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엘리베이터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눈치껏 겨우 타고 나는 한숨을 돌렸다. 3층에 땡! 문이 열리자 문 앞에 서 있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물었다.
“이비인후과가 몇 층인가요?”
사람들이, “2층이요.” 대답하자, 깜짝 놀라며 내렸다. 내려가야 한다 싶었나보다. 그리고 문이 거의 닫힐 무렵, 그 할아버지의 외마디 탄식이 들렸다.
“아....이비인후과가 아니라 비뇨의...”그 말과 함께 문은 야멸치게 닫혀버렸다. 내가 앞쪽에 서 있었으면 열림 버튼을 다다다다 눌러줬을 텐데...비뇨의학과는 4층이다.

병원 진료가 끝나고 핸드폰을 새로 개통하러 갔다. 한 할아버지가 멋쩍게 들어오더니 핸드폰에 이상한 게 많이 뜨는데 바이러스를 먹은 거 같다고 했다. 사장님이 보더니,
“할아버지, 이런 건 앱을 무지성으로 많이 깔아서 광고가 뜨는 거예요.” 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지난달에 중국 가서 이심(e-sim)을 꽂았는데 거기 겉에 바이러스가 막 묻어 들어온 게 아닌가 싶고...” 젊은 사장님과 내가 동시에 풋-웃음을 터뜨렸다. 광고가 유독 많이 뜨는 기독교 관련된 앱을 없애라는 조언에는, “나도 그건 알겠는데, 차마 하느님 관련된 앱이라 내 손으로 지우면 벌받을까봐 못 없애겠더라고.” 라는 할아버지. 오! 할아버지의 그 마음씨만으로도 하느님이 감동할 판이다.

핸드폰 개통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번에는 할머니 한 분이 등장했다. 배터리가 거의 바닥이란다. 사장님이 충전기를 꽂아주며 한 바퀴 돌고 오라고 하니 은근슬쩍 내 옆으로 엉덩이를 밀고 들어왔다. 묻지도 않았는데, 본인 사기당해 집 날린 얘기부터 딸이 시집 안 간 이야기까지 다 늘어놓는다. 바빠 죽겠는데 계속 말을 시킨다. 가만 보니 이 할머니, 외롭다. 온갖 욕 섞어가며 세상 불만을 털어놓는 거 보니 상처를 많이 입었나보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싶어서 들어온 것 같았다. 충전은 얼마 안 되어도 집에 갖고 가도 된단다. 역시 배터리가 문제는 아니었다.

이분들은 언제부터 노인처럼 행동한 걸까. 갑자기 나도 겁이 더럭 났다. 나도 중년이면, 노인 직전이 아닌가? 노인처럼 행동한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이 어린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도 행동이 느리고 어이없을 때가 많을 텐데. 모든 것은 상대적이지 않을까.
작년에 전철을 타고 신촌역을 가던 중, 실수로 이대역에 내린 적이 있었다. 실수를 알아챘을 때 전철 문은 아직 열려있었다. 그냥 얼른 다시 타면 될 일이었다. 어라, 발이 움직이질 않았다. 겁이 났던 걸까. 왠지 내가 탈 때 문이 닫히면 어딘가를 다칠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문이 오래 열려있다. 다시 탈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포기했는데도 안 닫히는 문. 진짜 발을 집어넣어? 말어? 어쩌지? 고민만 하다 그 전철을 떠나보내고 다음 전철을 타고 갔던 기억이 있다. 내 몸은 겁이 많아졌고, 재빠름과는 이별한 중년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이건 피해갈 수 없다. 어느 날 거울을 보면 낯선 우리의 모습과 조우하게 된다. 머리는 하얗고 얼굴은 주름투성이에 눈꺼풀은 졸린 듯 눈동자를 가린다. 세상을 보는 눈이 반은 가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늙음은 내면에서 온다.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꼿꼿한 마음가짐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지고, 외모가 늙었다고 새로운 배움을 포기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겉모습은 하얗게 세월이 내려앉았어도 인생에 대한 열정이 여전하다면 과연 ‘늙었다’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젊은 사람보다 더 열정적인 노인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급히 먹는 밥이 체하고, 빨리 뺀 살은 도로 찐다. 술도 급히 마시면 토해내야 한다. 뭐든 너무 서두르면 안 하니만 못한 일이 된다. 무조건 젊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늙지 않는 건 아니다. 서서히 연습해보는 게 어떨까. 아직은 검은 머리가 흰머리보다 많고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면, 지금부터라도 외면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늙어버린 몸보다 더 힘든 건 내 몸과 다른 템포로 흘러가는 젊은 세상이니 세상을 향한 촉을 유지하며 서서히 낯을 터볼까 한다.
얼마 전, 로봇 청소기가 고장이 나서 AS센터에 전화를 했다. 나와 통화한 직원이 카톡 링크를 보내주며 카톡으로 AS를 진행한다고 했다. 뭐라고? 난 전화가 편한데, 답답하게 언제 그걸 카톡으로 다 이야기하나 싶어서 부글거렸다. 실제로 며칠에 걸쳐 AS는 진행되었고, 중간 중간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 느려터진 과정을 답답해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증상을 동영상으로 찍어 전달할 수도 있고, 센터 쪽에서도 동영상을 보내며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알려주는데 그들의 카톡 상담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내지 않길 잘 했다.
화내지 말자. 우기고 화내면 나이 든 거다. 나이가 벼슬도 아닌데,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내 방식이 옳았다고 지금도 옳은 건 아닌 거다.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틀리다. 그렇게 배우며 살다 보면, 어느 날 내가 병원에서 길을 잃어도, 핸드폰 쓰는 방법이 낯설어도, 혼자인 게 외로워도, 쿨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난 그냥 늙어가는 게 아니라 천천히 내 시간을 꼭꼭 소화하며 살아가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