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끝낸 드라마가 오픈했다

소회를 말하자면

by 공룡

쉴 틈 없이 두 작품이 끝났다.

아니 그 사이에 잠깐 스친 작품(중간에 엎어진 작품)이 있었으니 두 작품 반이라고 하겠다.


그 중 2024년 8월에 끝나고 종방연 장소를 찾고 있다고 브런치에 올렸던 작품 하나(이하 A)가 오픈했고,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동안 나는 작품을 하면서 "내 작품"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건 그냥 감독님의 작품, 작가님의 작품, 제작사의 작품, 방송사의 작품. 나는 그냥 부품 중 하나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A 작품을 하면서 처음으로 작품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 OTT 방영의 특성 상 제작 후 1년 가까이 지나야 오픈이 됐는데 1년동안 이렇게나 기다린 작품은 처음이었다. 잘되기를 간절히 기도한 작품은 처음이었다. 웃기게도 그 작품을 함께한 모두가 작품이 잘되길 간절히 바랐던 걸 보면 이건 나의 마음가짐의 변화가 아니라 그 작품의 영향이겠다.


평화롭고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작품 특성 상 품이 많이 들어갔고 모두가 다 같이 고생했던 작품이었다. 4계절을 함께하면서 정이 많이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길게 찍으니 그 이유가 다인 것도 아니다. 좋은 대본과 좋은 감독님이 구심점이 되어서 모두 한 작품을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 으쌰으쌰 해서일까?


사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 작품이 잘되길 간절히 바랬던 이유 중 하나는 감독님이 잘되길 바래서였다. 그리고 또 웃기게도 다른 스탭들도 입을 모아 얘기하길 "감독님이 잘 돼서 너무 좋다." 인 걸 보니 아무래도 좋은 감독님과 함께 한 작품이어서 인 것 같다.

세상에! 사람을 싫어하는 내가 가족이 아닌 타인을 이렇게나 응원하다니.


이번에 다른 작품 B를 촬영하면서 술자리에서 대선배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항상 좋은 사람을 만나길 간절히 바랐는데, 이만큼 세월이 흐르고 나니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남사스럽게도 난 그 술자리에서 눈물을 찔끔 흘릴 뻔 했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인생을 관통하는 한마디였다.

A 작품의 감독님 처럼 그냥 좋은 사람 곁엔 항상 응원하는 사람이 있고 좋은 사람만 남게 되는 건데!


또 다른 작품 B를 마치고서야 A 가 세상에 나왔고 이제 또 1년 후가 되면 B가 오픈을 할 것이다. 운이 좋게도 이번엔 또 좋은 배우를 만났다. 내 꿈의 시작이었던 감독님과 함께 했고, 너무 좋은 배우와 함께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연속으로 좋은 작품을 하면서 좋은 감독님, 좋은 대본, 좋은 배우 (그것도 내가 드라마를 시작하면서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분들! ) 를 만나고 나니 이제 어떤 욕심이 사라진 것 같다. 나는 항상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더욱 더 높은 자리, 더 좋은 기회에 대한 갈증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안의 어떤 결핍이 채워졌나보다. 아니면 어쩌면, 이렇게까지 훌륭한 사람들을 만났음에도 어떠한 성취가 없는 나의 모습에 무언갈 포기해버린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하고 싶어했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이 위치에서의 최선이 여기라고 생각해서 다른 방향을 찾아봐야 하는건지, 나에게 어떠한 다른 자극이 필요한건지. 아니면 이제서야 모든 것이 부질 없음을 깨닫고 마음의 평화를 찾은것인지.


어떤 게 정답이 될 진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연속으로 끝낸 "내 작품"들 잘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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