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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8. 2022

바람이 불어오면 2

소설


2.


 어느 날부터 선배에게 이끌려 따뜻한 밥이 앞에 있고 적어도 5첩이나 되는 반상이 차려진 곳에 나는 앉아 있었다. 선배는 큰 덩치와 걸걸한 목소리가 건축과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건축이라는 것 자체에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음식 솜씨도 좋아서 요리도 뚝딱 만들어냈다. 생선도 굽고, 고기도 잘 조리고, 깻잎으로 김치도 만들어서 찬으로 내놓으면 자취생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깻잎 한 장으로 술안주를 기가 막히게 만들어 먹을 수 방법은 자취촌에서 대대로 대물림되고 있었다. 선배는 콩나물국이나 미역국 같은 간단한 국을 늘 밥상 위에 내놓았다. 간장만으로 간을 한 것 같은데 그 맛은 밥상에 모여든 학생들에게는 뷔페식당에서 먹는 음식처럼 보였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의상과 지희 누나는 쪼그리고 앉아서 담근 깻잎 김치를 엄지와 검지로 야무지게 집어서 먹고는 손가락을 쪽쪽 빨고는 만족하는 얼굴을 했다. 특히 홍합을 넣어서 만든 미역국은 아주 맛있었다. 홍합이 들어간 미역국이 밥상 위에 있을 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밥을 두 공기가 먹었다. 그러면 선배는 잘 먹는다며 걸쭉한 목소리로 말하고 두툼한 손으로 나의 등을 쳤다. 밥상에 모여든 아이들은 내 미역국 그릇에 자신들의 홍합을 들어주었다.


 “넌 좀 많이 먹어야 한다고, 난 널 처음 본 순간부터 그렇게 생각이 들었지. 비행기를 처음 보면 타봐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지. 너와는 가깝게 지내야 한다는 것도 말이야.”


 나는 선배에게 도대체 왜냐고 물었고 선배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누가 봐도 기분이 좋을만한 큰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는 내가 읽을 수 없는 어떤 무엇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 나는 이후에도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도대체 그것은 무엇일까.


 “지금은 너의 부모님에게 안부를 받았으니 답례를 해야지. 어머님이 주신 김치는 정말 최고였어. 김치에서 깊은 맛이 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김치는 그저 밥상의 옵서버일 뿐이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너희 집 김치를 먹고 나서는 그 생각이 확 바뀌었어.”


 선배는 은혜를 안부라는 단어로 종종 말했다.


 “제대로 어머니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고 싶어”라고 선배가 우리 집 김치 예찬을 했을 때 나는 그 김치는 어머니가 담근 김치가 아니라 외가에서 받아온 김치라고 말을 했어야 했다. 어머니는 김치 담그는 법을 알지 못했다.


 “어머니께 받은 김치가 이틀 만에 동 나 버렸지만 말이야. 하하.”


 선배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다. 은은한 비누향이 나는 그녀가 선배의 여자 친구였다. 얼굴이 예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침착한 면모가 많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빈틈이 있어 보였지만 따지고 보면 촘촘한 십자수 같은 표정으로 빈틈을 메우는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이 어떤 얼굴이야? 도대체?라고 물으면 직접 보면 알 수 있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았다. 따지고 봐야 하기에 그럴 기회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선배는 나보다 두 살 많았고 선배의 여자 친구는 나보다 한 살 많았다. 그녀는 의상과에 재학 중이었고 재봉을 하거나 원단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고 왕왕 원단 공장으로 견학을 가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풀 수 있는 방법이 공부였기에 선배의 여자 친구는 늘 학교에 남아서 과제 같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 늦은 시간까지 모델링을 한다고 학교에 남아 있는 날 의상과의 건물을 보면 달이 하루를 접수하고 나서도 형광등 불빛이 바싹하게 말라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손에 본드를 묻혀가며 건축 모델링을 하다가 의상과의 불빛을 보며 창가에 걸터앉았다. 담배를 꺼내서 피웠다.


 “너 담배 피웠어?” 승섭이가 말했다.


 “응, 가끔 피워.”


 “가끔 피우는 거 왜 피워?”


 “그냥. 밥도 하루 세 끼 다 먹지 않는데 뭐.”


 “야야, 그거랑 그게 같냐?”


 “하긴.”


 승섭이는 내 말에 인상을 썼다. 승섭이는 우리 조원이지만 우리 조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모델링에 집중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나 역시 모델링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승섭이가 너무 열심히 해서 나도 그저 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물론 네 녀석을 포함해서 말이다. 너는 어쩌다가 건축에 발을 들여놓고 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보여. 그런데 어쩌다가 나는 너와 같은 조에 걸려 버려서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말이야.”


 나는 승섭이의 말에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뭐 괜찮아. 그래도 이렇게 도로에, 자동차에, 사람을 디테일하게 직접 만들어 버릴 줄은 몰랐다, 굉장하다고 생각해. 나는 건축이 좋아서 건축과에 들어왔지만 도면 그리는 것 빼고는 전부 꽝이야.”


 “건축의 시작은 도면으로부터야”라고 내가 말했다. 승섭이는 내 말에 잠시 미소를 지었다.


 “도면마저도 단면도 같은 아주 단순한 것뿐이야. 나는 투시도나 입체적인 스케치를 하고 싶지만 전혀 꽝인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나는 너의 도움을 좀 받아야겠어. 나를 괄시하지 않겠지. 나도 너처럼 대학생활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나는 어울리고 싶어도 껴주지 않는 것에 반해서 너는, 너는 네가 싫어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는 거 같다.”


 나는 승섭이의 말에 잠시 생각했다.


 “내가 볼 땐 반대인 거 같은데. 아이들이 너를 껴주지 않는 게 아니라 너가 아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는 가지 않으니까. 아마도 아이들이 지레 겁을 먹었을 거야.”


 “뭐? 나에게 겁을 먹었다구?”


 “응, 벌 한 마리만 윙 하면서 와도 우리는 겁을 먹잖아.”


 내 말에 승섭이는 잠시 자신이 벌이 된 것처럼 생각에 잠겼다. 승섭이는 통학을 했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마을버스를 한 번 타고 나와서 시내버스를 타야만 학교에 올 수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은 생쥐 같은 모습으로 학교에 나타나기도 했다, 도면 통을 등에 매고 가방도 다 젖고 무엇보다 머리카락이 다 젖어서 앞으로 내려와 안경을 덮었다.


 “넌 왜 우산을 쓰지 않지?”


 “우산을 써도 어차피 학교에 오면 비를 다 맞더라고.”


 승섭이는 늘 버펄로 단화 같은 가죽 구두를 신고 다녔다. 그 신발이 자신만의 스타일이라고 했다.


 “난 말이야, 어차피 외모가 되지 않으니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야 했어. 개성이라고 부르지. 그런 의미에서 나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사람과 어울릴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그만이라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너는 나를 존중해주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은 내가 사지.”


 “너를 존중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해주면 내가 그렇게 할게.”


 “네 녀석은 좀 별난 구석이 있구나. 그런 의미에서 나는 너를 친구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난 그저 어디에나 널려있는 돌처럼 평범하기만 한 놈이야.”


 승섭이는 그 말에 또 한참 생각에 잠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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