 봉지를 샀는데 건너오는 인사로 '참외 알이 참 굵고 달겠네요.' 하시길래 보시  개를 꺼내드렸다.


그랬더니 할아버지도 '그럼 나도 드려야지' 하시며 옥수수 하나를 더 집어주셨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서 사주를 봐주시는 할아버지에게 내가드린 참외 중 한 개를 나눠 주시길래 두 분께 한 개씩을 더 드렸다.


처음보다 훨씬 헐거워진 참외 봉지와 옥수수를 들고 다시 집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짧은 건널목을 앞에 두고 성당 옆까지 왔을 때 우유 시음행사를 하는 가판을 지나게 되었다.


이제 들어간다며 맛만 보라더니 이미 우유병 뚜껑을 따서 쑥 내미셨다. 얼떨결에 받아든 우유대신 '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드릴게 있어요." 하고는 또 참외 두 개를 꺼내서 드렸다. 아주머니는 '그럼, 저도 선물요.' 하면서 이젠 처음보다 반이나 부피가 줄어든 참외 봉지에 우유 한 병을 더 넣어주셨다.'


어쩜...

그 거리엔 나란히 줄 서서 그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가득일까?


성당을 지나 다시 파리공원을 가로질러 집까지 걸어오면서 봉지는 처음보다 부피도 무게도 반으로 줄었지만 들고 오기 적당한 무게가 되어 있었다. 시들기 전에 아직은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알맞은 양이 된 참외와, 식구 수대로 사이좋게 한 개씩 차지가 될 옥수수 세 개, 그리고 우유 두 병...


별거 아니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을 주받고, 나누고 베풀고...그러면서 서로 다정하게 인사를 주고받감사를 나눈다. 연일 폭염특보가 내려진 숨막히게 뜨거웠던 여름날 지친 하루의 마무리가, 8월의  친절하고 따뜻하다.


집으로 돌아와 식탁 위에 친절한 그 거리의 이야기가 한눈에 보이는 수확물을 올려놓자 그걸 바라보던 남편이 웃으며 묻는다.


'무슨 장을 그렇게 띄엄띄엄 어설프게 봐왔어?'


'참외랑 옥수수, 우유가 다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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