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을 한 옷들을 탈탈 털지않고
그대로 건조대에 널어 말렸다
처음엔 섬유유연제의 향이 좋았다
코끝을 향해 들어오는 향긋함이
나를 환기시켜주는 듯하다
털어내지 않아서 군데군데 옷에 남은
세제가 몸을 간질거리며 괴롭힌다
향기는 이미 몸냄새와 희뿌연 먼지로
생명력을 다한지 오래된 시간이다
세탁기는 멀쩡한데
내가 아직 털어내지 못한 것이 있나요
옷감 안쪽에 소리없이 기생하며
지워지지 않은 얼룩같은 것이겠지
잊어보겠다고 더 깊숙이 감춘 그리움
발설하지 않겠다며 일기에 쓴 고백
보지 않겠다는 일념이 각인시킨 고독
같은 거겠지 멀쩡한 세탁기도 사람도
쉽게 지울 수 없는 그런 깊고 느린 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