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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Jul 15. 2024

단수이와 아리랑

"시작만 하면 잘할 수 있어요~

눈치 100단 한국의 아줌마자나요 ㅎㅎ

쫄지 마시고 홧팅입니다~!!!

지하철로 단수이는 꼭 다녀오시길요~"


한 번도 뵙지 못한 인친이 인스타에 남긴 댓글이다. 감사하게도 여행지까지 추천해 준 단수이는 노을이 아주 근사하다고 했다. 노을이 근사하려면 비가 오면 안 된다. 우중충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타이베이 인근에 있는 단수이는 숙소에서도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룡산사 역에서 타서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에서 빨간색 라인으로 환승하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첫날 어리바리한 한국 아줌마가 더 이상 아니었다. 다행히 빨간 라인을 한 번에 찾아서 단수이 가는 MRT에 올랐다. 벌써 대만에서 3일 차였다. 눈치 100단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시간으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오르막길 끝에 만난 식당]

계획은 먼저 홍마오청을 둘러보고, 단수이 강변에 앉아 노을을 감상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하철 역을 나와 **맵을 보며 걸었지만, 자꾸 이상한 방향을 가리켰다. 한국이라면 그냥 마음대로 가도 조금 돌아갈 뿐 길을 찾을 수 있지만, 타국이니 어쩔 수 없이 **맵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자꾸 골목으로, 위로 올라가는 지도가 믿기지 않아 중간에 사람을 만났을 땐 번역기를 돌려 물었다. 그분도 **맵이 가리키는 길이 맞다고 한다. 그러나 사진에서 보았던 홍마오청이랑 비슷은 하지만 홍마오청은 아닌 건물이 나왔다. 책에서 본 홍마오청은 역사박물관인데 짝퉁 건물은 고급 식당이었다. 설마 식당으로 바뀌었나 싶어 검색했다. 여전히 박물관이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이 건물은 짝퉁이었다. 골목골목 올라온 길이 조금 억울했지만, 높이 올라온 만큼 풍경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올라온 길 반대 방향으로 내려왔다. 메인 도로가 나왔다. 상점마다 두 집 건너 대만 카스텔라 가게였다. 주말이 아니긴 하지만 거리는 한산했다. 딱 한집만 빼고. 그 집 앞에 한국 아줌마들이 단체로 줄을 서서 카스텔라를 몇 통씩 사고 있었다. 점심을 먹기도 했고, 한때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대만 카스텔라를 먹어본 적도 있어서 그냥 지나갔다.  빵 크기도 커서 들고 다니기엔 짐만 될 것 같았다. 나중에 집에 올 때 사서 줄도 서지 않고 바로 샀다. (한국인들에게만 인기지 대만사람들은 사는 걸 보지 못함)

[대만 카스텔라]

큰 도로에서 골목으로 내려왔다. 단수이 강변이다. 처음엔 바다인 줄 알았다가 담수(淡水) 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길이란 걸 알았다. 혹시 운이 따른다면 노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가 먹구름을 보고 포기했다가 다시 기대했다가 그렇게 강변을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걸었더니 배가 고팠다. 스펀에서 먹었던 마늘 소시지도 사 먹고, 망고주스도 사 먹으며 강변의 여인이 되어 천천히 걸었다. 배를 채우고 나니 한결 여유가 있어 배들이 정박한 곳에 앉아 그림도 한 장 그렸다. 그렇게 해도 시간이 3시 30분이었다. 다시 밝아지는 하늘을 보고 노을이 내려앉기 전에 홍마오청을 다녀오기로 했다.

[단수이에서 아리랑을 들을 줄이야]

10분쯤 걸었을까. 멀리서 기타 선율이 들렸다. 관광지지만, 주중인데 낮부터 버스킹을 할 줄은 예상 못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기 위해 좀 더 빨리 걸었다. 어깨에 기타를 메고 노래를 하는 분은 중년남자였다. 당연히 청춘들만 버스킹을 할 줄 알았던 나의 편견이 깨졌고. 그때까지만 해도 대만 노래는 몰랐고, 오래전 첨밀밀에서 나온 노래 '월량대표아적심'을 부른 가수가 대만 사람인 등려군인 것만 아는 정도였다. 그분의 노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노래였고, 다른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것에도 실패였다. 나 역시 홍마오청을 가기 위해 돌아섰다. 몇 발 걸었을까 익숙한 곡조가 흘러나왔다.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아리랑. 정정한다. 적어도 20대까지는 다 알 수 있는 아리랑. 노랫말 없이 기타 선율만 절정으로 내달렸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심리도 가서 발병 난다." 자동반사처럼 흥얼흥얼 흘러나오는 노랫말에 잠시 망설였다. '발병 나기 전에 다시 그분에게 돌아가야 하나?' 하지만 다시 돌아가진 않았다. 타국에 와서 고국의 전통 민요를 들어서 신기하고 반갑긴 했지만 사무치게 그립진 않았다. 왜냐면 이틀 후면 나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무엇보다 노을을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다면 빨리 홍마오청을 다녀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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