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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25. 2021

겨울에 조깅을 하다 보면

달리기 에세이

겨울에 조깅을 하는 건 여름에 비해, 다른 계절에 비해 힘들다. 특히 지난주처럼 영하로 떨어져 버린 밤에는 정말 조깅을 하기까지 가지 말아야 할 이유 서른여섯 가지가 따라붙는다. 검은 내가 하얀 나에게 조깅을 하지 않기를 적극 권장한다. 두꺼운 옷 때문에 조깅을 하기 위해 준비운동을 하는 것조차 만만찮다. 지난주에는 레깅스를 두 장을 입었더니 다리를 굽히는 것도 힘들었다. 아아 오늘은 하루 쉬고 내일 뛰지 뭐, 같은 생각이 아무튼 조깅하기 직전까지 따라붙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물리치고 일단 달리게 되면 조깅 후 10분 정도가 지나면 등에 땀이 흐른다. 아무리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에도 어김없이 땀이 흘러 옷이 축축해진다. 매일 그 간극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한 시간 정도 달리게 된다. 매년 겨울, 그것도 아주 추운 날의 겨울에 느끼는 거지만 몹시 추운 날에는 조깅코스에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는 경우가 있다. 굉장히 추운 날에는 강변에 서식하는 길고양이조차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런 날이라도 일단 달리고 10분이 지나면 윗도리는 땀으로 촉촉해지다가 축축해지는 수순을 밟는다.


겨울의 조깅은 매일이 다르다. 변수가 있어서 어떤 날은 바람이 심해서 눈이 차갑기도 하고, 지난주처럼 영하의 날에는 마스크 위로 입김이 올라와 눈썹에 붙어 얼음이 되기 직전까지 간다. 그건 정말 기묘한 체험이다. 무엇보다 늘 비슷한 곳의, 비슷한 거리를 달리는데 보이는 풍경은 언제나 조금씩 다르다. 내 내면의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달라지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이 듦과 시간의 운동 같은 것들을 포함해서 내 내부가 느끼고 지방을 제외하고 듣고 느끼는 것이 쌓이는 것이다.

 

보통 근력운동을 한 다음에 조깅을 하는 경우가 있고 조깅을 한 사십 분 정도 한 다음 근력운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근력운동을 하고 나면 체력이 거의 방전이라 빠른 걸음 정도의 수준으로 달리게 된다. 보통 근력운동은 한 사십 분 정도 한다. 그러고 나면 다리가 거의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지나갔기에 조깅을 하는데 힘이 다 빠진다. 그렇지만 그 고통이 주는 묘한 성취감이 있다. 조깅을 거의 매일 한 덕분에 어떻든 지금 내 친구들보다 허벅지는 탄탄하고 굵다. 


불과 몇 년 정도 지났지만 예전에는 추운 겨울의 날에 조깅을 하면 대체로 사람들이 왜 이렇게 추운 날 조깅 따위를 하지요?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 같다. 자주 가는 빵집의 주인도, 워셔액을 사러 가는 생활용품점 주인도, 나를 볼 때마다 "오늘도 열심히 시네"같은 말을 지치지 않고 한다. 그러면 나는 "하루 24시간 중에 고작 한 시간 정돈 데요 뭐"라고 하고 휙 간다. 겨울에 조깅코스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건 몇 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가 도래한 이후 집에만 있던 사람들이 여름이건 가을이던 겨울에도 저녁이 되면 나와서 걷거나 조깅을 한다. 그 수가 코로나 이전보다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래서 작년 한 해 동안은 명절에 조깅을 해도, 추운 날에 조깅을 해도 예전 같은 그런 눈빛은 사라졌다. 심지어 강변의 길고양이들도 '그래, 열심히 한 번 해봐'라고 말을 하는 것 같다.


조깅을 하면 맞은편에서 아주머니들로 이루어진 조깅 단체와 스치고 지나갈 때가 있다. 아주머니 조깅 단체는 일주일 내내 마주치지 않고 수요일과 그 외 또 다른 날에 마주친다. 아주머니 조깅 단체와 그동안 마주치며 느낀 특징들이 있다. 일단은 나처럼 혼자서 달리지 않는다. 아주머니'들’에서 처럼 그들은 늘 떼로 달린다. 아주머니 조깅 단체는 일주일 내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수요일이나 그 외의 하루 중에 달리는 거 같은데 동호회를 만들어 한 번에 모여서 달리다 보니 매일매일 같은 시간을 맞출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리하여 수요일만은 모두가 시간을 빼야 해, 라며 수요일에는 모여서 조깅을 한다. 아주 멀리서 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달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오면 아 저 사람들은 아주머니 조깅 단체군. 하게 된다.


아주머니 조깅 단체의 특징은 복장에 무척 신경을 썼다. 조깅을 하는 것에 멋지게 갖춰 입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복장에 집착을 보이는 것처럼 달리는 복장에 돈을 들인 표가 난다. 메이커에 조깅화 역시 좋다. 어떤 아주머니들은 복장 위에 마라토너처럼 숫자가 적힌 번호판을 달기도 했다. 그게 묘하게 복장과 어울려 프로의 냄새가 난다. 아주머니들의 조깅 복장에 비하면 나는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다.


다음의 특징으로는 아주머니들은 달리면서도 수다를 떤다. 나는 이점에서 무척 놀랐고 경외심마저 들었다. 나는 고작 한 시간 정도 달리는 동안 힘이 들어 숨을 내뱉는 것조차 어려워하는데 아주머니들은 쉬지도 않고 달리는데 역시 쉬지도 않고 수다를 떤다. 잠깐 스치면서 듣는 수다의 내용은 썩 고급스럽진 않으나 그렇다고 격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친정에 그제 갔었는데 친정에 글쎄 그게 있었다니까까까까까까 하며 말소리는 점점 멀어진다. 옆에서 그래? 참말이가? 가가가가가 하며 대화가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에도 아주머니 조깅 단체가 스치면 아주머니들은 늘, 언제나 조깅을 하면서 수다를 떤다. 내가 달리기를 하면서 입을 한 일자로 꾹 다물고 무표정으로 달리는 것에 비하면 모두가 생글생글 밝은 표정으로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조깅을 하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머니들은 몹시 가볍게 달린다. 전혀 몸에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새가 하늘을 날듯, 100미터 육상 선수가 천천히 1킬로미터의 트랙을 도는 것처럼 몸이 가볍다. 겨울이지만 나처럼 두꺼운 옷도 아니다. 모두가 몸애 달라붙는 스판 소재의 운동복차림이며 메이커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운동복을 입고 재잘재잘 호호하며 가볍게 물수제비처럼 조깅을 한다. 매일 달리지도 않고 이렇게 추운 겨울에 두꺼운 패딩을 입은 것도 아니고, 혼자서는 재잘재잘 거리며 달릴 수 없잖아, 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그들은 떼로 단체가 가볍게 열을 맞춰 달린다. 조깅은 고독한 운동이야, 라는 나의 굳건한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도 오래되었다. 정말 아주머니 조깅 단체는 신기해서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을 잔뜩 가지고 있다. 


아주머니들은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애들을 키우다 보니 극도의 고독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애기 아빠 밥 먹여서 회사에 보내고 아이들 차례로 학교로 회사로 보내고 나니 나는 이미 늙어 버린 것만 같다. 손도 주글주글하고 이제 거울과 마주하는 것이 싫기만 하다. 그러다가 조깅을 하게 되었고 달리면서 고독과 맞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달리는 건 힘들지만 조깅은 나를 알아가는 운동으로 재미있기만 하다. 모임에 나가면 나와 비숫한 사람들이 몸을 풀고 있고 다 같이 조깅을 하다 보면 세상일은 잊게 된다. 아주머니들은 이런 고충을 이겨내고 오늘도 가볍게 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주칠 때마다 비록 인사는 못 했지만 파이팅입니다. 오늘도!


밑의 사진들은 매일 비슷한 곳을 달리면서 담은 사진이다. 비슷한 곳이지만 어둡기나 밝기, 그리고 바람의 흐름 따위가 매일 다르다. 인간은 눈, 코, 입 전부 숫자가 같지만 다 다르게 생긴 것과 흡사하다. 달리면서 피부로 느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밑의 사진은 윗 지방에는 폭설이 내렸던 날, 바다가 있는 내가 사는 도시는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개울이나 강이 얼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돌을 한 번 던졌다. 저렇게 얼어 있으면 돌로 꼭 깨고 싶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윗 사진의 그림자를 보면 알겠지만 밑의 사진처럼 이런 복장으로 겨울에는 달린다. 달리기 전까지 몹시 힘겹지만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또 어떻게든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그때는 등이 축축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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