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모는 외탁을 했다. 가늘고 옅은 색의 반곱슬 머리칼과 살이 들여다 보일만큼 가지런한 눈썹이 특히 그렇다. 어릴 땐 지금과 달리 친척들간 왕래가 있었다. 명절에 모인 아버지의 형제들과 그 아들 딸들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하나같이 굵고 진한 직모의 머리칼과 드글드글한 임꺽정 눈썹을 하고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남녀노소들. 후에 내가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신세계'를 읽고 단 하나의 유전자로 수백명의 복제인간을 만들어내는 디스토피아의 풍경에서 어린 시절 친척 모임을 떠올린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니다. 유독 넓은 이마 외에 그들과 공유하는게 없었던 나는 마침내 닭으로 밝혀진 미운오리새끼처럼 머쓱했다.
나의 천성은 친탁을 했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는 애기말도 잘 못하던 외아들이 이미 성질난다고 손에 쥔 물건을 집어던지는 습관을 가진 것을 확인하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그 세대 평균치를 웃도는 체벌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예의 행위 만큼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난 성년을 고작 몇 년 앞두고도 뭐 집어던졌다가 걸리면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손에 잡히는 걸 집어던졌다. 다 큰 어른이자 평생 육체를 사용해 밥을 벌어먹은 사람답게 기운도 엄청나서 사람 키만한 화분이나 장롱, 한 번은 날 집어던진 적도 있었다. 그가 투척 외에 행했던 막대한 행패와 그것이 이끈 운명을 굳이 되짚어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닥 유쾌한 내용이 아닐 뿐더러, 그 상세한 내용은 졸저 '나는 작가입니다, 밥벌이는 따로 하지만'에 충분히 설명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난 나의 성격적 결함을 천성이란 이름으로 탓하기엔 부끄러운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때론 내 안의 아버지의 특성을 확인하고 섬뜩한 순간들이 있다. 어머니가 일시불로 쏟아부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체벌로 간신히 봉인해둔 투척습관 외에도, 때때로 빠져드는 우울과 무기력, 남탓, 혼잣말, 음주습관... 기타등등, 기타등등.
내가 아버지와 닮았음을 확인하며 진저리치던 시기 또한 이미 지나버렸다. 이제 나는 긍정한다. 내 삶의 시작은 아버지로 인한 것이었고, 그를 닮을 수밖에 없음을 말이다. 다만 아버지의 인생은 그의 하마르티아가 도달할 수 있는 최악의 가능성을 구현했을 뿐이다. 같은 하마르티아를 가지고 있는 나는, 적어도 그 최악의 가능성만은 피할 수 있지 않은가.
관련성을 확신할 수 없는데도,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릴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그 시기 많은 날들이 그랬듯 그 날도 난 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가 재떨이를 비롯한 손에 잡히는 것을 닥치는데로 투척하고 난 그걸 피하거나 막아내며 거리를 좁혀 드잡이질에 돌입하기 직전, 네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언성을 높이는 중이었다.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고 명분을 뚜렷이 하는 건 고대의 전쟁이나 21세기 어느 부자 간의 갈등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버지는 본격적인 전투가 임박했다는 신호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 이 쌍놈의 새끼!
- 내가 쌍놈의 새끼면, 아부지는요?
- 뭐 이 개새끼야?
- 내가 개새끼면, 아부지는요?!
아버지는 크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을 머뭇거리던 그는 다시금 뜨거운 분노를 끌어올리며 고쳐 외쳤다.
- 이... 쌍놈!
그리고 나는 방금 전까지 날 지배하던 분노도 잊고 치밀어오르는 웃음을 다스리기 위해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