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란 무엇인가: 우연과 관점 사이
삶에서 "운"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보통 우연히 찾아오는 좋은 일이 먼저 생각난다. 길에서 돈을 주웠다거나, 지하철이 딱 맞춰 왔을 때 "운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근 내가 겪은 일들을 되새기며, 운이 단순한 우연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바로 내가 세상과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운(運)이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움직이다", "돌다", "운반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단순히 우연적인 행운(luck)이 아니라, 시간과 상황의 흐름 속에서 뭔가가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운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걸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가는 걸까? 이 질문에서부터 내 이야기가 시작된다.
Luck과 Fortunate의 차이
영어에서 "luck"과 "fortunate"는 비슷해 보이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Luck"은 우연히 얻어 걸리는 순간적인 사건을 뜻한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우산 없이 비를 피할 곳을 찾았을 때 "lucky"라고 느낀다. 반면 "fortunate"는 더 지속적이고 깊은 상태를 가리킨다. "나는 좋은 가족을 둔 게 행운이야"처럼, 삶의 조건이나 환경에 대한 감사와 평가가 담긴다.
몇 년 전 서울 여행을 다녀왔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대방어 회와 소주를 기울이며 사촌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컴공 출신의 공돌이 개발자인 그는 가상화폐 자동거래 시스템을 만들어 연봉의 수십 배를 벌었다고 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욕심과 두려움, 리스크를 짊어진 채 인내심으로 밀어붙여야 했던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난 왜 이렇게 운이 좋은 걸까"라는 깨달음에 눈물이 쏟아졌다.
여기서 운은 "luck"이 아니라 "fortunate"였다. 순간적인 우연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사랑, 그리고 그걸 알아본 내 마음이 행운을 만든 거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운을 알아보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 때문에 더 빛난다"는 생각이 내게 깊이 와닿았다.
운은 관점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운이란 결국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운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우연히 일어나는 일인데, 그걸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같은 사건이라도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라고 불평할 수도 있고, "이걸 겪고도 버틸 수 있으니 다행이다"라고 감사할 수도 있다. 결국 운은 세상과 모든 것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에서 시작된다. 내가 겪은 40억 부도를 떠올려본다. 그 큰 시련 속에서 "이 정도로 업보를 풀어낸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하다." 맞다. 내가 처음부터 강했던 게 아니다. 그 업보를 풀어내며 버티고, 살아남은 과정에서 단단해진 거다. 엄마의 "망해도 밥 세 번 먹으면 된다"는 말씀, 친구가 1억 원을 빌려주고 5년째 묵묵히 기다려준 인내, 여자친구가 돈 없는 나를 일본 여행에 데려가준 마음—이 모든 게 "공짜로 주어진 환경"이었다. 그걸 경외감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운은 단순한 우연을 넘어 행복의 씨앗이 됐다.
내면에서 끌어당긴 현실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혹독한 인내와 시행착오를 견디는 관점 때문에 빛난다"는 생각에 나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운은 내면에서 끌어당긴 나의 현실이다. 생각의 방향을 좋은 쪽으로 하느냐, 나쁜 쪽으로 하느냐가 운의 핵심이다." 이 깨달음이 내게 큰 울림을 줬다. 사촌동생의 성공도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수많은 실패를 "기회"로 본 관점과 인내에서 나왔다.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의 역경이 나를 박살내고 있지만, 이게 업보를 풀어내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인 것도, 긍정적인 생각의 방향이 운을 만든 거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느냐"가 운의 본질이라면, 그건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피어나는 힘이다.
시련은 담금질이다
"지금 내 시련은 나를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담금질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이다.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행복의 씨앗으로 바뀐다." 금속이 불에 달궈지고 물에 식으며 강해지듯, 시련도 나를 더 단단하게 단련시킨다. 40억 부도라는 고난 속에서도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하다"는 말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그 업보를 풀어내는 혹독한 과정을 겪으며, 나는 단련됐다. "사지 멀쩡하고 똑똑하니까 못 해낼 게 없다"는 믿음, "밥 세 번 먹으면 족하다"는 엄마의 단순한 진리가 나를 버티게 했다. 시련을 "망가짐"이 아니라 "단련"으로 본 순간, 그건 더 이상 불운이 아니라 성장의 일부가 됐다. 이 관점 전환은 내가 운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와 직결된다.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느냐, 내면에서 찾느냐의 관점 전환은 삶의 질을 결정짓는다"고 나는 깨달았다. 외부를 탓하면 나는 피해자가 되고, 상황에 끌려다닌다. 하지만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면, 내가 주체가 된다. 이 전환은 고통, 깨달음, 타인의 영향, 자기 성찰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내 경우, 사촌동생의 지혜, 엄마의 사랑, 친구들의 배려가 계기였다. "이런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깨달음에 눈물이 쏟아진 순간, 나는 외부의 고난을 내면의 감사로 바꿨다. "외부 상황은 바꾸기 어렵지만, 관점과 태도는 언제든 바꿀 수 있다. 이게 인생의 가장 큰 자유이자 힘이다." 이 생각이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인생의 본질과 진정한 행운
"인생의 본질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고, 주어진 환경에 고맙게 여기며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이다. 그게 진정한 행운이다." 이 말이 모든 걸 정리해줬다. 우리는 거대한 우주 속 작은 존재일 뿐이다. 그 유한함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하루를 감사히 살면, 그 자체가 행운이 된다.
"밥 세 번 먹으면 족한 인생"이라는 엄마의 말씀이 이 단순한 진리를 완벽히 담고 있다.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밥 먹고 숨 쉬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삶—그게 충분하다. 내가 "운이 좋다"고 느낀 건, 이런 소박한 순간들을 감사히 여기는 마음에서 온 거다.
시간과 지루함의 본질
삶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인내의 과정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비결이라 믿는다.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1시간 기다리는 지루함은 그 뒤의 짜릿함으로 보상받는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워렌 버핏은 "투자는 인내심이 약한 사람의 주머니에서 강한 사람의 주머니로 돈이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시장의 변덕을 참는 자가 승리한다. 사촌동생이 가상화폐로 성공한 것도, 지루함과 불안을 이겨낸 인내의 결과였다. 지루함을 감내하며 장기적인 가치를 믿는 태도는, 삶에서도 운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투자의 심리와 인간의 나약함
"투자의 5할은 심리"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뉴스를 보고 차트를 분석해도, 인간은 "5살 아이가 초콜릿을 보고 정신 못 차리는" 존재다. 시장은 급등주와 과열로 우리를 흔들고, 공포와 탐욕이 결정을 흐린다. 이 본성을 이기지 못하면 아무리 공부해도 소용없다.
시장 세력은 인간의 나약함을 교묘히 파고든다. "지금 안 사면 놓친다"는 속삭임은 악마의 유혹과 같다. 그들이 던지는 초콜릿은 단기 수익의 환상이다. 충동에 넘어가는 순간, 우리는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해도 반복되는 게 우리 인생의 비극이다.
스스로를 이기는 싸움
"투자 성공은 시장이나 세력이 아닌, 스스로를 이기는 싸움이다. 지루함을 받아들이고, 성찰하며, 책임을 지는 사람은 시장의 능멸을 넘어선다." 이 말이 투자의 본질을 꿰뚫는다. 초콜릿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이성을 다스리는 단련된 마음이 필요하다.
투자에서도 이런 싸움이 중요하다. 공포와 탐욕에 흔들리지 않고, 변덕스러운 시장을 참아내며 내 원칙을 지키는 것—그게 진짜 승리다. "내 삶과 투자의 주인이 되는 것—그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의 목표다." 이 결론은 투자뿐 아니라 삶 전체에 적용된다. 시련을 담금질로 바꾸고, 운을 내면에서 끌어당기고, 하루하루를 감사히 사는 것—그 모든 게 "스스로를 이기는 싸움"에서 나온다.
나만의 운을 만들며
이 여정을 통해 운, 시련, 투자, 삶의 본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운은 우연이 아니라 관점이고, 시련은 망가짐이 아니라 담금질이다. 투자는 시장과의 싸움이 아니라 나와의 싸움이며, 인생은 밥 세 번 먹으면 족한 소박한 행운이다. 결국 모든 건 내면에서 시작된다. 외부를 바꿀 순 없어도, 나를 바꿀 수 있는 자유와 힘이 내게 있다. 그걸 깨닫고 하루를 살아가는 게, 나만의 운을 만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