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육면까지 든든히 먹고 융캉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굳이 대만까지 가서 멍 때릴 필요는 없는데, 융캉제에 있는 공원에서 그리고 시먼딩 역 주변에서 멍하게 혼자 앉아 있었다.
비싼 비행기값이 안 아깝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꽉 채운 그림보다 여백이 있는 그림이 풍부한 그림이라는 걸 그림을 그리고부터 알았다. 내게 있어 여행도 마찬가지다. 예전과 달리 아침부터 관광지로 빡빡하게 돌아다니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들고, 쉼이 필요했다.
문방구를 들렸다. 혹시나 쓸만한 스케치북이 우리나라보다 저렴하면 두 세권 사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스케치북이 없어 그냥 문방구를 나왔다. "편의점에서 물이나 사서 근처 공원이나 갈까?" 퍼뜩 이상한 내 모습을 발견했다. 대화 상대가 없으니 혼자 묻고 답을 하는. 인간은 대화 상대가 꼭 필요한 거 같다. 2000년에 개봉한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좌초된 주인공이 배구공을 '윌슨'으로 지칭하며 대화를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유인도로 여행을 왔지만,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육면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허기가 졌다. 그때 발견한 곳. 이름도 정확한 위치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줄 서있었다. 차림새를 보면 관광객이 아니고 근처 직장인이거나 주민 같이 보였다. 줄이 너무 길었다면 포기했을 테지만 5분 정도면 내 차례가 될 거 같았다. 먼저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고 줄을 섰다.
차례가 되었다. 머리 위에 적힌 메뉴판을 보았다. 모를 땐 원조를 먹어야 한다는 게 평소의 지론이다. 기본이 맛있으면 다 맛있으니까. 그래서 원미(元味)라고 적힌 걸 하나 주문했다. 엄청 빨리 아줌마가 뚝딱뚝딱하니까 음식이 나왔다. 생긴 것이 마치 우리나라 빈대떡 같이 생겼는데 그걸 반으로 접어서 포장해서 주셨다. 먹을 땐 이름을 몰랐지만, 먹고 나서 알게 된 총좌빙. 맛은 좀 짰다. 딴 말이지만, 내가 우연히 먹은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던 건 딴삥이다. 특히 소스에 찍어 먹으면 둘이 먹다가 하나가 화장실에서 오래오래 있다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맛이었다. 딴삥은 예스지 투어 버스를 타려고 시먼딩 역을 걸어갈 때 테이크 아웃을 많이 하는 걸 보고 들어가서 먹었다. 지금 다시 찾아가라고 하면 당연히 못 찾지만, 블로그에서 추천하는 그 어떤 맛집보다 우위였다.
포장한 총좌빙과 편의점에서 산 물을 들고 근처 공원으로 갔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었다. 그러나 벤치에는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내가 산 총좌빙을 먹는 사람,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 아이를 보는 엄마, 할머니, 벤치에 드러누워 잠깐 낮잠을 자는 사람 등. 도심 공원의 시간은 평화롭게 흐르고 있었다. 여행자인 나도 공원의 일원이 되어 그 시간에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같은 시공간에 있지만, 그들과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갈 거고. 총좌빙을 다 먹고, 멍하니 앉아서 머릿속을 떠다니는 '혼자니까 생각보다 심심하네'를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평소엔 혼자서 누구보다 잘 노는 사람이라고 자타공인한 사람이 '나'였는데.
공자는 나이 50을 지천명이라고 했다. 성인(聖人)이니까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된 것을 인정한다.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것은 꿈도 꾸지 않는다. 나는 성인(聖人)이 아니니까.
'어린 왕자'도 먼 곳을 돌고 돌아 다시 자기 행성으로 돌아갈 때, 어린 왕자가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수많은 장미 중에 가장 소중한 장미는 자기 행성에 피어 있는 장미라는 걸 안다. 비록 어린 왕자처럼 여러 개의 행성을 여행하지 않았지만, 가족도 친구도 없이 내 맘대로 다 할 수 있는 혼자 여행은 당연히 홀가분할 줄 알았다. 엄마로서, 아내의 나는 혼자여도 심심하지 않지만, 온전히 나로 있을 때 심심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면 평소에 가족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알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한 적이 없었다. 여행을 떠나와서 발견했다. '나'를 잘 모르는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