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가끔 이렇게 추우면 길고양이들을 본다. 고양이의 삶은 인간에 비해 너무도 짧아서 이래도 되나 싶다. 혹독하게 추운 날 조금이라도 길고양이들이 추위를 피할 곳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면 분명 고양이의 삶은 몹시도 짧아서 안타깝군,라고 생각하는 찰나 내 뒤에서 어떤 누군가가 ‘그것이 묘생이지 다 그런 것 아니야? 어쩔 수 없지’라며 가곡을 부르고, 또 다른 어떤 이는 ‘그건 걱정하지 마, 고양이는 인간처럼 뾰루지가 나서 걱정하고, 은행일 때문에 걱정하고, 진급이 안 되어서 걱정하지는 않기 때문에 잠자는 것과 먹는 것만 걱정해’라며 발라드를 부른다. 그러다 보면 가곡의 소리는 조금씩 줄어들고 발라드가 강세를 보이며 앞으로 한 걸음 나온다.
고양이들을 지나면 이삼일에 한 번 들러 빵을 구입하는 오래된 빵집이 나온다. 한 사십 년은 된 빵집이다. 주위의 건물들도 오래되어서 그런지 빵집이 크게 낙오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2021년에 40년 전의 공백 속으로 잠시 들어간다. 그 공백에는 질감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종의 부유감을 느낀다. 나는 작은 부표가 되어 유동한다. 그 느낌이 실려 다닌다는 기분으로 나쁘지 않다.
2021년과 사십 년 전 그 사이에 멋지게 지어진 건물이 있지만 건물로서 기능을 잃어버리고 ‘실패’라는 낙인 하에 비참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 사이, 그 중간 즈음에 오래된 빵집은 끼여있는 것처럼 존재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빵집은 주위 환경에 억지로 맞춘 듯한 분위기지만 언뜻 지나치며 보면 균형의 부조화가 눈에 띌 정도는 아니다. 오래된 것은 확실하게 멋진 일이지만 그만큼 분명하게 낡았다.
빵집으로 들어가면 아주 작은 공간이 나온다. 빵집 정문, 천장과 벽면 사이에 티브이가 이질감 돋게 설치되어 있지만 소리는 죽어있다. 빵 집 안에는 기분 좋은 침묵이 빵에 가득 스며있다. 저녁에는 선반 위는 거의 비어 있고 조금 인기가 떨어지는 빵들이 남아서 주인을 애타게 기다린다. 저녁 시간까지 주인을 기다리는 빵들은 좀 애처로워 보인다. 모든 인간들이 열심히 오후 내내 빵을 집어 가다가 ‘아, 너무 지쳤네. 이제 끝이야’라는 식으로 발길을 끊어 버린 후 남은 빵들은 조급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어쩌면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세상 빛을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기 있는 빵 중에는 소라빵이 있다. 식빵과 소라빵은 금방 떨어지기 때문에 그날 빵을 사는 날이면 조깅을 하면서 쉬지 않고 달려가야 집어 올 수 있다. 들어가면 아주 작은 공간 그 안쪽의 제빵실에서 늘 비슷한 톤과 늘 비슷한 옷차림과 늘 비슷한 표정으로 나이 많은 주인이 나와서 반긴다. 오늘도 운동 중이신가, 같은 말을 건넨다. 아휴 이렇게나 추운 날에도 대단하시네. 다리의 움직임은 계절과 나이에 관계없이 열심히 움직여줘야 해. 라며 가끔씩 이렇게 철학적인 발언을 한다. 하지만 거기에 일일이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할머니에 가까운 주인은 언제나 비슷한 모습이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모습이며 지금까지 그런 모습으로 지내온 것 같다. 안경을 썼고 느릿하지만 목소리 그 어디에도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나 요만큼의 증오도 묻어있지 않다. 저 안쪽의 제빵실에서 늘 빵을 만드는 주인아저씨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 작은 빵집에서 빵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선반 위에 올려놓으려면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다. 매일 매시간 영차영차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집은 자주 가는 빵 집 두 군데 중 한 군데이다. 한 군데는 규모가 큰 지역 빵집이고 한 군데는 이곳, 아주 작은 빵집이다. 오래전 역이 있던 자리라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역은 1935년부터 1992년까지 자리를 지키다 다른 곳으로 옮겼다. 도심지 중심부에 역사가 있어서 기차가 지나갈 때는 영화에서처럼 딩동 딩동 하며 건널목의 팬스가 내려오고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건넜다.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한다. 화이트 노이즈다. 터득 터득 거리는 기차소리는 집중하는데 도움도 되고, 잠이 오히려 잘 오기도 한다. 여름의 매미소리와 비슷하다. 매미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이유는 매미 소리 이외의 소음이 많아서이다. 한적한 시골의 툇마루에 누워 맴맴 거리는 매미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다. 매미소리가 없는, 여름의 침묵이 오히려 불안하게 한다. 기차소리를 일부러 들으러 기차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한 적이 있었다. 이제 화이트 노이즈의 기차소리는 여기, 머릿속에서만 가능하다.
여하튼 도심을 관통하는 기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교통, 안전, 공해 등의 문제로 도시계획하에 옮겨갔다. 기차에서 내려 광장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북적였던 때가 있었다. 지상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그런 기억의 모습을 지니는 곳들이 존재한다. 역전을 지키던 대부분의 것들이 사라졌지만 빵집은 아직도 있다. 오래된 빵집의 소라빵은 아주 맛있다. 달지 않은데 시원한 단맛이 난다. 이렇게 말을 하면 다들 못 알아듣지만 소라빵을 먹어보게 하면 무슨 맛을 말하는 건지 대번에 안다.
넷플릭스 영화 '콜'에서 인간은 참 사소한 것에서 큰 무엇인가를 얻거나 느낀다고 했는데, 별거 없는 소라빵인데 이걸 들고 와서 먹고 있으면 짧지만 순간의 행복감을 느낀다. 그리고 순간의 기억은 오래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