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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Apr 28. 2021

순댓국

따끈한 기억

아들을 기숙사에 데려다 주기 전에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들이 평소에 좋아하는 순댓국이 먹고 싶다고 해서 집 근처에 있는 순댓국집을 찾았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흐뭇한 웃음이 자꾸만 번졌다. 언제 이렇게 의젓하게 컸는지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이내 잘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울컥 올라와 하마터면 눈물이 핑 돌뻔했다.


따끈한 순댓국과 곁들여 먹을 찹쌀순대 한 접시가 나오고 아직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순댓국 뚝배기에 새우젓과 파를 넣고 휘휘 저은 뒤 우선 국물을 한 숟갈 뜨고는 밥을 말았다.


이런저런 일을 이야기하며 맛있게 먹고 있는 아들에게 가끔 맞장구를 치면서 함께 순댓국을 먹는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밥 한술 뜨고 나면 자꾸만 아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릴 때 아버지와 순두부찌개를 먹던 기억이 났다. 어릴 적 아버지는 그저 무섭기만 하고 무뚝뚝하셨는데 언제가 약 부작용으로 잇몸이 퉁퉁 부어올랐을 때 아버지가 치과에 데려가셨다가 집에 오는 길에 식당에 들어가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따뜻하게 남아 있다. 어릴 적 아버지와의 거의 유일한 좋은 기억이다. 그래서 그런지 달걀이 들어간 새빨갛고 얼큰한 순두부찌개는 지금도 내가 참 좋아하는 음식이다.


아들도 내 나이가 되었을 때 그의 자녀와 식사를 하면서 순댓국을 함께 먹던 나를 따뜻하게 기억하고 그 따뜻한 기억이 힘겨울지도 모르는 그의 삶에 아주 조그만 힘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기숙사에서 잠이 들었을 아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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