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에 사고 환희에 팔아라”
아침 조간 경제신문을 보다가 이 문구가 눈에 확 띄었다.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 세계에서는 유명한 격언이라고 했다. 주가가 하락하여 사람들이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주식을 사고, 주가가 상승하여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를 때 주식을 팔고 시장에서 빠져나오라는 취지였다. 투자도 일종의 심리전이기 때문에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심리조절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어느 날 대기업 직장에 다니는 딸이 자기도 주식투자를 하고 싶은데 아빠 생각이 어떤지 조언을 구했다. 직장 동료 누구는 주식투자에서 돈을 벌어 차를 샀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지만 직장의 누군가가 가상화폐에 투자하여 엄청난 돈을 벌고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했다.
요즈음 20~30대 젊은이들이 치솟는 부동산 가격 상승에 아예 미래를 포기하고 가상화폐나 주식 투자로 몰리고 있는 추세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딸에게 무어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젊은이가 벼락부자를 노리고 가상화폐 등에 투자하는 것이 미래에 투자하는 것인지, 반대로 미래를 포기해버린 것인지 애매했다.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 안 되는 초년생에게 “그냥 주식투자 같은 것은 하지 말고 성실하게 꾸준히 직장생활을 하고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해 나가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젊은이들의 고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도움도 전혀 주지 못한다”는 핀잔만 들을 성싶었다.
젊은 딸에게 아빠 세대가 보는 미래관을 그대로 주입시키기에는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우량기업에 장기투자를 하면 어떻겠느냐”라며 기본 중의 기본만 이야기했다.
주식 투자는 기본적으로 내가 좌우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확률에 결과를 맡기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친구들과 함께 민화투 놀이를 했다. 겨울철 추운 날에 야외에서 노는 것이 여의치 않으면 옆집 친구 집에 가서 민화투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것도 결과를 내가 좌우할 수 없는 확률에 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투자라면 투자였다.
내가 최대한 머리를 굴려서 노력을 하긴 하지만, 이미 바닥에 깔린 패, 나와 상대방의 손에 이미 들어온 패가 엇이냐에 따라 대부분 결과가 결정되고, 나의 노력에 의해 결과가 좌우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금융기관에 취업하였다. 회사에서 증권부로 부서 배치를 받았다. 주식과 채권을 담당하는 부서였다. 주로 채권투자 업무를 했다. 채권투자는 주식과는 약간 달랐다. 기본적으로 채권 가격은 시장 이자율에 의해 결정된다. 이자율이 높아지면 채권의 가격이 하락한다. 채권에서 높은 이자율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는 채권의 매입 단가가 낮아야 하기 때문에 서로 반비례하는 것이다. 역도 마찬가지다.
시장 이자율은 시장의 자금상황, 경제동향과 같은 거시경제 지표에 의해 좌우된다. 주식투자와 다르게 신경 써야 할 변수가 이자율 하나이기 때문에 잔머리가 별로 필요 없다. 물론 채권의 수요와 공급도 신경 써야 하지만 채권은 주식처럼 대중화되어 있지 않아서인지 수요 공급은 그렇게 중요한 변수가 아니었다.
직업이 변호사로 바뀌었다. 변호사가 되어서도 주식 투자 문제를 다룰 일이 있었다. 주식 투자에 실패한 사람을 상담하고 법률적으로 소송을 해야 할 사건을 만난 것이다.
어느 날 매우 점잖아 보이는 신사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60대를 갓 넘으신 분이었다. 그는 이미 직장에서 은퇴하였다. 그 나이에 특별히 할 일이 마땅치 않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돈과 그동안 모아 놓은 자금으로 투자를 해서 돈을 불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부동산에 투자를 하였다. 나중에는 주식투자도 시작하였다.
그는 대형 증권사와 거래했다. 증권사에서는 그의 투자금이 거액인 것을 알고 VIP 고객으로 모시면서 특별대우를 해 주었다. 그의 주식투자를 도와줄 증권사의 담당 직원도 배정되었다. 드디어 그는 증권사 직원의 도움을 받아 주식투자를 했다. 주식 투자액이 차츰 늘어가고 급기야는 10억대 중반까지 올라갔다.
처음에 투자 방식은 직접 투자였다. 본인이 주식 종목이나 매매 관련 내용을 직접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모두 증권사에게 위임하는 “포괄위임” 방식으로 바꾸자고 증권사 직원이 권유하여 그에 동의했다. 이제 그는 증권사에 “일임형” 랩 계좌(wrap account)를 개설하여 그 계좌를 통해 주식 투자를 하였다.
일임형 랩 계좌 방식의 투자에서는 투자자를 대신하여 증권사의 전문적인 자산 관리사가 직접 투자주식의 종목과 수량을 모두 결정하였다. 따라서 “일임형” 랩 계좌의 경우에는 단순한 “자문형” 방식보다 증권사의 고객에 대한 주의 의무나 고객 보호의무가 한층 가중된다.
증권사의 자산 관리사는 몇 개 우량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그런데 자산 관리사는 주가가 하락하는데도 손절매를 하는 시기를 놓친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실금액이 매우 커졌다.
고객은 결국 투자 손실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했다. 자산 관리사 개인은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이 별로 없을 것 같았다. 그를 고용한 증권회사 자체를 피고로 삼기로 했다. 민법 756조에 의거하여 직원을 고용한 사용자로서 법인이 투자 손실에 대한 불법행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고객에게도 심각한 약점이 있었다. 그가 처음에 증권사에 방문하여 투자계약을 체결할 때, 자신이 “고수익 고위험”(high risk, high return)을 추구하는 “적극적 투자자”라고 기재하였던 것이다. 당연히 고수익을 추구하는 적극적 투자자는 그에 대한 손해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비중이 커진다.
재판을 진행하였다. 증권사의 자산 관리사를 증인으로 불러 증인 신문을 하였다. 자산 관리사가 분산투자를 제대로 못했고 손절매에 실패했다는 관점으로 증인신문을 하였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산 관리사를 상대로 증거와 사실을 대면서 집중 추궁하였다. 상당히 다툼이 많은 사건이었다.
드디어 재판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증권회사에 대해서 30%의 과실을 인정했다. 주식 투자의 대원칙은 자기 책임의 원칙이다. 이 원칙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 인정받은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객의 큰 투자 손실을 만회하기에는 매우 부족했다. 고객은 재판 결과에 완전히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판결의 내용이 너무 정확하게 잘 설시 되어 있어서 더 이상 불복을 하지 않았다.
이 사건 이외에도 여러 건의 주식투자 실패에 대한 재판을 수행했다. 증권회사 직원이 투자자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후 나에게 재판에서 방어를 잘해달라고 의뢰한 사건도 있었다. 또 어떤 사건은 증권회사 지점장이 투자자에게 손실보장 약정서를 써 주고 주식투자를 권유했다가 나중에 주식이 폭락하자 그 약정서 때문에 완전 파산하여 그것 때문에 나에게 상담을 한 지점장도 있었다.
두 딸에게 이처럼 주식 투자에 실패한 사례들을 시간이 나는 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딸들도 어느 정도는 주식 투자가 위험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본이 노동보다 더 많은 부를 창출하는 상황에서,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와 같은 자산에 아예 투자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어려웠다.
어떤 지인은 해외주식 투자를 전문으로 한다. 해외의 주식개장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에 낮에는 잠을 자고 저녁에 일어나 본격적으로 주식투자 업무를 시작한다. 해외주식 투자자들끼리 클럽을 만들어 주식 스터디를 하며 정보와 지식을 공유한다. 그는 여유 자금으로 주식투자를 통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려고 한다. 이미 주식투자가 그들의 직업이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는 어떻게 보면 미래에 대한 투자 활동을 토대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예측에 기대하며 투자활동에 참여하기 때문에 주식시장의 존재가 가능하다. 이들 투자자가 없다면 기업들에게 자본조달의 기회도 없고 자본주의도 존재할 수 없다.
투자가 국가 경제적으로 필요한 영역이기는 하지만, 개인으로 국한해서 보면 투자(investment)와 투기(speculation)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투자의 단계를 넘어 투기에 빠진 개인이 간혹 일확천금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전 재산을 잃고 파산 상태가 되는 경우도 많다.
금융증권 용어 중에 헷지(Hedge)와 투기(Speculation)라는 단어가 있다. 원래 헷지는“울타리를 치다. 경계를 치다”라는 의미이다. 헷지는 어떤 투자 위험이 존재할 때 그 위험을 제거(헷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래를 말한다. 반면에 투기는 투자 위험이 존재하지 않아 위험을 제거할 필요가 없는데도 오로지 이익만을 얻기 위해 하는 거래를 말한다.
미지의 영역인 미래를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 미래의 위험을 헷지할 것인가, 미래의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투기할 것인가? 과연 돈으로 미래를 붙잡을 수 있는 것인가? 참 쉽지 않은 문제다.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미래를 상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는 확률의 세계에 무작정 나를 내맡기고 싶지 않다는 점이다. 내 삶은 단순한 확률 게임이 아니다. 내 마음속에 소중하게 간직한 미래에 대한 나의 꿈, 나의 청사진이소중하다. 지금까지 살아 온 것처럼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과 꿈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뚜벅 뚜벅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 한참 직장 생활하며 고생하고 있는 두 딸에게 조용히 말해 주고 싶다.
“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데 돈이 필요할 수는 있으나 돈으로 꿈을 살 수 없고 미래를 살 수 없다. 삶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의 문제이다. 미래를 돈으로 붙잡으려고 하는 것은 헷지가 아닌 투기일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