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나나나 나나나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난 아무것도 망치치 않아
난 왼손잡이야
나나나 나나나
난 왼손잡이야
나나나 나나나
-패닉의 노래 '왼손잡이' 중
시드니 여행 중에 패닉의 '왼손잡이'를 흥얼거리는 날이 있었다. 이 노래를 다 부를 줄 아는 것도 아닌 내 입에서, "난 왼손잡이야~"가 흘러나왔다는 말이다. 오른손잡이로 평생 살아온 내가 왼손잡이 맘을 어찌 다 알겠는가. 기껏 하는 간접 경험은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낼 때,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할 때 왼손을 드는 사람"이 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날은 정말 왼손잡이가 된 날이었다.
시드니 하이드 파크에 있는 안작 메모리얼(Anzak Memorial) 화장실에서였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전사자 추모 공간이었으니 우리 식으로 말하면 전쟁기념관 같은 곳이었다. 그곳 화장실이 예술이었는데 가장 충격적인 감동은 따로 마련된 왼손잡이 용 오른손잡이 용 화장실이었다. 유니섹스(성중립) 화장실이 당연한 문화인 걸 확인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던 나, 왼손잡이 따로 오른손잡이 따로인 화장실 앞에선 입을 딱 벌리고 멈춰서고 말았다. 두 출입문 앞을 왔다갔다 확인 또 확인했다.
다양성 포용성의 현장이었다. 장애로 휠체어를 탄 사람, 한쪽 손 또는 팔이 불편한 사람, 한 팔에 목발을 짚은 사람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았다. 오른손잡이로서 나는 아무렇지 않게 오른손으로 문을 열며 살아왔다. 하지만 오른손을 쓸 수 없는 부상 군인이 왔다고 생각해 보라. 유아차나 휠체어를 미는 사람이 왼손잡이인 경우도 마찬가지겠다. 오른손을 다쳐 붕대로 묶인 상태는 왜 없겠는가. 화장실 피토그라피도 안내글자도 따로 안내돼야 맞다.
난 아무것도 망치치 않아
난 왼손잡이야
나나나 나나나
나도 모르게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방과 홍보물을 든 오른손이 깁스 상태 장애라 상상하며 왼손용 화장실을 이용하기로 한다. 모는 게 왼손에 맞게 돼 있다. 한국에선 시엄마 휠체어 밀 때 말곤 장애인화장실에 갈 일이 있던가?시드니에서 나는 어딜 가든 장애인용 또는 유니섹스 화장실 애용자가 됐다. 포용적인 설계를 보는 즐거움이었다. 그랬다. 왼손잡이가 문제가 아니라 왼손잡이를 고려하지 않는 세상이 문제였다. 누군가의 정체성이나 장애가 아니라 그걸 포용하지 못하는 세상이 문제라고 왼손잡이용 장애인 화장실이 말하고 있었다.
우리 집 다섯 식구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면 자주 겪는 일이 생각난다. 아들 둘과 아빠 세 남자보다 딸과 나 두 여자가 늘 화장실만 가면 늦게 돌아오는 거다. 여성 화장실엔 늘 줄이 길었다. 처음엔 우리가 느려서 그런 줄 알았다. 차츰 눈을 뜨고 보니 공간 설계부터가 여성을 고려하지 않은 게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남녀 화장실 면적을 기계적으로 똑 같이 설계할 경우 필연적으로 여성 화장실 변기 수가 부족하고 더 좀게 된다.
포용성 없는 공간 설계는 배제와 차별의 공간이 된다. 여성의 생리적인 특징을 고려해서 공간을 할애하는 게 평등이요 포용이다. 여성 화장실 변기 수를 더 많게 하라는 법이 왜 있겠는가. 안 지켜지는 현실은 그만큼 성평등하지 않다는 말이다. 아기 기저귀 갈 수 있는 화장실은 당연히 성중립이 맞다. 어른 기저귀를 갈 수 있는 화장실, 반려견 데리고 들어가 돌볼 수 있는 화장실, 수도꼭지와 손건조기가 나란히 달린 세면대 등 시드니의 화장실은 포용성의 예술이었다.
안작의 감동이 화장실만에 있는 건 아니었다. 건물 중앙에 있는 중심 조각상을 잊지 못할 것이다. 전사해서 널브러진 남성 군인 한 명을 세 명의 여성이 머리 위에 방패로 떠받치고 있는 조각상. 그 앞에서 나는 발을 뗄 수 없었다. "남성 군인 한 명의 죽음과 여성 세 사람의 희생"을 함께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어머니, 아내 또는 연인, 딸 또는 자매. 전쟁은 결코 남성만의 일이 아니고말고. 영광도 치욕도 인류 전체의 것이고 말고.
잊히고 지워지는 사람 없도록 기억하고 자는 안작의 정신은 공간과 전시물과 작품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포용적인 공간, 포용적인 화장실을 많이 많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