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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9. 2022

바람이 불어오면 3

소설


3.


 건축물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예술품이라고 승섭이는 말했다. 그런 멋진 예술품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과정에 마음에 빼앗겼다고 했다. 가장 좋은 점은 한 명이 독점적으로 건축의 영광을 가져가지 않아서 더더욱 멋진 일이라고 했다.


 “가우디의 예술품들을 봐. 굉장하잖아. 그런 대단한 예술품을 사람들이 협심해서 만들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들어가 살거나 비를 피하고 사색을 하지. 그런 의미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


 승섭이가 말을 쏟아낼 때 나는 승섭이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질문을 했다.


 “여자 친구는 없어?”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다.”


 가우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보다 몇 데시벨이나 목소리가 낮아졌는지 모른다.


 “설마”라고 나는 말했다.


 “진짜야, 나는 여자를 혐오해.”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라고 나는 말했고 승섭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승섭이는 거짓말을 하거나 난처해지면 눈 주위가 붉게 물들었다.


 “네 녀석은 내 친구지? 나는 네 녀석을 친구라고 생각해버렸다. 내가 하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겠지?”


 승섭이의 말에 나는 그저 가만히 눈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눈 주위의 붉게 물든 헤일로를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소주가 필요하다. 그 정도 해줄 수 있지?”라는 승섭이의 말에 나는 건축과의 단골집에서 통닭을 한 마리 포장하고 편의점에서 소주를 다섯 병 사들고 자취방으로 왔다. 승섭이가 내 자취방에 놀러 와서 술을 마신 최초의 사람이었고 이전에도 승섭이는 버스가 끊겨 집으로 가지 못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에는 내 자취방에서 신세를 졌다.


 술을 거의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승섭이는 평소에 자취방에 오면 책들을 펼쳐 몇 장 읽다가 잠이 들곤 했다. 승섭이는 내 자취방에서 잠을 잔 날이면 그다음 날에 반드시 나에게 학교 식당에서 밥을 사 주었다. 일종의 감사 표시라고 했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승섭이는 극구 부인하며 나에게 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물었고 나는 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고, 그런 의미에서 학교 식당에서 제일 비싼 돈가스를 주문해 주었다.


 자취방에서 소주를 한 병씩 비웠을 때 승섭이는 여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그 녀석과의 거리를 지금보다 더 좁히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가 열 살 때였어. 나는 아버지를 몰라.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에게 늘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가 두드려 맞았어. 동네 친구들은 아버지 없는 놈이라고 놀려서 나는 늘 울면서 집으로 들어왔고 엄마는 그런 나를 때리기만 했다. 왜 때렸을까? 보통 엄마는 울면서 집에 들어온 아들을 안아주거나 보듬어 줘야 하는 거잖아? 하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내가 울면 심하게 때렸다고. 평소에는 아주 좋아. 나를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가슴도 만지게 해 줬어.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가슴은 무엇을 한 것 같다. 내가 울면 나를 심하게 때린 이유는 내가 아버지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어. 그것도 우는 모습이 판박이 었나 봐. 아버지는 내가 생긴 걸 알고 도망갔다. 임신을 한 엄마를 무척 경멸하며 나의 엄마를 버리고 도망을 갔던 거야. 어느 날 나는 아버지의 사진을 볼 수 있었지. 엄마와 둘이 나란히 찍은 사진이었는데 엄마는 훨씬 젊고 예뻤고 옆에 있는 남자는 멋있었지. 얼굴이 잘생긴 건 아니었지만 (승섭이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개성이 없었던 거야. 저 사람이 내 아버지구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생물학적인 사람. 나는 아버지에 대한 어떤 동경심과 호기심이 강했나 봐. 엄마도 그걸 알기에 속상했겠지. 아버지는 엄마를 사랑했데, 신파적인 이야기지. 물론 엄마의 입에서 들은 말이라서 믿을 수 있는 말은 아니야. 그렇게 사랑을 했는데 아버지는 우리를 버리고 도망을 가버렸어. 우리는 버림을 받았다. 버림을 받은 인간들은 인간들의 숲 속에서 고립되어가. 그게 뭔지 알아? 엄마는 술집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 뒤로 많은 남자들이 집으로 들락거렸지. 내가 열 살 때 나는 잠을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가면서 엄마 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윽윽하는 소리가 나서 문틈으로 보니 엄마는 개처럼 엎드려 있고 뒤에 남자가 그 짓을 하고 있었다. 보니 사진 속의 그 남자였어. 조금 늙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어. 엄마는 늘 아버지를 욕했고 그런 남자가 우리를 버렸다며 매일 밤마다 술에 취해 울부짖었지. 그리고 나를 때렸다. 그 울부짖은 소리는 마귀 소리 같았지. 엎드려서 황홀한 표정으로 윽윽 거리는 엄마를 본 순간 여자에 대한 혐오가 짙어졌다. 여자란 그런 거야.”


 승섭이는 말을 하면서 중간중간 말과 말 사이에 소주를 마셨다. 그렇게 마신 소주가 두 병이 넘었다. 그날 새벽 승섭이는 오바이트를 여덟 번은 넘게 했고 마지막에 등을 두드리는 나에게 너무 세게 두드린다며 나를 향해 “씨발”라고 힘껏 욕을 하고서는 한 번 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옷에는 구토물이 묻어 있었고 입 주위는 여러 번의 구토로 인해 허연 이물질이 말라 있었다. 아침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충격을 받은 승섭이는 머리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대중목욕탕으로 가서 깨끗하게 씻고 내 옷을 빌렸다.


 “저기, 미안한데 그런 의미로 네 녀석의 옷을 좀 빌릴 수 있을까?”


 내 옷이 꽉 껴서 승섭이의 모습은 베트맨에 나오는 펭귄 인간처럼 보였다. 청바지는 다리에 겨우 들어가서 터질 것 같았고 또 좀 길어서 접어서 입었다. 승섭이는 학교에서 허루 종일 얼굴을 들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승섭이의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승섭이는 나와 함께 밥을 먹을 때 빼고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날은 모델링 작업도 하지 않은 채 집으로 가버렸다.


 “모델링은?”라고 내가 소리쳤지만 승섭이는 내일 보자며 집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승섭이는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승섭이의 연락처를 몰랐다. 과사무실에 가서 승섭이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연락을 했다. 신호만 갈 뿐 아무도 받지 않았다.


 “너의 옷은 잘 빨아서 다려서 갖다 줄게”라는 말을 들은 게 마지막이었다. 승섭이는 누구보다 수업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렇게 술을 마시고 소나기처럼 이야기를 쏟아내고는 집으로 간 다음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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