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은 한쪽이 아니라, 한 켠에 있어

by 꿈꾸는 나비

‘내 마음 한 켠’이라는 말을 나는 참 좋아했다. 감정을 조심스레 감싸 안는 듯한 말. 마음의 가장자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그 느낌이 좋았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엔 조심스럽고 그렇다고 모른 척 덮어두기엔 너무 선명한 감정들이 머무는 자리. 꼭꼭 숨겨두고 싶은 내 속마음이 그곳에 앉아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자주 그 말을 꺼내 쓰곤 했다.


글을 쓸 때마다 자연스럽게 ‘한 켠’이 등장했다. 의식하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와 있던 말이었다.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다 보면 어김없이 그 표현에 빨간 줄이 쫙 그어진다. ‘한 켠’은 표준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쪽’이나 ‘한편’으로 바꾸는 게 맞다고 한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두 번째는 고개를 갸웃했고, 세 번째쯤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 감정은 분명 ‘한 켠’에 닿아 있는데 왜 자꾸 그걸 지우라고 하는 걸까. 왜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내 언어가 틀린 말이 되어버리는 걸까. ‘표준어가 아니니 고치세요’라는 안내보다 ‘그 감정은 잘못된 표현이에요’라는 말처럼 들려 괜히 마음이 서운해졌다.


물론 표준어는 중요하다. 모두가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약속이니까, 그 약속을 지키는 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기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는 표준어가 담아내지 못하는 감정이 있다. 정확하지 않아도 마음에 착 감기고 오래 머무는 말이 있다.


시에는 사실을 벗어나도 감정을 품는 ‘시적 허용’이 있듯 산문에도 그 정도쯤은 허락받아도 되지 않을까. 문법의 틀을 살짝 벗어나더라도 그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닿을 수 있다면 말이다.


표준어는 공통의 언어일 수는 있어도 마음의 언어까지 표준화할 순 없다. 마음의 언어는 결국 저마다 따로 있으니까. 표현은 바꿀 수 있어도 그 말이 머물렀던 마음까지 바뀌진 않더라. ‘한 켠’은 내 마음을 가장 잘 담아주던 말이었고 그래서 쉽게 지우기 어려웠다.


그래서 지금도 문장은 고쳐도 그 마음의 결은 그대로 남겨둔다. 내 감정은 한쪽이 아니라, 한 켠에 있다. 그 말은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 나를 안아준다. 맞춤법은 모를지 몰라도 나의 감정은 정확히 그 자리를 알고 있다.


단어는 그저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그릇이고 감정의 집이다.

메릴린 로빈슨, 하우스키핑



단어는 그저 단어가 아니다. 정말 그렇다. 그것은 내가 걸어온 길과 마음의 풍경이 쌓인 자리 누군가의 말 한마디보다 더 오래 가슴에 남는 문장이다.

비워진 듯 보이지만, 사실은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자리처럼. 그 구석에 놓인 낡은 의자처럼. 맞춤법은 모를지 몰라도 나의 감정은 정확히 그 자리를 알고 있다.



나비의 끄적임에 잠시 머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매주 화요일 엄마의 유산, 그 계승의 기록 지난 일요일 글로 연재 되었습니다.


[꿈꾸는 나비 연재]


[월] 07:00

답은 없지만, 길은 있으니까. (산책하며 사유하기)

[화] 07:00

엄마의 유산, 그 계승의 기록(공저작업 뒷이야기)

[수] 07:00

엄마의 마음편지(딸에게 쓰는 편지)

[목] 07:00

사색의 한 줄, 삶의 단상 (필사로 이어지는 글쓰기)

[금] 07:00

나를 사랑해, 그래서 공부해 (나[내면] 탐구)

[토] 07:00

뜬금없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 (일상 에세이)


[magazine 랜덤발행]

모퉁이에 핀 들꽃처럼 (모퉁이 사람 사는 이야기)

2025 월간 나비 (브런치 성장 기록)






매거진의 이전글모퉁이에서 피어나는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