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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화면 너머에서 만난 책과 사람들

- 불확실한 시간 속에서의 이상한 연결

by 어스름빛

고독했던 20대, 화면 너머의 공동체


20대부터 느리게 사는 법을 배웠다. 인터넷의 대중화와 휴대폰의 등장으로 시대는 전속력으로 빠르게 달리고 있는데 나는 천천히 걷고만 있는 느낌이랄까. 동기들이 졸업한 대학 캠퍼스에서 2년을 더 버티고서야 졸업했으니.


동아리까지 그만두고 나니 다시 혼자가 되었다. 오오삼삼 함께 모여 학교에 다니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에 혼자 수업을 듣고 밥을 먹었다. ‘혼밥’이 유행하는 지금의 시선으로는 그게 뭐 대수인가 싶겠지만 당시엔 그런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런 점에선 시대를 앞서나갔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의연한 척했지만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벤야민은 <일방통행로>의 ‘셀프서비스 식당 아우게이아스’에서 “혼자서 하는 식사는 삶을 힘겹고 거칠게 만들어버린다”며 “음식은 더불어 먹어야 제격”(141쪽)이라고 했다.


이 괜찮지 않음을 백석의 <선우사 –함주시초 4>를 되뇌며 버텼다. 흰 밥과 가재미를 혼자 저녁 식사로 먹으며 '흰 밥과 가재미와 나는 서로만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다'고 했던. '가난해도 서럽지도 외롭지도 않으며 누군가가 부럽지도 않다'던 구절을 읽으며 꼭 그렇게 되고 싶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시만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 고독을 지탱해 준 것은 화면 너머에서 만난 사람들이었고, 그들을 잇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책이었다.


헌책에 담긴 온기, 프리챌 헌책방 동호회


프리챌 헌책방 동호회에서 처음 느낀 건, ‘책을 읽는 사람은 이렇게도 많구나’라는 안도감이었다. 온라인 게시판에는 책 이야기로 가득했고, 나도 독후감을 올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책 읽는 사람들>이라는 잡지에서 내 글을 실어도 되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원고료가 없는 대신 잡지를 보내 주겠다고 했다. 큰 욕심 없이 온라인에 올린 글이 활자화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기뻤다.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 보니 인문학적 소양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굳이 헌책을 고르는 이유는 값이 저렴해서만은 아니었다. 절판된 책 중에 좋은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 온라인 서점에서 운영하는 헌책방의 헌책은 새 책과 차이가 별로 없지만 당시의 헌책들은 전 주인들의 흔적이 담긴 경우가 잦았다. 밑줄이나 메모, 혹은 책을 주고받은 이름이 남겨진 경우도 많았다. 그 흔적을 들여다볼 때면 낯선 이의 삶을 은밀히 엿보는 듯했고,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에서 오는 동지애가 생기기도 했다.


이제 헌책방에서 구매하는 책들은 거의 새 책과 다르지 않다. 앞선 독자의 삶이 지워진 책은 물성만 남은 듯해, 씁쓸하게도 느낀다.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동호회의 기억은 16대 대선 결과 방송을 함께 보았던 일이다. 2002년 12월 19일 목요일, 아무도 노무현이 당선될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그날. 우리는 동호회 회장의 집에 모여 환호했다.


‘전작주의자’를 꿈꾸던 대표는 친분이 깊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거리낌 없이 집으로 불러 모았다. 같은 동호회 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했던, 아직 한국 사회의 정이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책을 사랑한다는 공통점만으로도 우리는 함께할 수 있었다.


그날의 환호는 오래 머물지 않았지만, 기쁨을 나눴다는 사실만으로 고독은 한층 가벼워졌다. 이런 만남을 통해 책 읽기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독서의 지평을 넓혀준 알라딘 서재


알라딘 서재는 나를 또 다른 세계로 데려갔다. 블로그가 보편화되기 전부터 책을 매개로 모인 이곳은 숨어 있는 독서 고수들의 집합소였다. 그들의 서평을 읽으며 따라 책을 읽다 보니, 한국 문학 중심이던 독서가 인문·사회·과학 등으로 확장되었다. 지금 돌아봐도 알라딘 서재만큼 즐거웠던 온라인 공간은 없었다.


그곳은 독서 ‘공동체’라는 말 말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때의 만남이 없었다면 나의 독서 이력은 훨씬 단조로웠을 것이다. 가난과 고독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들 덕분이었다. 알라딘 서재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독서를 확장시켰고, 새로운 질문으로 삶을 열어 주었다. 삶이란, 어쩌면 누군가에게 진 빚을 다른 이에게 갚아 나가는 연속으로 이루어진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20대는 가난하고 외로웠다. 하지만 프리챌과 알라딘 서재, 화면 너머에서 만난 책과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책을 통해 이어진 이상한 연결이었다.


최근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공동체 의식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 대 인간의 상호작용이 아닌 매개된 기술 속에서 경험을 쌓아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나처럼 빈곤한 오늘의 청년들은 어떤 방식으로 고독을 견딜까?


그 질문은 곧 내 20대를 다시 불러낸다. 돌아보면, 나 또한 20대의 끝자락에서 고독만이 아니라 불안정한 생활과 돈의 무게에 맞서야 했다.



*다음 화 예고*

매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 다음 화에서는 기간제 교사로서 읽고 가르쳤던 삶을 이야기합니다.

9장. 불안의 안정 속에서 읽고 가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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