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은 이렇게 시작된다.
시인은 가을 하늘의 별을 세면서 사랑하는 존재들의 이름을 부른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이라 떠오른 이 시에 마음을 포개어 시인의 일관성 없는 목록을 흉내 내어 본다.
“임철우, 박완서, 홍명희, 김소진, 신영복, 성석제, 이명원, 김애란, 탕누어, 발터 벤야민.”
이들처럼, 타인이 흉내 낼 수 없는 글을 쓰고 싶었다. 원대한 그 꿈에 짓눌려 쓰겠다, 말겠다를 반복했다.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이라는 ‘정상 가족’을 잠시나마 꿈꾸었지만 실패한 나는 읽고 쓰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쓰려면 읽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읽기는 나를 알게 한 힘이었으니.
어렸을 때부터 감정 기복이 심했고 소리, 공간, 냄새에도 예민했다. 울기도 잘 울었고, 욱하기도 잘했다. 사람들은 의지로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성격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다. 애니어그램이나 MBTI 같은 성격유형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답을 내리긴 힘들었다.
대니얼 네틀의 <성격의 탄생>과 크리스텔 프티콜랭의 <나는 너무 생각이 많아>를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전자는 빅 5라는 성격심리학을 알려주었다. 후자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삼십대 후반이 되고서야 나를 조금 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게 되었다. 이 당시에 읽은 일레인 아론의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들>(이 책을 읽고 쓴 서평을 링크해둔다.) 덕분이다. ‘매우 예민한 사람(HSP)’. 내 성격의 실체였다.
그제야 이해됐다. 왜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 힘든지. 왜 세상과 계속 불화하는지. 이해가 편안한 삶을 보장하진 않지만 환경을 조절할 수는 있게 되었다.
학자를 꿈꾸었던 나는 좋은 글에는 깊이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깊이는 이론이 만든다고 생각했다. 다시 학교 밖 인문학 공동체를 찾아 나섰다.
‘우리 실험자들’에서는 벤야민과 데리다를, ‘수유너머’에서는 탈식민주의와 정치철학을 공부했다. 철학아카데미에서는 스피노자와 현대정치철학, 서울시민대학에서는 플라톤과 마르크스의 강의를 들었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 벤야민을 만나 롤모델이 바뀌었다. 벤야민의 글은 처음엔 너무 난해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지금 이 시대와 맞닿아 있었다. 1940년에 죽은 사람이 쓴 글이 어제 쓴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사유의 독창성은 다독에서 비롯된다는 걸 벤야민을 통해 배웠다.
그러나 인문학 단체에서 다루는 사상가들이 한정되어 있고, 연구자 중심의 세미나는 일상과의 거리가 멀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일상과 연결되는 공부, 삶으로 이어지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결국, 독서모임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회원을 모아 모임을 시작했다. 온라인 카페도 만들고 ‘더딤’이란 이름도 붙였다. 세미나에서처럼 참여자들이 돌아가면서 책의 일부를 맡아 요약 발제하고, 함께 토론했다.
모임을 운영하면서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도 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극심한 소진도 겪게 되었다. 공간 섭외 및 대여, 모임과 카페 관리, 회계, 사회자 역할, 참여자의 느닷없는 불참 등을 모두 관리해야 하는 일이 어려웠다.
운영자만이 겪는 버거움을 모임 참여자들에게 공감받기도 힘들었다. HSP로서의 한계를 넘어서는 에너지 소모였다. 결국 모임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을 겪으며 자책도 많이 했다.
하지만 멈춰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관리할 수 있는 규모로 운영하자는 생각으로 재정비했다. 카페 대신 블로그를 운영하고 유료 모임으로 전환했다.
모임의 이름도 ‘아름’으로 바꾸었다. ‘앎’과 ‘지혜’를 뜻하는 ‘알음’에서 가져온 이름이었다. 천천히 읽는 것뿐만 아니라 앎이 전제되어야 사유와 성찰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모임이 끝나면 블로그에 후기를 꼼꼼하게 작성해서 올렸다. 책은 아무리 자세히 읽었어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기록은 이런 점을 보완한다. 지금까지도 독서모임 아름 블로그에 남아 있는 후기 덕분에 읽을 때마다 그때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혼자서라면 결코 떠올리지 못했을 사유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 닿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독서는 골방에서 혼자 하는 행위가 아니라, 함께 낭독하며 사유를 나누는 공동체적 행위였다. 독서는 나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더 이상 학교로 돌아가기 싫었던, 혹은 갈 수 없었던 나는 독서모임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향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내 포기했다.
성인에게 독서는 직업과는 무관한 ‘취미’의 영역이다.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경험한 바도 그랬다.
평생 가장 오래 한 일인 ‘읽기, 쓰기’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두 가지 방향을 생각했다. 독서에 관한 책 쓰기와 독서논술 공부방이다.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자기 계발의 도구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보고 독서 본연의 의미를 다룬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독서를 다룬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건 독서와 자기 계발을 연결한 책들도 많지만, 독서의 의미를 제대로 다룬 책들도 많다는 것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책 읽는 뇌>, <사유의 거래에 대해서>, <지성만이 무기다>, <어려운 책을 읽는 기술>,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 <공부할 권리>, <공부란 무엇인가> 등이 그 예다.
그렇게 탕누어의 <마르케스의 서재에서>를 만났다. 그는 스스로를 ‘전문 독자’라 부르며 직장인처럼 카페에 출근해서 오전부터 오후까지 책을 읽는 사람이다.
<마르케스의 서재에서>를 읽고 쓴 서평을 첨부해 둔다.
그의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나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느꼈다. 그는 말했다. 지속적으로 독서한 사람은 현실의 불의를 쉽게 알아차리기에, 현실 세계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이미 책 속의 세계라는 또 하나의 세계를 갖고 있는 독자는 실존 세계에 서 있어도 이방인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탕누어도 나처럼 세상과 어딘가 늘 어긋나 있었구나.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구나. 지구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독서에 관한 책 쓰기는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훌륭한 책이 이미 있는데, 굳이 내가 또 써야 할 이유는 없으니.
그 무렵, 공공임대 아파트에 당첨되면서 독서논술 공부방을 열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성인 독서모임을 운영하며 얻은 확신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즐겨 읽었던 사람은 평생 독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 가능성을 실현하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독서지도사, 문학심리상담사, 방과후지도사 등의 민간자격증을 취득했다. 독서논술 프랜차이즈 업체와 계약도 했다.
입시를 위한 독서가 아닌, 읽기와 쓰기를 사랑하는 '평생 독자' 양성을 목표로 공부방 창업을 차곡차곡 준비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이 계획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실제로 공부방을 운영하면서야 깨달았다.
* 다음 화 예고*
- 매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 다음 화에서는 독서논술 교사를 하면서 새롭게 배웠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5장. 마흔의 창업, 읽고 쓰는 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