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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9. 2021

런던 팝에서 25

단편 소설



25.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술에 취해갔다. 소주는 기가 막힐 정도로 차가워서 멧돼지 고기와 마늘장아찌를 곁들여 같이 마시니 꼭 세리주 같았다. 우리는 뜨거운 감자밥과 고기를 상추쌈에 싸서 소주를 계속 마셨다. 소주는 몸을 문어다리처럼 만들었다. 조그만 밥상을 중간에 두고 우리는 여자애들처럼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다. 치론이는 늘 내 옆에 앉아서 소주를 마셨고 아이들의 이야기에 고른 치아를 드러내고 잘 웃어주었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상혁이 친구가 치론이의 말투를 듣고 어쩐지 여자 같다는 말을 했고 늘 듣는 말이라고 치론이는 말했다.


 치론이는 그날 술을 많이 마셨다. 살이 찐다며 늘 조금밖에 먹지 않았고 그날 역시 배가 고팠음에도 고기를 일절 먹지 않고 감자 조금과 술만 들이켰다. 허리가 27인치였는데 저리다가 허리가 소멸될 것 같았다. 내 옆에 붙어서 소주를 마시던 치론이는 소주가 들어 갈수록 온기가 달아올라 따뜻한 돌 같았다. 무릎을 양팔로 감싸고 한쪽 팔이 나의 팔에 달아 있었는데 조금 지나자 팔에 땀이 배었다. 치론이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잘 웃었지만 웃지 않을 때는 눈을 방바닥으로 떨어트렸다. 그 모습에서 차가운 어둠이 보였다. 역시 순간적이었다. 방안에는 허용되는 언어와 그렇지 못한 언어가 마구 뒤섞였고 한동안 방 안의 공기를 휘저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 소주잔이 부딪히는 소리.


 방 안을 비추던 밝지 않았던 형광등의 빛이 섬광처럼 부풀어 오를 때 우리는 누구 먼저랄 것 없이 방바닥에 곯아떨어졌다. 몸은 깊은 물속에 있는 것처럼 좀체 움직이지 못했고 기기묘묘한 무게가 몸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술이 뇌의 끝을 잠식하는 순간 쓰러져 잠이 들어서 이불을 펴고 잠들었는지 어쨌는지 기억도 없었다. 촌에서 나고 자란 상혁이의 친구도 밥상을 겨우 물리고 방구석에 그대로 엎어져 잠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 몸을 포개며 잠이 들어 버렸다.


 달빛도 들어오지 않는 방은 아이들이 내뱉는 숨 냄새와 숨소리에 누군가 들어온다면 미간을 좁히며 나갈지도 몰랐다. 잠이 들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꿈도 꾸지 않았고 그저 깊은 잠이라고 하는 세계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니 세계가 끝이 나려고 했다.      


 입안이 꺼끌꺼끌하여 눈을 떴을 때 아이들이 내뱉는 숨소리가 거칠게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 나의 바지를 벗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치론이었다. 그때 화들짝 놀라며, 너 이게 무슨 짓이야? 하며 치론이의 머리를 치웠다면 그 저 술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쯤으로 넘겨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몸을 살짝 움직여 바지를 벗기는 것을 피했다. 놀라게 만들면 다른 아이들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치론이에게도 나에게도 둘 다 어색한 무엇인가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큰 소리로 말했다면 집으로 가는 동안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우리를 억누를 것이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몸은 미치도록 힘들었지만 정신은 말짱해졌다. 치론이는 내가 입고 있는 청바지를 벗기려고 필사적이 되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손을 움직여 오로지 목적하는 바를 얻기 위한, 주위의 무엇에게도 방해를 주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려는 의도로 인해 치론이는 결사적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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