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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영변호사 Jul 23. 2021

사기(freud)의 심리전

원숭이를 손쉽게 붙잡기 위한 방법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원숭이가 잘 다니는 나무에 바구니를 매달아 놓고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딱딱한 음식을 넣는다. 원숭이가 살금살금 바구니에 다가오더니 바구니에 손을 집어넣는다. 한 움큼 음식물을 움켜쥔 원숭이의 손은 음식물 때문에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는다.


움켜쥔 손에서 음식물을 내려놓으면 되지만, 원숭이는 음식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결코 자기 손을 바구니에서 빼내지 않는다. 끝까지 바구니를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며 바둥대는 원숭이를 손쉽게 포획할 수 있다. 미끼를 던져 원숭이를 붙잡는 손쉬운 방법이다. 원숭이와의 심리전에서 사람이 이긴 것이다.


심리전은 군사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적에게 미끼를 던져 적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작전이다. 전문적으로 심리전은 "목표 대상의 의견, 감정, 태도 및 행동에 영향을 주기 위하여 선전 및 기타의 행위를 계획적으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심리전) [Psychological Warfare] (국방과학기술용어사전).


한미연합군을 지휘하는 사령부에서 군 복무하며 번역 업무를 담당하는 중에 이 용어를 만났다. 전쟁에서는 포격전과 같은 무력 이외에도 심리전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때 배웠다.


이후 군을 제대하며 심리전이란 용어는 내 관심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변호사가 되어 이 군사 용어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는 고객과의 만남이었다. 주로 취급하는 분야가 민사 사건이기 때문에 형사 사건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형사 건의 사기 피해자와 법률 상담을 하게 되었다.


동네에서 알게 된 부동산업을 하는 부부가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어 주겠다고 말하자 유산으로 받은 백억 원에 가까운 재산을 몽땅 사기당한 일가족이 있었다. 그 사기꾼 부부는 사기로 취득한 재산을 가지고 아예 해외로 도피해버렸다. 또 대학 친구가 이자를 주겠다며 처음 몇 번은 꼬박꼬박 이자를 주는 척하다가 결국은 원금을 다 떼어먹고,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돈을 빌려 주는 악순환에 빠진 피해자도 있었다.  


사기 피해자들과 상담하다 보면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사기꾼과의 심리전에서 여지없이 사기꾼의 전략에 말려 들어갔다. 사기는 상대방을 속여서 상대방 스스로 재산을 처분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사기꾼은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상대방의 인식 능력을 지배함으로써 자발적으로 처분하게 하는 것이다. 대단한 능력이다. 마치 군대에서 적에게 심리전을 펼치는 것과 유사하다.


사기꾼이 벌이는 심리전이 얼마나 고단수인지는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법무부에서 오랫동안 범죄자를 교화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의 말은 이러했다.


“교도소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살인범 같지요? 아닙니다. 흉악범보다 무서운 게 사기범이랍니다. 흉악범과 대화하다 보면 그들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두렵지 않아요. 그런데 사기범의 눈을 바라보면 저희도 무서워요. 사기범과 면담을 할 때는 저희 공무원도 혼자 들어가지 않습니다. 2명이 함께 입회하여 상담을 합니다.”  


사기꾼은 허위 사실을 상대방에게 미끼로 던진다. 얼마를 투자하면 몇 배로 돈을 부풀려 주겠다는 것이 대표적인 미끼이다. 보통 정상적인 사람은 이런 미끼를 그냥 무시한다. 사기꾼에게 지배되지 않은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끼의 정체를 제대로 인식할 능력이 있다.


그런데 사기 피해자들은 이 미끼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이유는 피해자에게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탐욕은 미끼의 성격을 제대로 분석할 정신적 능력이 작동하는 것을 막아버린다. 사기꾼이 던진 미끼와 피해자의 탐욕이 맞물려서 사기 피해가 발생한다. 미끼 때문에 바구니의 원숭이처럼 사기꾼과의 심리전에서 패배하는 것이다.


사기 사건은 보통 가까운 친한 관계에서 일어난다. 서로 친하니까 사기범은 피해자의 행동과 반응 방식에 대해 너무나 잘 안다. 감정의 미묘한 흐름까지도 잘 파악한다. 심지어 피해자의 윤리의식, 도덕적 가치관까지 꿰뚫고 있다. 피해자가 덜컥 물 수 있는 미끼가 무엇인지를 잘 안다.


최근에 어느 유명 정치인이 “욕심이 있는 한 사기 피해에는 예외가 없다”라고 말했다. 정확한 분석이다. 검사 출신의 저자가 자신의 저서에서 우리나라를 “사기 공화국”이라고까지 표현한 것도 누구나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기 피해자를 법률적으로 변호하는 변호사도 탐욕이 생기면 언제든지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변호사이건 아니건 탐욕에는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금까지 사기 피해를 당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변호사로서 많은 사기 사건들을 상담했지만 사기 피해자들이 왜 그렇게 가슴 아파하고 억울해하는지 감정적으로는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다른 변호사에게 사기를 당할 뻔한 일이 있었다. 큰 욕심부리지 않고 산다고 했는데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상대방이 변호사였고 업무와 연관된 일이었기 때문에 그를 신뢰했다. 금액이 그리 크지 않았지만 처음 느끼는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물론 억울하기도 했다.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제야 사기를 당한 고객의 심정을 제대로 알 것 같았다. “ 수억 원, 아니 수십억 원의 피해를 당한 사람은 어떻게 마음을 제대로 추스르고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보통 사기 피해자는 사기꾼과의 심리전에서 패배했다는 심리적 허탈감을 느낀다. 사기꾼을 신뢰했는데 배신당했다는 것도 패배 의식의 하나이다. 피해자의 패배의식은 피해자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사기꾼은 양심의 가책 없이 잘 살고 있는데, 사기 피해자들은 그 패배 의식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신적, 육체적인 건강을 상실하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심리전의 엄청난 위력이다.


사기 피해를 어떻게 막아 낼 수 있을까? 사실 누구나 답을 알고 있다. 한마디로 욕심을 버리면 된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같이 쉬운 일인가? 누구는 세상을 등지고 혼자 살면서 무소유를 외치며 욕심을 버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세상 속에서 타인과 교류하며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보통 사람에게는 무소유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사기꾼이 사기행위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탐욕(A)과 피해자가 사기꾼과의 거래를 통해 얻고자 하는 탐욕(B). 두 탐욕이 벌이는 심리전의 대결장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 이것은 결국 인생관, 가치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당하지 않은 부정한 거래는 탐욕과 연관되기 쉽다. 자신의 분수를 넘는 것도 탐욕의 속성이다.  


우리의 삶 속에는 다양한 탐욕이 항상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가장 흔한 재산에 대한 탐욕뿐만 아니라 이성에 대한 탐욕, 학벌에 대한 탐욕, 권력과 명예에 대한 탐욕 등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탐욕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생활의 필요와 탐욕 사이의 경계가 참 애매하다.


성경에는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는 유명한 경구가 있다. 욕심--> 죄--> 사망의 순서로 마치 삼단논법을 활용하여 탐욕이 사망의 상태까지 초래한다는 엄중한 경고를 한다. 그렇지만 누구도 탐욕으로부터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사도 바울(Apostle Paul)은 이렇게 탄식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올무에서 건져내랴! ”


바울이 번민했던 신앙의 세계에서의 심리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탐욕의 적절한 제어가 필수적이라는 점만은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사기꾼과 벌이는 탐욕의 심리전에서 바구니 주위만 겉도는 원숭이의 모습은 적어도 탈피하고 싶을 것이다. 적절한 때에 탐욕의 손을 스르르 놓아 버릴 수 있는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심리전에서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함이다.


탐욕의 바구니를 벗어나면 넓디넓은 푸른 초원 위에 준비된 아름다운 세계가 보일지 모른다. 여기저기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사랑, 희망, 배려, 은혜, 믿음, 희락, 절제, 감사의 각종 열매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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