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공포와 보이지 않는 진실
여러 매체를 통해서 하루가 멀다고 중국발 전기차 화재 소식이 들려온다. 주차장에서 연기가 솟구치고, 도로 위에서 화염에 휩싸인 차들을 보며 사람들은 혀를 찬다. "역시 중국산은 안 돼. 저렇게 불이 많이 나는데 어떻게 타나?"
실제로 통계 수치만 놓고 보면 이 공포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처럼 보인다. 2023년 기준, 한국 소방청에 보고된 전기차 화재는 72건이었다. 반면 중국은 어떨까? 중국 승용차시장정보연석회(CPCA) 등의 자료를 추산해 보면 연간 화재 건수는 약 3,000건에 육박한다. 이 통계로 이해하 보면, 한국에서 1년 동안 날 불이 중국에서는 한 달 만에 다 난다. 한국보다 무려 40배 이상 더 많이 불타고 있는 것이다. 이 끔찍한 절댓값의 차이를 보면 중국 전기차는 달리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의 저서 《신의 본성에 관하여(De Natura Deorum)》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신심 깊은 한 친구가 디아고라스를 신전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신전에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선원들이 감사의 의미로 바친 '봉헌물(그림)'이 가득 걸려 있었습니다. 친구는 득의양양하게 디아고라스에게 물었습니다.
"이 수많은 그림을 보게. 폭풍 속에서 신께 기도하여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네. 이래도 자네는 신이 인간의 운명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할 텐가?"
수많은 생존자의 증언(그림)은 신의 가호를 증명하는 완벽한 증거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림들을 쭉 둘러본 디아고라스는 차분하게 되물었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기도했지만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그림은 어디에 있는가?"
이 일화는 나심 탈레브가 그의 저서 《블랙 스완》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는 눈앞에 드러난 결과물에는 과도하게 집중하지만, 드러나지 않은(침묵하는) 데이터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는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이제 키케로의 질문을 빌려, 우리도 미디어를 향해 되물어야 한다.
"그렇군. 하지만 불타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도착한 수천만 대의 전기차는 어디에 있는가?"
미디어라는 거대한 신전에는 '화재가 발생한 3,000대의 차(보이는 증거)' 중에서도 가장 자극적인 영상만 업로드된다. 우리는 그 영상들을 보며 중국 전기차 전체가 위험하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뉴스에 나오지 않는, 오늘 하루 아무 문제 없이 도로를 달린 2,000만 대의 자동차(침묵하는 증거)들은 우리의 판단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이 '침묵하는 증거'들을 통계의 분모로 소환하는 순간, 우리가 느꼈던 공포는 순식간에 반전된다.
다시 2023년의 데이터로 돌아가 보자. 한국에는 약 54만 대의 전기차가 있고, 중국에는 그보다 40배나 많은 약 2,041만 대의 전기차(신에너지차)가 있다. 이 거대한 모수를 포함하여 '1만 대당 화재 발생 비율'을 계산하면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난다.
우리의 직관과는 정반대로, 비율상으로는 중국의 화재 발생률이 오히려 더 낮게 나타난다. 중국에서 3,000건이나 불이 난 이유는 차가 엉망이라서가 아니라, 단지 시장이 한국보다 40배나 더 거대하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 규모를 중국만큼 늘려놓으면, 산술적으로 한국에서도 1년에 2,800건 이상의 화재가 발생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중국 전기차는 불이 많이 난다"는 말은 반쪽짜리 진실에 불과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국에는 전기차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불이 나는 차의 숫자도 당연히 많은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시끄러운 소수(사고 차량)'에만 반응하고, 보이지 않는 '침묵하는 다수(정상 차량)'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착각한다. 화재 건수가 많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그들이 전기차 대중화라는 타석에 많이 들어섰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통계의 오해를 걷어내고 나면, 우리는 더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고는 무조건 나쁜 것이며, 우리는 실패 확률을 '0'으로 만들기 위해 도전을 멈춰야 하는가?
가까운 예로 2016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 배터리 발화 사건을 떠올려 보자. 전량 리콜과 단종이라는 초유의 사태였고,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자. 이 사고는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의 패권자로서, 더 얇은 두께에 더 큰 용량과 고성능을 담으려 기술의 한계선까지 밀어붙였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만약 삼성이 적당히 팔리는 저가형 폰이나 만들며 현상 유지에만 급급했다면, 이런 고도화된 기술적 결함을 겪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사고는 그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한계를 시험하는 위치'에 있었음을 방증하는 사건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삼성은 도전을 멈추는 대신 뼈를 깎는 분석을 통해 '8포인트 배터리 안전성 검사'라는 새로운 표준을 만들었고, 다시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냈다. 그들에게 노트7 사태는 몰락의 신호탄이 아니라, 더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치러야 했던 거대하고 값비싼 수업료였던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회비용'의 관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중국이 겪고 있는 3,000건의 화재는 단순한 재앙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혁신을 위해 그들이 먼저 지불하고 있는 혹독한 '수업료'이다.
기술의 역사는 언제나 실패의 역사와 궤를 같이했다. 비행기가 오늘날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 된 것은 과거의 수많은 추락 사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기체를 개량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3,000건의 화재 사고는 역설적으로 3,000개의 '실패 데이터'가 되어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을 고도화하고, 열 폭주 제어 기술을 발전시키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지금 중국은 거대한 화염과 시행착오를 연료 삼아 미래로 질주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의 '눈에 보이는 실패'를 비웃으며 안주하는 이 순간에도, 그들은 그 잿더미 위에서 더 단단하고 안전한 미래의 표준을 묵묵히 쌓아 올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장 무서운 '침묵하는 증거'는 도로 위를 달리는 2,000만 대의 자동차가 아니라, 그들이 실패를 통해 조용히 장악해 나갈 미래의 전기차 시장점유율일지도 모른다.
역사는 언제나 증명해 왔다. 위대한 성장의 기회는 안전한 항구에 머무는 자가 아니라, 거친 파도와 불길 속으로 기꺼이 뛰어든 자들의 몫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