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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책으로 배운 정의보다 복잡한 현실

by 어스름빛

시야를 넓힌 독서 – ‘나의 불평등’에서 ‘세상의 불평등’으로


‘왜 엄마는 빨리 돌아가셨어야 했을까.’

불행의 시작이 엄마의 이른 죽음이라 여겼기에, 그 이유를 끝없이 찾아 헤맸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차마 소리 내어 누군가에게 묻지 못했지만, 쭉 마음속에 남아 있는 질문이 되었다.


그 질문의 방향이 달라진 건 고등학교 때였다. 정치․경제 과목의 선생님 덕분이다. 선생님은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같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과제를 내주셨다. 이런 책들은 불평등이 개인의 잘못보다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임을 깨닫게 했다. 책은 내 삶이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피와 희생 위에 세워진 체제임을 알았다. 깨어 있는 시민이 많아야 정의로운 사회가 유지된다는 믿음도 그때 생겼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확신을 안겨 주었다.


이런 생각의 바탕이 대학 시절 읽게 된 잡지 <복음과 상황>으로 이어졌다. 개인이 사회와 맞닿아 있듯, 종교 또한 사회와 분리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학자금 대출을 안고 현실로 나와야 했다. 건대입구역, 봉천역, 성수동 등 서울을 떠돌며 기간제 교사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이상보다 생존이 먼저인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언젠가 안정되면 세상에 빚진 마음을 갚아야겠다는 결심이 남아 있었다.


고통을 통해 배운 실천


30대 중반까지 신앙은 삶의 중심에 있었다. 학자금 대출을 안고 사회로 나왔기에 자취를 하며 힘겹게 갚아나가야 했다. 끝나지 않는 어려움 속에서 고통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이런저런 책들을 찾아 헤매다 필립 얀시의 <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를 읽고 깨달았다. 고통에는 이유가 없음을.


세상은 이미 고통으로 가득한데 ‘왜 나만 고통을 당할까’가 아니라 ‘왜 내가 고통을 당해서는 안 되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오히려 내가 겪은 고통이 오히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가 보여준 ‘상처 입은 치유자’의 삶이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나도 예수를 따라 살기로 결심했다. 마냥 천국을 소망하는 믿음보다는 지금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더 예수다운 삶이라 생각했다. 신으로서의 예수보다 인간으로서의 예수에 더 마음이 갔다. 그를 통해 배운 것은 구원이 아니라 실천이었다.


존 도미니크 크로산 같은 학자들의 ‘역사적 예수’ 연구를 읽으며 신앙이 곧 실천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래서 교파, 교단, 교회(건물)가 없는 어느 교회도 찾아갔다. 사회 변혁을 원한다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런 생각이 나를 거리로 내몰았다.


이상과 현실 사이


평등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당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진보 정당에 가입해 집회에 나가고,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실천의 중심엔 내가 있었다. 불안정한 계약직 교사로 살던 나 역시 차별받는 사람이었으니까.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은 결국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뒤풀이를 할 때면 정호승의 <시인 예수>를 자주 불렀다. “들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용서하는 들녘의 노을 끝, 사람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워하는 아름다움의 깊이 …” 그 구절처럼 나도 사람을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당 내부에도 수많은 분파가 있고 그들끼리의 갈등이 깊음을 아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크게 두 분파로 나뉜 내부 대립은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에서 정점을 맞았다. 한 쪽의 압도적 지지 속에 선출된 후보가 대선에서 참패하자, 이 후보를 반대했던 다른 계열과의 갈등이 폭발했다. 결국 분열로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이상이 아름답다고 해서 현실이 아름다우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세상을 바꾸는 일은 거대한 구호보다 눈앞의 관계를 돌보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변화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자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학교에서도 비슷한 모순을 보였다.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밖에서는 이상이 현실 앞에서 흔들렸고, 안에서는 현실이 이상을 삼켜버렸다. 그 사이에서 길을 잃기 시작했다.




*다음 화 예고*

매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 다음 화에서는 교실이라는 현실 속에서 부딪힌 교육의 이상과 한계를 이야기합니다.

- 11장. 학교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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