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아닌분은 읽지마세요.

그러나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by 꿈꾸는 정책기획자

지난 8월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의 시행이 곧 다가온다.
일부 기업에서는 “해외에서 한국의 파업이 부정적으로 보인다”거나 “기업 경영환경이 불안정해질 것”이라는 이유로 이 법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사실과도 다르고, 이 법이 무엇을 조정하려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에 가깝다.

노란봉투법은 단순히 노조를 위한 법이 아니다.
나는 이 법을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힘의 불균형을 완화하는 민주주의적 장치라고 본다.
그래서 이 법은 자본가에게 손해를 주려는 것도 아니고, 노동자만을 위한 혜택도 아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회적 안전장치에 가깝다.


부익부·빈익빈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부는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가능한 한 고르게 분포되어야 한다.
이는 도덕적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도 직결된다.
상위 20%가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회는 행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경쟁력도 떨어진다.
불평등이 심한 사회는 갈등 비용이 많고, 장기적으로 성장과 혁신의 동력을 잃는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정말 부가 더 고르게 분포될 수 있을까? 가능하기는 한 걸까?
정답은 분명하다.

그렇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역사를 경험했다.


1차대전 이전, 세상은 ‘자본으로 먹고사는 사회’였다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자본주의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본 중심적 사회였다.
상위 소수가 보유한 자본소득이 전체 소득의 큰 부분을 차지했고, 노동소득은 그 뒤를 힘겹게 쫓았다. 국가는 낮은 세금, 작은 복지, 약한 노동 보호 속에서 시장의 결과를 거의 조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1914년부터 1945년까지,
두 차례 세계대전과 대공황이 자본에 거대한 충격을 가했다.

공장과 토지가 파괴되었고,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고율의 세금, 인플레이션, 파산이 이어졌다.
경제사 연구자들이 말했듯 총력전은 거대한 평준화 장치였다.
자본소득은 줄었고, 상층의 부 집중도는 급격히 낮아졌다.


전후 복지국가의 등장, 그리고 노동소득의 황금기

자본주의의 공백을 메운 것은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었다.

전후 유럽과 선진국들은 다음을 선언했다.


완전고용

누진적 조세

사회보험과 공공의료

강한 노조와 노동권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규제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겠다는 결단이었다.

그 결과 1945년에서 1970년대 초까지,
우리는 노동소득의 몫이 역사적으로 가장 높았던 시기를 경험했다.
자본소득은 억제되었고, 노동의 몫은 확대되었다.
이 시기를 우리는 ‘자본주의의 황금기’ 라고 부른다.

정리하면 이렇다.

노동소득이 자본소득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간 경험은
언제나 정부의 역할이 강화되었을 때 가능했다.
세금·복지·노동정책·공공투자라는 브레이크가 작동해야만
노동의 몫은 자본의 몫에 경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부가 한발 물러서고 시장에 더 많은 자율이 주어진 1980년대 이후,
우리는 다시 노동소득의 몫이 줄어드는 사회로 이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에서 노란봉투법은 어떤 의미인가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을 허용하는 법이 아니다.
파업 과정에서 노동자 개인에게 과도하게 부과되던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제한하는 법이다.
누구도 거대한 기업 구조 앞에서 ‘혼자 책임지는 개인’으로 남지 않게 하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래서 나는 이 법을
자본주의가 만든 불균형을 민주주의가 조정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본다.

물론 무분별하거나 불법적인 노조 행위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노조 역시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권리를 질서 있게 행사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경제 망한다”는 반사적 주장은
근거도 없을 뿐더러 모두가 살아가는 사회를 더 불안정하게 만든다.


노란봉투법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 법만으로 노동자의 권리가 완전히 보장되거나
경제민주화가 즉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향해 가는 긴 여정의 한 걸음이 될 수는 있다.
그리고 역사가 말해주듯,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을 견제하는 일은 언제나 정부와 제도의 역할에서 시작되었다.

오늘도 나는 우리가 그런 길을 선택하길 꿈꾼다.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는 결국 우리가 함께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 사회를 꿈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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