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성실

by 화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두통에 시달리며 일을 하고 찾아오는 이틀의 자유시간, 두통약은 잠시 멀리해도 되는 주말이 오면 나는 방황한다. 아마 한 번쯤은 그런 적이 있을 것이다. 계획되지 않은 여유가 찾아오면 즐기지 못하고 허공에 붕 뜨는 듯이 시간을 낭비하는 날이 있다.

MBTI가 ENFJ인 나는 쉬고 노는 것도 계획이 있어야 하는 성격이기에 예기치 않게 생기는 쉼과 여유에 대해 무방비하게 놓이곤 한다. 어떻게 보면 쉼에도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일이지 않을까. 우연히 좋게도 일이 빨리 끝나서 퇴근을 하면 갑자기 생기는 저녁의 삶을 만끽하지 못하고, 이 만끽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불만족하며 불안해하곤 한다.


토요일인 오늘은 덜 추운 날이기에 서늘한 겨울 공기를 마시며 따뜻한 햇살을 만끽하고 싶어, 목적지가 없는 길거리를 걸었다. 기분 좋은 웃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놀러 가는 친구들과 애틋한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번화가를 거닐다가 붕어빵을 팔고 있는 할머니를 마주했다.

원래 길거리에서 음식을 홀로 잘 사 먹지 않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이, 누군가가 내게 최면을 건 것처럼 붕어빵 가게로 들어섰다. 붕어빵을 사고 나오며 공원의 벤치에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붕어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한입 베어 문 붕어빵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가 붕어빵 가게의 할머니와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내 할머니를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연이어 엄마와 아빠, 우리 집을 회상시키며 내 온 신경을 섞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농장 일과 쌀가게를 하였다. 할머니는 쌀가게를 운영하셨고 엄마는 할머니를 도우시면서 동시에 아버지와 함께 농장일도 하셨다. 소를 비롯하여 가축을 키우고 과수원과 밭을 일구었기 때문에 주말에도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야 했다. 가끔 어설픈 손놀림으로 부모님의 농장일을 도와드리곤 했다. 할머니는 가끔 길거리에서 노상으로 쌀을 팔고 돌아오시곤 했기 때문에 학교와 학원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를 마주치기도 했다.

나의 어린 시절에 어른들은 주말에 '쉼'이 없었다. 너무 어렸을 때부터 보아 왔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점점 머리가 커지면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공부에 매진했다. 서울에서 대학생활과 멋진 문화생활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었기 때문에 주말에도 공부를 열심히 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내 주말에도 '쉼'은 없었다. 그게 익숙했다.


그러나, 이 익숙함이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불안함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종종, 아니 꽤 자주 있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을 하기 위해 재수 생활을 시작했고, 나로 인해 큰돈을 써야 했던 부모님. 타지 생활을 하면서도 수입이 없던 나를 위해 월세 보증금을 내야 했던 부모님. 내가 점점 경제관념이 뚜렷해지고 독립하는 생활에 깊어 가면서 책임감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함께 성장했다.

나를 더 보살피고 챙겨주기 위해 지금까지도 새벽부터 밤까지 주말에도 농장 일을 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할 때면 마음의 실타래가 엉켜서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만약, 내가 돈을 잘 벌고 일찍 성공하고 좀 더 의젓한 사람이었다면 조금은 부모님이 더 편히 쉬면서 일을 덜하시지 않았을까. 벌에 덜 쏘이고 풀독도 오르지 않아 아프지 않고 피곤함도 줄어들지 않았을까. 수많은 가정과 상상들이 내 마음에 채찍질을 꽤 오래전부터 해왔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더 성공하지 못하고 의젓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미움이 지금까지도 나의 '쉼'을 괴롭히고 있다. 무언가를 더 열심히, 성실하게 해서 발전하고 성장해야 나와 가족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아픈 생각을 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매사에 성장을 하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의 성실함은 늘 불안함이 동반한다. 계획해둔 것을 작심삼일로 하지 않고 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나태함과 게으름이란 죄를 짓고 있는 듯이 불안하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지 않는 느낌이 들 때면 어김없이 불안감이 찾아온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불안한 성실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쉬어야 한다고 계획하고 쉬더라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 주변 사람들은 열심히 산다고 칭찬을 하지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조금은 내려놓으라고 한다. 이 성실함이 누군가에겐 긍정적인 이미지로 비쳐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게 하지만 가끔은 달갑지 않다. 오히려 성실하지 않아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마음껏 쉬고 놀고 여유를 누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부럽다.


사실은 알고 있다. 나무를 잘 베기 위해서는 날을 날카롭게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하지만 여전히 쉬는 것에도 불안해서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좀처럼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것이 불안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다른 사람들의 성실함은 무엇에서 비롯되고, 어떤 감정이 동반되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나를 성장시키고 만든 것은 이 불안한 성실함의 덕분이다. 애증의 관계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 불안함을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잘 모르고 생각해온, 부모님으로부터 봐온 이 성실함에서 통증을 느낀다. 잘 쉬는 것이 더욱 성실하게 살면서 행복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하면서 현실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는 모든 잡념과 걱정, 불안함을 내려놓고 불성실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