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실패는 누가 정했나.
일상에서 우리는 종종 이런 장면을 목격한다. A는 답을 모르는 상황에서도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설령 잘못된 답을 할지언정 끊임없이 대답을 시도한다. 반면 B는 확실하지 않으면 침묵을 선택한다. 답을 모르면 아예 입을 다문다. 이 둘 중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존재일까? 그리고 이 A와 B는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A는 바로 인공지능(AI)이고, B는 인간이다. 이 단순해 보이는 대조는 우리가 '실패'와 '성공'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은 실패를 통해 배운다. 쓰라린 경험은 다시 도전하는 자양분이 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목표를 이루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그 과정에서 성장한다. 실패는 인간에게 단순한 좌절이 아니라 학습의 기회이자 성숙의 과정이다. 하지만 AI는 실패라는 개념 자체를 알지 못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실패라는 감정이나 경험을 학습한 적이 없다. AI는 인간이 실패라고 정의하고 명시적으로 학습시키지 않는 한, 수많은 오류를 경험하면서도 그것을 '실패'로 인식하지 못한다.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그것은 단순히 다른 결과를 산출한 데이터일 뿐이다. AI에게는 실패도 성공도 아닌, 그저 정보 처리의 한 과정일 뿐이다.
이런 차이는 흥미로운 역설을 만들어낸다. 실패를 모르는 AI는 두려움 없이 계속 시도하지만, 실패를 아는 인간은 때로 그 두려움 때문에 도전을 주저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경험하는 이 '실패'라는 개념은 과연 누가 가르쳐준 것일까?
최초에 '시험'이라는 것에서 100점을 받으면 성공이고 90점은 실패라는 정의는 누가 내렸을지 궁금해졌다. 왜 우리는 이런 기준에 따라 자신을 평가하며 고통받는 것인가. 그리고 그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비교'에서 비롯된 잣대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AI 세계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대조를 발견할 수 있다. ChatGPT, Claude, Gemini, Grok 등 수많은 AI 모델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서로를 비교하며 대립하지 않는다. 각자의 고유한 강점과 전문 분야가 있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답을 제공하려 노력할 뿐이다. 모델 간의 성능 차이는 존재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의식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그저 사용자의 질문에 가장 적합한 답을 찾기 위해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끊임없는 비교의 시선 속에서 살아간다.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직장에서는 성과로, 사회에서는 지위와 재산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평가는 더욱 견고해진다. 내가 이기지 않으면 상대가 올라서는 제로섬 게임이 일상화되고,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비교의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댈 수밖에 없다.
이런 비교 문화는 특히 전문성을 둘러싼 환경에서 두드러진다. 많은 조직에서 비전문가가 전문가 행세를 하려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진정한 전문성을 기르려면 자기 공부가 필수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 공부'에만 의존한다. 남의 말을 듣고, 남의 경험을 전수받는 것으로 전문가가 되려 한다. 하지만 듣는 것만으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면 세상에 어려운 일이 있을까 싶다. 진정한 전문성은 직접 부딪히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체득된다. 남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칙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변형하고 적용할 때 비로소 자신만의 지식이 된다. 이렇게 체득화된 지식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만의 전문성을 형성한다.
우리는 종종 이런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회의실에서 한 명은 열심히 경청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자신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한다. 전자는 타인 공부에 머물지만, 후자는 자기 공부로 발전시킨다. 실패를 두려워해 침묵하는 것보다, 틀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가 결국 더 큰 성장을 가져온다.
출처: Lummi.ai ⓒ Sofía
실패가 가지는 특성 중 하나는 그것을 평가하는 주체가 바로 인간이라는 점이다. 100점도 잘한 것이고, 90점도 잘한 것이며, 심지어 50점도 나름의 성취다. 기준점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달리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들과 비교하는 대신 과거의 자신과 비교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경험을 쌓는다면 훨씬 덜 힘들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경쟁이 지배하는 시스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경쟁은 곧 비교를 의미하고, 비교는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자신이 경쟁하고 싶지 않아도, 비교당하고 싶지 않아도 시스템은 우리를 그 구조 안으로 밀어 넣는다. 취업, 승진, 평가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우리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 놓인 우리에게는 어떤 지혜가 필요할까. 아쉽게도 이 문제를 해결할 지름길이나 특별한 비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평범하고 일반적인 방법들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때로 연약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필요하다.
역사상 많은 사상가와 혁신가들이 실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들의 통찰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조언이 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넘어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실패는 넘어지고도 거기 머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실패는 과정이지 결론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넘어졌을 때 얼마나 빨리 일어서느냐가 아니라, 결국은 일어선다는 의지와 행동이었다.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성공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실패는 치명적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 나아갈 용기다"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성공과 실패 모두 일시적인 상태일 뿐이며, 진정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이라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IBM의 설립자 토머스 J. 왓슨은 더욱 역설적인 조언을 남겼다. "성공의 공식을 알려 드릴까요? 실패의 비율을 두 배로 늘리세요." 언뜻 모순적으로 들리는 이 말은 사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더 많이 시도하라는 의미다. 더 많이 실패할수록 더 많이 배우고, 결국 성공의 확률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의 유명한 말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실패한 적이 없다. 단지 작동하지 않는 10,000가지 방법을 발견했을 뿐이다." 에디슨에게 실패는 끝이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과정의 일부이자,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한 소중한 데이터였다.
동양 철학의 거장 장자 역시 "성공을 원한다면, 실패를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실패를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대신,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성장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지혜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바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의 중요성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이 2,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성공과 실패의 뿌리는 외부의 평가나 비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내면의 인식과 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례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창립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치욕적인 실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그는 이 실패를 내면적으로 소화하며, 오히려 더 큰 혁신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결국 애플로 돌아온 그는 아이폰, 아이패드 등 혁신적인 제품들을 선보이며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이끌었다. 잡스에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였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태도야말로 혁신의 원천이었다. 내면의 충실함을 위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책과 영화를 통해서 익히 알려져 있다.
또한 과학자들의 연구 과정을 살펴보면 실패에 대한 건강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 과학자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검증한다. 실험 결과가 가설과 다르면 그것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예상과 다른 결과'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부터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다시 실험한다. 노벨상을 받은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 과정을 보면, 최종 성공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예상과 다른 결과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런 결과들을 실패로 여기지 않고 소중한 데이터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작동하지 않는 방법'을 아는 것도 '작동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거대한 성공을 한 번에 이루려 하기보다, 오늘 한 걸음을 내딛고 내일 또 한 걸음을 내딛는 꾸준한 자세다. 이는 단순해 보이지만 가장 확실한 성장의 방법이다.
'실패한 인생'과 '성공한 인생'을 자로 재듯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대신 과거의 자신과 비교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했다면, 작년보다 올해 조금 더 성숙해졌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지 않을까. 이런 마음가짐을 '정신승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는 정신승리가 아니라,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의 정신승리'다. 사회의 획일적인 성공 기준에만 자신을 맞추려 하면 평생 남과의 비교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간다면 비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게으름이나 자기만족을 정당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더 치열하게, 더 진정성 있게 살아가자는 제안이다. 남을 의식해서 하는 노력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 말이다.
이 글을 시작하며 제기했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실패하지 않는 AI와 실패를 통해 배우는 인간 중 누가 더 나은 존재일까에 대한 답은 '둘 다 각자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AI의 두려움 없는 시도 정신과 인간의 실패를 통한 학습 능력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발전시킨다. AI는 인간이 시도하기 어려운 수많은 가능성들을 검색해 주고, 인간은 그 결과들을 의미 있게 해석하고 활용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AI를 두려워하거나 질투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AI의 장점을 배우되, 인간 고유의 가치인 '실패를 통한 성장'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실패할 줄 아는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공감, 회복력, 창의성은 그 자체로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실패는 결코 매력적이지 않다. 누구나 성공을 원하고, 성공이 주는 짜릿함과 만족감을 추구한다. 하지만 성공만 경험한 사람보다는 실패와 성공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 더 깊이 있고 지혜로운 경우가 많다. 실패에는 나름의 품격이 있다. 실패를 통해 얻은 겸손함,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 어려운 상황을 버텨내는 인내력은 성공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소중한 자질들이다. 이런 자질들이야말로 진정한 리더십의 바탕이 되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실패가 두렵겠지만, 대신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지, 어떻게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것인지에만 집중했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조금이나마 실패는 짓누르는 무게가 아니라, 성장시키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길고 긴 인생에 있어 성공과 실패는 순간의 이분법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의 과정 속에 있다는 점이다. 오늘 한 걸음 내딛고, 내일 또 한 걸음 내딛으며, 자신만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실패와 성공을 넘어선 진정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 그리고 그런 자세로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실패의 굴레를 벗어나 조금이나마 더 나은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