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모든 인물들에게 #2 <작은 아씨들>
<작은 아씨들>은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욕망을 가진 여성 캐릭터의 향연과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말고도 볼 것과 읽을 것이 가득했다. 물론 뒤통수가 얼얼한 전개와 중간중간 심장을 찌르는 로맨스의 등장은 흥미로웠지만, 한국드라마에서 처음 느껴본 맛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국 날 설레게 한 것은 세 자매의 통장에 찍힌 n백억이었을까. 아, 그것도 아니라면 정란회의 주장인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 가장 높은 곳으로’를 증명해낸 세 자매의 투쟁 덕분이었을까?
생각해보자. 처음부터 정란회는 대저택의 가장 낮은 곳인 난실에 비밀을 묻었고, 세 자매는 연립주택의 가장 높은 곳인 옥탑에 가난을 묻었다. 결말에서 원상아는 지하 난실의 깊은 곳에 수장되었고, 인혜는 하늘과 맞닿은 폭포 위에서 효린과 함께 미래를 그린다. 자, 이제 누가 가장 낮은 곳에 있고 누가 가장 높은 곳에 있지? 정란회의 슬로건을 자세히 곱씹으면, 결말의 실마리와 함께 새로운 관점이 열린다.
나는 아무 아버지도 필요 없어요.
인경은 ‘아버지’로서 자신을 이끌어주겠다는 조완규 부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 자매의 아버지는 도박과 알코올에 중독된 무능한 아버지로서 그려질 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도 않는 존재이다. 극에는 여러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폭력적이다. 도일의 아버지인 희재는 배신자이자 범죄자, 재상의 아버지인 박일복은 살인자, 효린의 아버지인 재상 또한 원상아에 의해 조종당하는 범죄자이며 원상우를 죽인 살인자이다. 그리고 상아의 아버지인 원기선 장군은 앞선 세 아버지에게 폭력과 살인을 지시하고 방관하던 상징적 인물이다. 아버지들을 이끄는 아버지. 그는 지하 난실의 ‘아버지 나무’로 그려진다.
‘아버지 나무’는 푸른 난초가 살 수 있는 거처가 되어준다. 이는 곧 폭력이 기생할 수 있는 거대한 기둥이다. 병상에 누워 꼼짝없이 VIP 병동에 갇혀있지만, 기꺼이 폭력과 살인의 명분이 되어주는 아버지 원기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아무 아버지도 필요 없’는 인경과 ‘아버지 나무’에 푸른 난초를 걸고 원령가의 하수인이 된 마리가 어떻게 다른 삶을 살게 되었는지 짐작하게 된다.
눈 하나 깜짝 않고 거짓말을 하는 마리는 눈물을 숨기지 못해 보드카를 마시는 인경을 비웃는다. 도박 빚 때문에 망고 따는 노예 신세로 전락한 아버지를 가진 인경은 원령가를 다스리는 아버지를 등에 업은 마리에 비해 약하니까. 그러나 인경은 그런 마리에게 번번이 당하는 듯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가장 원하던 ‘뉴스’로 승리한다.
인경이 HTN에서 뉴스를 하게 된 것은 결국 가짜 뉴스가 판치고, 외압이 일상이 된 언론계에 환멸을 느낀 선배 언론인들이 인경의 정의에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끈질긴 집념으로 취재하고 남다른 용기로 발언한 그녀에게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열쇠는 아버지가 아닌, ‘정의’였다. 세상이 잊은 줄 알았지만, 아직도 찾는 사람이 있었던 그것. 형체만 남아 바스라진 줄 알았던 그 개념에도 힘이 있었다.
인경의 열쇠가 정의라면, 인주의 열쇠는 사랑이다. 700억을 지키기 위해 인주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맞는다. 법정에서 ‘돈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고 증언하고, 돈 세는 게 좋아서 경리가 되었다고 말하는 인주. 그러나 인주는 돈보다 동생들을, 화영 언니를,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된다. 결말에 인주는 인경에게 말한다. ‘넌 내가 합리적인 사람처럼 보이냐?’고. 인주가 합리적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인주를 사랑한다.
우리는 종종 이성을 잃고 희망에 매달려 그릇된 선택을 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주는 결정적인 순간에 ‘화영 언니가 살아있었으면’ 하는 희망에 차서 도일을 배신한다. 원상아는 인주에게 ‘희망이 병’이라고 한다. 희망의 원동력은 사랑이다. 인주는 분명 사랑하기 때문에 화영이 살아있기를 바라고, 사랑하기 때문에 도일이 나쁜 사람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다.
가난한 부모로부터 받은 게 많지 않은 인주는 동생들에 대한 희망을 담보로 삶을 살아간다. 인혜만큼은 거지 소리 듣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인경만큼은 하고 싶은 공부 하게 해주기 위해서. 우리 세 자매 구김살 없이 샷시 잘 된 아파트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녀는 지난한 싸움을 견딘다. 무능하고 나쁜 부모와 달리 진짜 사랑을 동생들에게 주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사랑. 얼마나 무용해 보이는 말인가? 구름처럼, 바람처럼 그저 부유하다가 스칠 것 같은 그 말을 인주는 또렷이 그려낸다. 목숨을 걸고, 큰 소리로 울고, 폭탄을 터뜨리며. 선명한 추상화와 같은 그녀의 행동은 어쩌면 사랑의 정의를 가르치는 화면 같기도 하다. 사랑한다면, 오인주처럼.
인경에게 조완규 부장이 있었다면, 인혜에게는 박재상이 있었다. 박재상은 인혜를 원령가 소속으로 키우려는 의지를 내비치며 그럴 경우 원래의 가족은 망가질 거라고 말한다. 박재상-원상우의 구도가 오인혜-박효린 구도와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었기에 인혜가 그 구조에 편입되었다면 아마도 새로운 파국을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혜는 구조 밖을 벗어나서 다른 세계로 향한다. 폭력에 노출된 친구와 친구의 돈을 모조리 챙겨서. 예술과 자유와 안전이 있는 땅으로.
박재상이 원상우를 죽일 때, 인혜는 효린을 구한다. 그렇다면 인혜의 열쇠는 구원인가? 인주는 사랑을 말하고, 인경은 정의를 말한다. 원기선 장군이 보여주고 원상아가 재현하는 폭력적인 아버지 세대는 인주와 인경이 대변하는 자식 세대에 처참하게 굴복한다. 그 속에서 인혜와 효린은 변화이자 탈피를 상징한다. 판을 바꾸고 세대를 갈아치우는 것. 인혜라는 인물은 그런 종류의 말하기를 하고 있다.
인혜는 자신의 야망과 예술성을 좇아 한국을 떠난 후, 효린과 새로운 유사 가족 형태를 꾸린다. ‘평생 잊지 못할 얼굴들 그 얼굴들 그리고 싶어.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내가 다른 얼굴이 됐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돌아갈게.’ 인혜가 남긴 편지 속에 등장하는 ‘다른 얼굴’은 무엇일까? 인혜의 야망은 어쩌면 폭력의 대물림을 끊고 전통적 가치관을 탈피하는 새로운 세대의 얼굴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새로운 얼굴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인경에게 원기선의 회고록을 전해주는 원령학교 학생이다. 박재상의 마지막 유세장에서 박재상의 실체를 보고 눈물 흘리던 학생은 납치된 인경을 구하려다 다친 종호에게 붕대를 건네주고 인경이 사라진 방향을 알려준다. 이후 장사평이 남긴 원기선의 회고록을 들고 인경을 찾아온 학생은 대사 한 마디 없이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얼굴이 아닐까? 결국 이 학생이 전해준 회고록을 통해 인경은 무사히 보도를 마치고 세상에 정란회의 이야기를 마음껏 밝힌다. 이 학생은 마리와 같은 원령학교 학생이었지만, 자신만의 진실이라는 단어로 교묘하게 인경을 방해하던 마리와 달리 진실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존재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나비효과처럼 변화를 불러온 사람. 이것이야 말로 새로운 세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인물의 탄생이라고 보았다.
세 자매는 진짜 아버지도, 유사 아버지도 필요 없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다. 어쩌면 우리가 서 있는 땅의 높이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과연 어떤 얼굴을 따르고 있는가. 우리가 믿는 열쇠는 무엇인가. 새하얗게 타버릴 아버지 나무의 영광인가, 폭포와 함께 자라날 새로운 세대의 야망인가. 나는 결국 아무 아버지도 필요하지 않은 세대로 나아가자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가장 작고 연약한 아씨들이 사랑과 정의와 변화로 쟁취한 크고 강한 것들을 곱씹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