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나비부인', 뮤지컬 '미스 사이공', 연극 '엠 버터플라이'
사랑과 희생은 정말 한 쌍일까? 희생적 사랑의 아름다움을 담은 예술 작품들은 수없이 많다. 다만 그 작품의 서사가 정말 '아름다운' 희생을 그려내는가는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오리엔탈리즘에 절여진 제국주의적 질서가 아름다움으로 포장되어 세계인의 극찬을 받기도 하기에.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이 문학사, 그리고 음악사에 있어 중요한 고전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나비부인’ 속 푸치니의 아름다운 음악은 비극적 서사와 어우러지며 많은 창작자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있다. ‘나비부인’ 속 나비부인, 즉 주인공 초초상은 ‘순종적 동양인’이라는 오리엔탈리즘적 편견으로 빚어낸 하나의 상징이다. 고국에 따로 정실 부인을 둔 핀커톤 장교에게 팔려가 그와의 사랑에 모든 열성을 바치고 남편이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는 순종적 일본인 초초상으로 대변되는 ‘가녀리고 약한 동양’ 이미지는 수많은 리메이크작 속에서 재창조되어 왔다.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미스 사이공’은 푸치니의 ‘나비부인’을 현대화해 제작된 작품이다. 문제는 시간적 배경만 현대화되었을 뿐, ‘나비부인’이 가진 동양에 대한 편협한 시각은 그대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미스 사이공’의 킴은 ‘나비부인’ 속 초초상의 국적과 출생 연도만 바꾼 정도에 머무르는 캐릭터 설정을 보여준다. 초초상이 그러했듯이 킴 또한 사랑이 좌절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편협한 시각과 서양우월주의적 태도로 점철된 이 작품은 작곡가 클로드-미셸 쇤베르크의 매력적인 음악으로 포장되어 지금까지도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다.
https://youtu.be/6cQznbh0QaU
초초상이 상징하는 제국주의적 환상을 비틀어낸 것은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이었다. 1986년, 중국 주재 프랑스 영사인 버나드 브루시코가 국가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다. 그의 연인인 경극 배우 쉬 페이푸가 이른바 ‘미인계’로 프랑스 기밀을 빼돌렸다는 것이 사건의 주요 정황이었다. 이 사건이 파장을 일으킨 것은, 쉬 페이푸가 여성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남자였으며, 버나드 브루시코는 쉬 페이푸가 생물학적 남자인 것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둘 사이에는 자식도 있었다. 데이비드 헨리 황의 역작으로 꼽히는 ‘엠 버터플라이’는 이 사건에서 얻은 영감을 ‘나비부인’의 플롯에 접목하여 풀어낸 작품이다. 주 베이징 프랑스 대사인 르네 갈리마르와 중국인 경극 배우 송릴링이 이끌어가는 이 이야기의 종착점은 르네의 자멸이다. ‘나비부인’과 ‘미스 사이공’과는 확실히 궤도를 달리한다. ‘엠 버터플라이’ 속 르네는 송릴링 자체가 아닌, 그가 두르고 있던 ‘신비롭고 얌전한 동양인’이라는 껍데기를 사랑한 것으로 묘사된다. 작품의 막바지에 그는 스스로 ‘나비부인’ 속 초초상의 외양, 즉 순종적이고 ‘동양적’인 이미지를 온몸에 분장하여 뒤집어쓴 채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스스로 눈을 가린 채 자신이 원하는 환상의 세계만을 봐 온 그의 추락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 내지 조롱으로 작용하며 원작의 정신을 완전히 전복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엠 버터플라이’가 ‘미스 사이공’보다 일찍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나비부인이라는 고질적 판타지가 시대 흐름에 따라 조금씩 해체되고 있으리라는 기대와는 정반대다. 우리는 아직도 나비부인의 끊임없는 재탄생 속에 똑같은 환상을 되새기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