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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대학원생이 되다: 40대 중반에 다시 학생으로

by 어스름빛

선생님과 학생 사이, 이중생활의 시작

내가 입학한 대학원의 아동문학·독서논술교육 전공은 2022년에 신설되었다. 그해 여름 신설 소식을 접한 뒤, 입학 원서를 접수하는 12월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침내 원서를 내고 확인한 경쟁률은 2.47 대 1. 과연 붙을 수 있을까? 면접을 보고 합격 통보를 받을 때까지 내내 마음을 졸였다. 대학 입시 때도 이토록 간절하진 않았던 것 같다. 12월 말, 합격 글자를 확인하고서야 긴 숨을 내쉬었다.


마흔을 훌쩍 넘겨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사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내 머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건 예사였고, 익숙한 단어가 혀끝에서 맴돌 뿐 떠오르지 않는 순간도 잦았다. 인지 능력이 떨어졌다는 자각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갉아먹었다.


그런 상태로 오리엔테이션에 갔으니 위축되는 건 당연했다. 동기들의 80퍼센트가량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젊음 특유의 생기가 가득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이 지난 나와 동기들의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세월의 간극이 놓여 있었다.


낮에는 아이들에게 국어와 독서논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밤에는 대학원에서 과제와 발표로 평가받는 학생으로 사는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주 2회 있는 야간 수업은 스케줄 조정부터 난관이었다.


대학원 수업 시간은 고정되어 있으니, 결국 내 수업 시간을 옮겨야 했다. 학부모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의 시간을 조율하는 과정은 피곤함의 연속이었다. 국어교육을 전공했기에 수업 내용 자체가 낯설지는 않았지만, 진짜 위기는 내 안에 있었다.


무대 체질에서 발표 불안으로


대학 시절부터 교사로 일할 때까지, 남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교단에 서기 직전까지는 긴장하다가도 막상 앞에 서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동료 교사나 학생들에게 수업을 잘하는 교사라는 평가를 받았던 나였다. 스스로를 ‘무대 체질’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학원에서 발표 수업을 맡아 오랜만에 교단에 선 내가 지나치게 떨기 시작하고 있음을 느꼈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의아스러웠다. 곰곰이 복기해 보았다. 공부방을 운영하며 소규모 수업만 진행했고, 다수의 청중 앞에서 강의한 건 7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게다가 매체 환경도 달라져 있었다. 대학 때는 종이 프린트물로, 학교에서는 교과서나 E-교과서로 수업했다. 하지만 대학원 발표에서는 대체로 PPT를 사용했다. 화면에는 핵심어만 띄우고 나머지는 암기해서 유창하게 설명해야 하는 방식이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암기에 자신이 없어지니 자꾸만 위축되었고, 원래 있던 수전증까지 심해져 손이 눈에 띄게 떨렸다.


첫 발표 이후, 불안을 극복하고 싶었다. 발표를 맡으면 스마트폰으로 녹음하면서 서너 번 이상 리허설을 했다. 내 목소리를 다시 듣고 수정하기를 반복했지만, 발표 불안은 졸업할 때까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글쓰기 또한 만만치 않았다. 과거엔 2, 3일이면 끝낼 분량의 글이 이제는 일주일 넘게 붙잡고 있어야 겨우 완성됐다. 자료를 수집하고 구조를 잡아 한 편의 글로 엮어내는 데 몇 주가 걸리기도 했다. 예전 같지 않은 자신에게 계속해서 실망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등록금 때문이었다.


결혼 후 몇 년간 일을 쉬면서 밥벌이를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대학원 진학도 순전히 내 욕심이었다. 그러니 성적 장학금이라도 받아야 면목이 설 것 같았다.


어릴 땐 연구자의 재능이 있다고 믿었지만, 지금 그런 확신은 없다.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을 줄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그렇게 5학기 동안 세 번의 성적 장학금을 받았다. 1등 두 번, 6등 한 번. 힘들었지만, 그래도 박사과정에 도전해 봐도 된다는 확인처럼 느껴졌다.


AI를 조교로, 논문 완성

4학기에 접어들며 논문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닥쳤다. 처음엔 ‘비판적 문식성’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연구 방법론을 찾기가 어려웠다. 3학기부터는 대학원 공부에 집중하겠다며 공부방마저 폐업한 상태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도 불가능했다. 남은 건 문헌 연구를 통한 내용 분석뿐인데,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논문 관련 강의를 찾아다녔다. 서울대 평생교육원의 질적 연구 기초 수업, 국립중앙도서관의 데이터 분석 강의 등을 들었지만 단발성 특강만으로는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수업을 들으면서 논문도 인공지능으로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마침 3학기 ‘독서와 매체 읽기’ 수업을 통해 알게 된 캣츠랩의 AI 리터러시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다.『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를 저자와 함께 한 달간 읽는 프로그램이었다.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며 알았다. 내가 모르는 사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다방면에서 활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2023년 초, 챗GPT에게 한국에 대해 물었을 때 엉터리 대답만 늘어놓는 것을 보고 “아직 멀었구나” 하며 무시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사이 챗GPT는 무서운 속도로 학습하고 진화해 있었다. 인공지능의 진짜 무서움은 방대한 데이터가 아니라, 그 압도적인 발전 속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논문의 뼈대를 잡고 내용을 요약하는 과정에서 AI를 사용했다. 초안을 입력하고 논리적 허점은 없는지, 방향성은 타당한지 물었다. 유능하고 지치지 않는 조교를 둔 기분이었다.


덕분에 막연했던 생각들을 구체적인 목차로, 타당한 근거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씨름 끝에 <소설의 문화상호텍스트성 분석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완성했고, 2025년 8월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원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중요한 건 학위가 아니라, 내가 여전히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50대를 목전에 둔 지금, 또다시 묻는다. 책을 읽으며 사유를 넓히고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성찰해 간다는 의미를.


남들에게 이상하다는 평가를 일평생 들어왔지만, 그 평가와 무관하게 점점 더 괜찮아지는 나를 위해서. 앞으로도 나다운 이상함을 받아들이며 기꺼이 읽고 쓰며 살아갈 날들을 위하여.



* 다음 화 예고*

-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다음 화에서는 에필로그 ‘이상하지만, 그래서 더 나답게 살아가는 중입니다’가 이어집니다. 예정보다 조금 앞당겨 마무리합니다.

에필로그. 이상하지만, 더 나답게 살아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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